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도 목발에 의지한 채 화장실에 갔다. 세면대 앞 의자에 앉아 양치와 세면을 하고, 다시 목발에 의지해 군복을 입고 의족을 신는다. 일상에서 의족과 목발은 공기와도 같은 존재다.
의족과 목발에 의탁해 군 생활을 한 지 20년이 됐다. 그날의 기억은 20년이 지나도 생생하다. 2005년 중부전선의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전방 육군7보병사단 3연대 수색중대장으로서 감시초소(GP) 전방 시계 확보를 위한 철책 밖 불모지 작전을 실시했다. 8월까지 1차 작전을 마치고, 확장을 위한 2차 작전으로 10월 12일 오후 각종 장구류와 장비를 착용한 채 전기톱을 들고 선두에 나섰다. 내가 나무와 가지를 자르면 후속하는 중대원들이 낫과 톱으로 더 잘게 잘라 산 밑으로 던지면서 작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러다 전기톱이 나무에 끼었고, 그 톱을 빼려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쓰러졌다. M14 대인지뢰를 밟은 것이다. 바로 옆에 있던 중대원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후속하는 중대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의식을 잃지 않아 중대원들에게 왔던 통로로 이동하라고 지시한 뒤 통신병에게 상황보고를 하고 응급헬기를 요청하도록 했다.
다행히 2차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문제는 혼자 그곳에 남은 나였다.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여기서 빠져나가 GP로 복귀해야 한다는 일념! 한 발로 뛰기 시작했다. 천만다행으로 2차 사고 없이 GP로 복귀했다. 그제야 발끝에서부터 밀려오는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이제 살았다’는 안도의 방증이었다.
그 후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돼 7~8회의 응급수술과 7개월간의 군병원 생활을 마친 다음 다시 시작한 군 생활이 20년이 됐다. 올해는 임관 3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족과 목발에 의탁한 20년의 군 생활에 더 의미와 가치를 두고 싶다. 정상적인 두 다리로 군 생활을 한 10년이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었다면 그 뒤 20년은 나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줬던 시간이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사실 군에 복귀할 때 제일 고민되는 부분이 ‘이 몸으로 군에 도움이 되거나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었다.
많은 분의 도움을 받고 제도적인 기회도 주어져 교육사(예하부대 및 학교) 교관으로서 초급간부~영관장교, 현재는 학군단장으로 학군사관후보생들을 양성하고 있다. 남은 군 생활도 육군에 도움이 되고,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군인으로 남고자 한다. 끝으로 포기하지 않은 자신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지금까지 나를 있게 한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 모든 부대원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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