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도…
10년 후에도…
“10번 출구에서 만나자”…유효한 그 약속
휴대전화 없던 시절 “강남역 앞에서 보자” 믿음과 설렘의 장소
접시형 거리 조형물 언제든 무료 충전도 외국인들 절로 와우!
지하부터 쇼핑 시작 정통 햄버거·쌀국수… 골라 먹는 세계음식
조용한 주택가 산책… 힙한 동네 늘었지만 다양한 매력은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빌딩숲이자 번화가인 강남역은 서울의 유행과 자본, 속도와 욕망이 농축된 공간이다. 세상의 유행과 활력이 이곳으로 총출동한다. 밤이 되면 빌딩들의 조명과 전광판 영상이 사방에서 춤을 춘다. 미래가 궁금하다면 강남역으로 오라. 이곳에선 내일이 오늘처럼 펼쳐진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이미 오늘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미래에 신나게 감탄하라. 그게 강남역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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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성지에서 미래의 관문으로
강남역은 서초구와 강남구의 경계에 있다. 2호선과 신분당선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대한민국 상업의 심장부다. 1982년 지하철 2호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연 강남역은 이후 40여 년간 서울 남부의 중심으로 군림해 왔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 강남역은 젊은이들에겐 약속의 성지였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강남역 6번 출구 앞에서 초조하게 친구나 연인을 기다렸다. “강남역 앞에서 보자.” 한마디면 충분했다. 약속시간에 늦어도 딱히 연락할 방법이 없었고, 발을 동동 구르거나 시계를 들여다보며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위치를 공유하지만, 그때는 오직 ‘믿음’과 ‘기다림’만 있었다.
지금 강남역 일대는 하루 유동인구가 50만 명을 넘나들고, 주말엔 더욱 늘어난다. 명동이나 홍대와 달리 강남역은 구매력 있는 직장인 비중이 높다. 이곳의 상권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검증된 소비력’이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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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브랜드의 각축장, 미래형 거리
이곳에는 외국인이 정말 많이 보이는데, 그들에게 강남역은 어떤 느낌일까? 일단 입을 다물지 못한다. 미국 뉴욕, 일본 도쿄, 중국 상하이를 안 가 본 게 아닌데 강남역 대로변에선 꼼짝없이 시골쥐가 된다. 어쩌면 이렇게 화려할까? 이렇게 밝고 세련된 도시가 또 있을까? 대로변은 나이키 메가스토어, 지오다노, 유니클로, 무신사 스탠다드 등 국제적인 브랜드 매장들이 빌딩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1층만 쓰는 게 아니라 지하부터 5층까지 통으로 매장을 꾸민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명동은 사진을 찍는 거리이고, 강남역은 카드를 긁는 거리다. 알짜소비가 이뤄지는 특급 상권이란 얘기다.
한 블록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먹자골목이 펼쳐진다. 고깃집, 일식집, 이탈리안·멕시칸 요리, 베트남 쌀국수까지 세계 각국의 음식이 밀집해 있다. 점심시간이면 직장인으로 북적이고, 저녁엔 회식과 연인들로 붐빈다.
대로변의 또 다른 볼거리는 미디어 폴과 접시형 보행자 조형물이다. 다른 도시에선 볼 수 없는 세로로 된 미디어 폴이 가로수처럼 양쪽에 정렬해 있다. 미디어 폴에선 끊임없이 광고가 흘러나온다. 명품 브랜드, 자동차, 최신 스마트폰, K팝 아이돌의 얼굴이 번갈아 등장한다. 접시형 조형물에선 언제든 무료로 충전이 가능하다. 폭우가 쏟아지면 잠시 피할 수도 있다. 뉴욕에서도, 도쿄에서도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지구의 미래를 선도하는 곳은 단연 강남역 주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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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 확장된 또 하나의 도시
강남역 지하상가는 명동 지하상가,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와 함께 서울 3대 지하상가로 꼽힌다. 1980년대 초반 조성된 강남역 지하상가는 총연장 800m에 700여 개의 점포가 입점해 있다. 의류, 액세서리, 화장품, 신발, 가방, 안경, 휴대전화 장식품까지 없는 게 없다. 가격도 합리적이어서 젊은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들러 쇼핑을 즐긴다.
