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 예술 - Artist Studio 25 니스의 빛과 색채를 담은 마티스 미술관(Mus e Matisse)
고갱·세잔·고흐에 영향
강렬한 색채, 단순함 집중
원근법 무시한 평면화로
깊이감 대신 리듬감 부여
니스, 지중해 도시의 빛깔
자기 색채로 완전히 승화
전 생애 작품 흐름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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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 라틴어로 ‘아름다운 해안’을 뜻하는 코트다쥐르의 중심에는 찬란한 빛과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는 니스가 자리 잡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 ‘니카이아’에서 출발해 로마 시대 흔적과 중세 성곽, 사보이 왕가의 통치를 거쳐 프랑스 본토에 편입되기까지 니스의 역사는 다층적이다. 19세기 후반 벨 에포크 시대에는 유럽 상류층의 겨울 별장지로 각광받아 화려한 건축과 정원문화를 꽃피웠으며, 이 시기의 건축 양식과 도시 구조는 오늘날까지도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해안 풍경과 산자락의 언덕, 올리브 숲과 지중해의 햇살은 이 도시의 정체성을 빛과 색채로 정의해 왔다. 니스가 단순한 휴양 도시를 넘어 미술사에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도 바로 이 빛과 공기 때문이다. 인상파와 그 이후 세대 화가들은 남프랑스의 햇살 속에서 색채의 자유를 실험했고, 그중에서도 앙리 마티스(1869~1954)는 니스를 창작의 본거지이자 종착역으로 삼았다.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와 니스
앙리 마티스는 20세기 서양 미술사에서 ‘색채의 마술사’ 또는 ‘색채의 해방자’로 불리며, 피카소와 함께 현대미술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마티스는 원래 법률을 공부했으나 병으로 요양 중 그림에 몰두하며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이는 우연이었지만 그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계기였다. 마티스는 초기에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전통적인 미술교육을 받았으나 고갱과 세잔, 반 고흐의 영향을 받으며 점차 강렬한 색채와 단순화된 형태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가 안드레 드랭, 모리스 드 블라맹크와 함께 1905년 살롱 도톤 전시에 출품한 대담한 원색의 작품들은 관람객을 놀라게 했으며, 혹독한 비평과 함께 ‘야수파(Fauvism)’라는 별명을 안겼다.
마티스는 색채를 사물의 재현적 속박에서 풀어낸 선구자로, 빛과 색을 통해 사물의 본질과 감정을 드러내려 했다. 그는 전통적인 원근법과 명암법 또한 의도적으로 거부함으로써 화면을 철저히 평면화했다. 이는 화면에 깊이감 대신 장식적인 리듬감을 부여했으며 그의 그림은 패턴화된 배경, 과감하게 단순화된 인물이나 정물의 윤곽선으로 마치 태피스트리나 동양화의 화려한 병풍을 연상시킨다. 즉, 형태를 단순화해 선과 색의 순수한 힘에 집중함으로써 인상파 이후의 미술 지형 속에서 독자적인 길을 개척했다.
마티스가 남프랑스로 눈을 돌린 것은 1917년이었다. 당시 48세이던 그는 1차 세계대전의 혼란과 침울한 파리의 분위기, 그리고 자신의 건강 문제(폐렴)로 인해 따뜻하고 평온한 환경이 절실했다. 그해 12월, 마티스는 니스를 처음 찾았고 특유의 강렬하고 순수한 지중해의 빛에 반해 정착을 결정했다. 마티스는 니스의 빛을 “마치 아프리카의 태양 아래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하며, 이 도시가 자신의 예술적 시야를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고백했다.
니스 시절의 마티스는 이전의 격정적인 야수파 색채에서 한층 부드럽고 관능적인 경향을 보인다. ‘춤’(1910) ‘음악’(1910) 같은 대작뿐만 아니라 니스 시절의 ‘창가의 여인’ ‘붉은 실내’ 연작은 마티스가 빛과 색, 그리고 삶의 기쁨을 화폭에 담아낸 대표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생애 후반, 병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마티스는 가위로 색종이를 오려 붙이는 ‘컷아웃(Cut-out)’ 기법에 몰두했다. 그는 육체적 제약을 오히려 새로운 창작의 계기로 삼았는데, ‘푸른 누드’(1952), ‘이카로스’(1947)와 같은 후기 작품들은 단순하지만 강렬한 형태로, 마티스 예술의 절정을 보여준다. 마티스는 1918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니스를 거점으로 삼았다. 니스는 그에게 안정과 평화, 그리고 궁극적인 창조의 자유를 제공하는 아틀리에이자 안식처 역할을 했다.
올리브 숲 언덕 위의 미술관
니스의 북쪽 시미에 언덕, 고대 로마 원형극장 유적과 수도원이 자리한 유서 깊은 지역에 마티스 미술관이 있다. 이곳은 원래 17세기 제노바풍 건축물 ‘빌라 데 자렌’으로, 붉은 외벽과 녹색 셔터가 지중해 풍광과 조화를 이룬다. 1953년, 마티스는 자신의 작품과 소장품 일부를 니스시에 기증했고, 이후 유족과 상속자들의 추가 기증이 이어지면서 단일 작가의 미술관으로 발전했다. 현재 소장품은 유화, 드로잉, 판화, 조각, 컷아웃 등 600여 점에 달한다.
마티스 미술관은 그의 전 생애를 조망할 수 있는 드문 공간이다. 그의 초기 습작과 야수파 시기의 작품들을 통해 마티스가 어떻게 전통을 극복하고 색채 해방의 길로 나아갔는지 살필 수 있다. 니스 시기의 터키식 복장을 한 여성들을 그린 오달리스트 연작은 니스의 이국적이고 따뜻한 실내 분위기를 반영하는 작품이며, 빛과 패턴의 조화를 탐구한 마티스 중기 회화는 이 미술관의 정수다. 말년에 그가 창안한 ‘컷아웃’ 작품들 또한 미술관의 주요 컬렉션으로, 단순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푸른 누드(Blue Nudes, 1952)’ 시리즈와 대형 벽화 작품도 전시돼 있다. 전시는 시기별로 작품의 흐름을 보여주며 교육 프로그램과 드로잉 자료실, 대형 세라믹 벽화 전시 공간 등을 통해 작가의 조형 탐구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이 미술관은 마티스라는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색과 형태의 실험 과정을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마티스는 “예술은 지친 정신을 위한 안락의자 같아야 한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복잡한 세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순수한 색의 울림 속에서 평온을 얻게 한다. 남프랑스 니스의 찬란한 햇살 아래 자리한 마티스 미술관은 우리에게 예술가 한 명이 어떻게 한 도시의 빛을 자신의 색채로 완전히 승화시키고, 그 유산을 통해 도시를 지속시키는지 확인하게 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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