젊은 시선, 사건이 되다… 대전 예술, 무대에 서다…

입력 2025. 10. 23   16:44
업데이트 2025. 10. 2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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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예술
전시공간 & 전시 대전시립미술관과 청년작가지원전 '넥스트코드 2025:사건의 무대'

차세대 작가 등용문…
20여 년 150여 명 배출
지역미술 활성화 견인
‘사건의 무대’ 오른 7인…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눈길

 

 


대한민국의 중간에 있는 대전광역시는 지리적으로 동서남북 모두에서 균형 잡힌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약 145만 명이 거주하는 대전광역시에는 우리 군의 통합 군사 교육기관 및 훈련 시설인 자운대(紫雲臺)가 있다. 또한 1993년 대전세계박람회(EXPO’93 Daejeon)의 개최지로, 대덕연구개발특구와 KAIST 등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기술 연구기관을 보유한 과학 도시기도 하다. 자운대에서 10㎞쯤 떨어진 곳에는 대전시립미술관과 대전 예술의 전당, 대전시립연정국악원 등 다양한 문화예술 기관도 밀집해 있다. 특히 대전시립미술관은 1998년 4월 15일 개관, 올해로 27주년을 맞은 중부권 최초의 공공미술관이다.

1995년 자치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민선 지방자치가 도입되며 본격적인 ‘풀뿌리 민주주의’가 시행됨에 따라 각 도시는 지역 문제를 직접 결정하고, 지역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정책을 수립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각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문화예술 기관으로 공공미술관을 건립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설립된 미술관은 광주시립미술관(1992), 대전시립미술관(1998), 부산시립미술관(1998) 등이다.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립미술관은 지역 정체성과 문화 자산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주민들이 예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대전시립미술관도 지역 작가들을 발굴, 전시를 통해 소개하는 등 지역 주민을 위한 다양한 전시를 개최해 왔다. 2008년에는 창작센터를 개관해 작가들의 실험적 창작을 지원했고, 2022년에는 작품을 보관하는 수장고를 개방해 ‘열린 수장고’를 개관하며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

대전시립미술관은 매년 대전·충청권의 청년 작가를 발굴·지원하는 ‘청년작가전’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 청년작가전은 지난달 17일부터 다음달 23일까지 ‘넥스트코드 2025: 사건의 무대’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미술관 개관 이듬해인 1999년부터 시작된 청년작가지원전은 ‘전환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시작됐고, 2008년부터는 ‘넥스트코드’로 이름을 바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전 지역의 미술 활성화를 위해 열리는 청년작가지원전은 지역 미술 생태계 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품 활동을 지원하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 20년이 넘는 기간 참여 작가가 150명이 넘는 것은 전시가 오랜 시간 지역 청년 작가의 등용문으로 역할을 해왔음을 방증한다.

 

 

대전시립미술관의 전경과 ‘넥스트코드 2025 사건의 무대’ 전시 모습. 필자 제공
대전시립미술관의 전경과 ‘넥스트코드 2025 사건의 무대’ 전시 모습. 필자 제공

 

대전시립미술관의 전경과 ‘넥스트코드 2025 사건의 무대’ 전시 모습. 필자 제공
대전시립미술관의 전경과 ‘넥스트코드 2025 사건의 무대’ 전시 모습. 필자 제공



현재 청년들이 겪는 문제는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청년들은 실업 문제, 주거 불안정, 사회적 고립 문제 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짊어지고 있다. 미술계에서도 청년 작가들의 불안정한 삶은 마찬가지다. 청년이면서 작가로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의 작품을 소개할 기회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 해 미술대학을 졸업하는 청년들이 수천 명에 이르지만 이들 중 절반 이상은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변경한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작가로서의 꿈을 펼치기 위해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청년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는 많지 않다. 서울에 비해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의 청년 작가들은 더욱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넥스트코드’는 청년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다.

넥스트코드는 공모제 형식으로 진행된다. 미술관이 있는 충청권을 중심으로 대전·충청 지역에 연고가 있는 시각예술 분야의 청년 작가를 대상으로 한다. 지난해까지는 20~39세 청년을 대상으로 했지만 올해부터 43세 이하로 지원 대상 폭을 넓혔다. 청년 작가들이 제출한 포트폴리오는 미술계 전문가들의 심사를 통해 선정된다. 선정된 작가는 전시 기회와 창작 지원금을 제공받고 평론가 매칭을 통해 작품 활동에 관한 조언을 받을 수 있다.

올해의 넥스트코드는 ‘사건의 무대’라는 제목으로 개최됐다.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 작가들에게 펼쳐진 ‘사건의 무대’는 어떤 것일까? 혹은 이들에게 ‘사건’은 무엇이고 ‘무대’는 어디일까? 공모를 거쳐 선정된 송상현, 김민채, 이성은, 이지연, 임윤묵, 신용재, 인영혜 등 7명의 작가는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전시 공간은 세 군데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 공간에는 회화를 주요 매체로 사용하는 임윤묵·신용재 작가, 공예를 주요 매체로 사용하는 인영혜 작가의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무엇을 그릴 것인지 늘 고민한다는 임윤묵 작가는 일상의 장면들을 덤덤하고 따스한 색감으로 펼쳐 놓는다. 지속적으로 하늘을 그려온 신용재 작가는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본 하늘의 모습을 관람객과 공유하고, 캔버스를 쌓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 반복적인 예술 노동의 의미와 작가로서의 태도를 질문한다. 인영혜 작가는 섬유, 손뜨개로 만들어진 조형물을 통해 촉각적 감각을 일깨우며 전통 공예와 현대미술의 접점을 찾는다.

옆 공간에는 이지연 작가의 ‘바다빗질’ 프로젝트의 사진과 영상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지연 작가는 지난 5년 동안 해변에 밀려온 쓰레기를 수거해 온 자신의 작업을 ‘바다빗질’이라고 표현하며 환경 파괴와 보호라는 사회적 문제를 예술적 행동으로 시각화한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지워진 존재들의 흔적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내며 이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질문하는 송상현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영화, 소설에서 떠올린 이미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회화에 담아낸 김민채 작가의 작품도 볼 수 있다. 마치 파편화된 장면들을 연상시키는 캔버스는 고정관념 속에서 이질감과 혼란을 일으킨다.

마지막으로 이성은 작가는 도시와 철도 풍경에 주목해 노선에서 벗어난 미시적 개인들의 이야기를 입체 조형으로 소개한다. 마치 무대 위에 오른 배우처럼 청년 작가들이 선보이는 작품은 작가 자신이다. 나를 바라볼 혹은 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을 향해 7명의 청년 작가는 작가로서의 정체성, 사회적 문제, 잊힌 타인의 이야기를 다양한 생각과 방식으로 무대에 올린다.

사실 넥스트코드만큼 역사가 긴 청년작가지원전은 국내에서도 드물다. 대전시립미술관이 개관 직후부터 청년작가지원전시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온 것은 미래의 대전 예술을 키워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기획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미래 세대는 이제 현재가 돼 대전 미술, 나아가 한국 미술을 이끌어가는 작가로 성장했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청년 작가들이 무대에 올라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지 살펴보자.


필자 김유진은 공공미술에 대한 논문을 썼고, 문화라는 전체적 맥락 안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예술을 연구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필자 김유진은 공공미술에 대한 논문을 썼고, 문화라는 전체적 맥락 안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예술을 연구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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