지하상가의 매력은 ‘연결성’이다. 강남역부터 신논현역까지 지하로 쭉 이어져 있어 비 오는 날에도 우산 없이 이동할 수 있다. 한여름 폭염에도, 한겨울 혹한에도 쾌적한 온도가 유지된다. 지하상가는 단순한 쇼핑공간이 아니라 도시인의 휴식처이자 피난처다.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이 지하 푸드코트로 몰려든다. 김밥, 돈가스, 칼국수, 분식 등 간단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가성비가 좋고 회전율이 빨라 바쁜 직장인들에겐 최적의 선택지다.
강남역에서 하루를 쓰는 법
강남역에서 데이트를 계획하고 있다면? 오전 11시 강남역 10번 출구로 나와 대로변을 걷는다. 미디어 폴의 화려한 광고를 구경하며 나이키 메가스토어나 무신사 스탠다드 등을 둘러본다. 유행을 공부할 수 있는 최고의 학습장이다. 점심은 미국 본토 햄버거 ‘파이브 가이스’ ‘슈퍼두퍼’, 일본 라멘의 최강자 ‘오레노라멘’ 등도 좋고 인생 쌀국수를 먹고 싶다면 ‘땀땀’도 강력 추천한다.
오후 2시 배를 채웠다면 지하상가로 내려간다. 쇼핑을 즐기며 신논현역 방향으로 천천히 걷는다. 쇼핑이 목적이 아니어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하상가를 빠져나와 지상으로 올라오면 신논현 쪽 카페거리가 나온다. ‘스타벅스 리저브’ ‘블루보틀’ 같은 스페셜티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린다.
오후 5시 해가 지기 전 국기원 방향으로 산책을 떠난다. 강남역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조용한 주택가와 녹지를 만날 수 있다. 저녁은 다시 강남역으로 돌아와 ‘봉우이층집’ ‘육전식당 강남점’ 같은 고깃집에서 마무리한다. 육전식당은 육전을 파는 곳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삼겹살·목살 맛집이다. 개인적으로 인생 맛집이니 꼭 한 번 시도해 보길 바란다. ‘멕시타이거’에서 떠들썩하게 타코와 테킬라로 흥에 빠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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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자연, 국기원 산책로
강남역에서 국기원 방향으로 15분쯤 걸으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고층빌딩과 네온사인이 사라지고, 아담한 주택가와 가로수길이 펼쳐진다. 국기원 주변은 거짓말처럼 한적하다. 넓은 광장과 잔디, 나무가 도심 속 작은 쉼터를 만들어 낸다. 평일 오후엔 태권도 수련생들의 구령 소리가 쩌렁쩌렁하고, 주말엔 가족 단위 방문객이 산책을 즐긴다.
국기원에서 양재천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강남에서 보기 드문 자연친화적 공간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오간다. 봄엔 벚꽃이, 가을엔 단풍이 터진다. 강남역의 밀도가 부담스러울 때 이쪽으로 방향을 틀면 호흡이 달라진다. 강남역이 ‘에너지’라면 국기원 일대는 ‘평온’이다. 둘 다 강남의 일부이지만, 완전히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변화의 갈림길, 강남의 현재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강남역은 대한민국 최고의 상권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성수동, 을지로, 연남동 등 강북의 힙한 동네들이 젊은 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SNS 감성과 독립적인 문화를 추구하는 2030세대는 강남역보다 성수동을 선택한다.
강남역은 여전히 유동인구가 많고 매출도 높지만 ‘힙’한 이미지를 잃었다. ‘힙함’을 독점하던 시절은 지났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강남역은 여전히 한국의 자랑이다. 삼성 본사가 인접해 있고, 현대자동차그룹이 삼성동에 짓고 있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가 2026년에 완공되면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번화가로 거듭날 것이다. 뉴욕 맨해튼, 도쿄 시부야, 런던 웨스트엔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제 도시의 중심이 될 것을 확신한다. 강남역은 서울을 설명하는 가장 직관적인 장소다. 휘황찬란한 강남역의 조명을 즐기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오감으로 느껴 보자. 아니, 지구의 미래를 천천히 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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