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삼각지대전투 추모 행사
70년 세월의 흔적 내려앉았지만
그날의 굳센 기상과 군기는 여전
추모제 울려 퍼진 진혼곡에 숙연
“선배 전우 지킨 것은 자유·평화”
후배 장병들, 희생·헌신 보답 다짐
#1 아흔을 훌쩍 넘긴 노병(老兵)들의 걸음걸이는 무척이나 위태해 보였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정면으로 돌파해온 이들에겐 세월의 흔적만이 가득했다. 지팡이, 보청기는 이들의 지금을 보여주는 일종의 상징물 같았다. 6·25전쟁 당시 산화한 전우를 기리고자 흘러나오는 단조의 노래는 의도와 달리 처연한 감정을 더했다.
#2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앉아 계셔도 됩니다.” 국민의례 전 노병들을 배려한 사회자의 안내였다. 하지만 이런 안내가 무색하게 자리에 앉은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떨리는 손을 다잡으며 한 굳센 경례, 읊조리는 듯하지만 한 음 한 음 또렷하게 부르는 군가, 오랜만에 만난 전우에게 보내는 환한 미소. 맑은 가을날, 그들은 청춘(靑春)이었다. 글=맹수열/사진=조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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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강원 철원군 철원평화문화광장 철의 삼각지대전투 전몰장병 추모비에서 ‘철의 삼각지대전투 전몰장병 추모제’가 열렸다.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유공자회)가 주관하고 국가보훈부(보훈부),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육군6보병사단이 후원한 이번 행사에는 6·25전쟁 참전용사와 지방자치단체 주요 관계자, 군 장병 등 35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비가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북쪽에 위치해 출입이 쉽지 않음을 생각하면 이날 행사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지 알 수 있었다.
유공자회가 준비한 버스에서 참전용사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100세를 바라보는 이들 대부분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부축을 받는 이들도 꽤 눈에 띄었다.
“작년보다 올해는 더 몸이 불편한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얼마나 더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나라를 위해 싸운 분들의 마지막을 보는 것 같아 숙연해져요.” 행사 지원을 위해 매년 현장을 찾는다는 대한적십자사 강원도지사 봉사자는 참전용사에 대해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기자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추모제가 진행될수록 노병들의 어깨엔 힘이 가득해졌다. 유공자회를 대표해 참석자들에게 보낸 손희원(예비역 육군준장) 회장의 힘찬 경례를 시작으로 국민의례, 헌화·분향, 군가제창, 전몰장병에 대한 경례로 이어지는 행사 내내 참전용사들은 용맹하게 싸우던 그 시절의 강한 군기를 보여줬다. 전우와 손을 맞잡고 웃으며 농담하는 모습, 사진을 찍으며 순간을 간직하는 모습은 지금의 MZ세대 청년들과 다를 것 없어 보였다. 먼저 간 전우와 만나는 순간만큼은 마치 시간을 되돌린 듯했다.
70여 년의 시간을 이은 후배 장병들도 선배 전우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진성(소장) 6사단장은 행사 전 참전용사들에게 거수경례로 극진한 예우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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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단장은 “선배 전우님들이 피땀으로 물들이며 적과 싸워 지켜낸 것은 단순히 한 치의 땅이 아닌 우리가 누리고 있는 소중한 자유와 평화”라며 “청성부대 장병 모두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가 선배 전우님들의 고귀한 희생의 결과임을 가슴 깊게 새기고, 확고한 군사대비태세 완비로 희생과 헌신에 보답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헌화병 임무를 맡은 6사단 장성운 상병은 “우리가 지키고 있는 지역을 사수해낸 선배 전우님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면서 “수사불패 청성투혼(雖死不敗 靑星鬪魂·비록 죽더라도 패하지 않겠다)이란 사단의 전투정신을 바탕으로 철의 삼각지대를 지키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행사 중 거동이 불편한 참전용사를 기꺼이 부축해 이동을 도운 김세민 상병도 “참전용사는 우리의 전우”라며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행사는 먼저 간 전우들을 기리는 진혼곡 ‘전우야 잘자라’ 합창과 전몰장병에 대한 경례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세월을 건너 그 시절로 돌아간 참전용사들은 앳된 얼굴로 함께 싸웠던 전우들에게 뜨거운 경례를 보냈다.
감동의 여운은 행사가 마무리되고도 계속됐다. 손희원 유공자회장은 호국보훈의 정신을 국민통합으로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전우들의 희생이 국민을 통합하는 힘이 되길 바랍니다.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들의 정신은 세대를 걸쳐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현재의 어려움을 국민이 이겨낼 수 있도록, 단결된 힘이 될 수 있도록 유공자회는 모든 힘을 다하겠습니다. 전우들의 희생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이 더욱 굳건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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