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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세명대학교
미디어콘텐츠창작학과 교수
모 잡지에 ‘초판본 이야기’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하면서 소개하는 책들은 나온 지 수십 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울림을 준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의 문화론집 『지성과 반지성』(1974·민음사)도 그런 책이다. 김병익은 문학을 주축으로 하는 문화 분야 평론가로, 수많은 저술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축적해 왔을 뿐 절대로 요란스레 펼치지는 않았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문화인과 지식인조차 진영논리 혹은 공허한 자기주장에 치우쳐 있을 때 “사유의 빈자리에 다른 사람들의 지식과 의견을 채우려 노력”했던 거장이 바로 김병익이었다.
그는 1965년부터 1975년까지 10년간 일간지 문화부 기자로 재직하면서 줄곧 문학·학술·출판 관련 기사를 썼다. 1967년 『사상계』에 평론을 발표하면서 평론가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1970년엔 그를 포함해 ‘문지 4K’로 불리는 문학평론가 김현·김치수·김주연과 함께 계간 『문학과 지성』을 창간했다. 1974년에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한국기자협회장을 맡았으나 이듬해 언론자유운동에 나섰다는 이유로 기자직을 잃고 만다. 그렇게 해직기자로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그는 ‘문지 4K’ 등과 함께 모은 자본금으로 1975년 12월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를 설립하고 대표가 됐다. 10년에 걸친 기자생활을 접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사를 차려 대표로서 출판물 기획과 편집·제작은 물론 영업과 경영까지 두루 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1974년 9월 ‘문화론집’을 표방하며 초판이 나온 『지성과 반지성』은 저자가 신문기자로서 활동을 거의 마감할 즈음 나온 책인 동시에 이듬해 동료들과 힘을 모아 설립한 출판사의 명칭을 ‘문학과지성사’로 삼은 까닭을 짐작하게 해 주는 책이다. 또 김병익의 ‘문화’를 대하는 도저한 안목이 곳곳에 배어 있는 문화비평서다. 서문을 보면 “원래 발표된 것을 그대로 살려” 싣고 있는 바 이유인즉슨 “하나는 기자란 한계를 스스로 받아들이기로 한 때문이며, 또 한 가지 이유는 부분적인 혹은 현상적인 미비점에도 불구하고 문화, 특히 한국 문화에 대한 나의 기본 태도는 별로 바뀌지 않은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아울러 이 책이 “우리에게 창조적이며 개방적인 문화가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성실하고 증언하는 기자가 될 수 있는가”란 질문을 내포하고 있으며 자신의 논조에 따르면 “회의스럽고 비관적”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 나아가 “이 회의나 비관이 설득력을 가질수록 이 책은 더욱 무의미하고 허위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을 내는 일은 결국 “이 세계와 나 자신에게 진실로 부끄러운 일”임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러한 김병익의 당시 판단은 잘못됐음을 선언해야겠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일갈한 우리 문화의 비판은 곧 구순을 바라보는 선생이 마주하고 있는 이 세상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인정해야 해서다. 지성과 반지성, 지성과 몰지성이 끊임없이 대립하는 요즘 그의 일갈이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의 말을 빌리자면 (1970년대 당시) “우리 지식사회에서 가장 우울한 현상은 압도적 지식기능인의 수와 힘에 비해 지성인은 너무나 적고 미력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과연 2026년 현재는 어떨까. 그때나 지금이나 지식계층의 인구는 많다. 김병익의 지적처럼 ‘대학교수, 학자, 언론인, 작가, 예술인’ 등 “마땅히 지성의 위력에 의해 존경받아야 할 지식인”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러나 “계층이, 입장이 지식인의 면모를 지녔다고 결코 지성인이 될 순 없는 것”이다. 이 같은 김병익의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21세기 지식인 또한 얼마나 될까. 이제라도 ‘지식인’과 ‘지성인’의 차이를 알고 나면 보이는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는 이가 많았으면 좋겠다. 진정 ‘부끄러운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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