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가 지키려는 권력, 富를 지키려는 광기... 고야의 ‘검은 그림’에서 자본주의를 보다

입력 2026. 02. 19   16:04
업데이트 2026. 02. 1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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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곁에, 예술>> 영화 속 미술 -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기성세대의 권력 유지하기 위해
다음 세대 활용하고 소모시키는
고야 작품으로 예고편처럼 암시
욕망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 형상
탐욕이 불러올 파괴적 갈등 담아

영화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에 등장하는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사진=필자 제공
영화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에 등장하는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사진=필자 제공

 

영화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 포스터. 사진=필자 제공
영화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 포스터. 사진=필자 제공


“탐욕은 좋은 것이다(Greed is good).”

1987년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나온 주인공 고든 게코의 이 대사는 뉴욕 금융가를 배경으로 돈과 권력을 향한 끝없는 욕망을 그린 영화를 한 줄로 압축한다. 2010년 나온 후속편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에서도 그칠 줄 모르는 인간의 욕심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속편으로 돌아온 게코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탐욕이 합법적인 시대죠.”

영화는 현실만큼이나 냉혹하다. 자본시장의 야만성 앞에 영원한 동료도 적도 없다. 월스트리트를 주무르는 최고 포식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각종 음모와 구설이 난무한다. 매시간 출렁이는 주가에 희비가 엇갈린다. 속편에서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금융가 분위기와 극의 속도에 맞춰 장면 전환이 빠르게 이어지며 긴장감을 높인다. 영화 속 트레이딩룸에서는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리고, 주식거래소 전광판 숫자가 빠르게 돌아간다. 영화는 월스트리트의 검은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공간 연출과 시각적 장치를 치밀하게 활용한다. 영화 속 배경이나 작은 소품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속편을 이끌어 가는 인물 제이컵 무어는 출세 가도를 달리는 젊은 주식 트레이더다. 하지만 누군가의 계략으로 그를 이끌어 준 멘토가 세상을 떠나고, 몸담고 있던 투자은행마저 하루아침에 파산한다. 무어는 비극의 배후를 찾아 금융계 거물 브레턴 제임스를 찾아간다. 그의 사무실은 위엄 있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장식돼 있다. 어두운 목제 벽면을 따라 그림 액자가 빼곡히 걸려 있다. 그중 무어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작품이 있다. 스페인 작가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다. 극 중에서 팽팽한 긴장 관계에 있던 두 사람이 처음으로 나누는 대화의 소재는 이 그림이다. 제임스는 이 작품을 “자식을 삼키는 악을 그린 그림”이라고 소개한다.

이 그림에는 검은 배경 속 백발의 노인이 등장한다. 광기에 찬 눈빛으로 그는 어린아이를 거칠게 움켜쥔 채 입속으로 넣고 있다. 아이의 머리는 보이지 않고 훼손된 몸통만 남아 있다. 공포스럽고 끔찍한 장면이다. 이 그림이 신화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고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스 신화의 시간의 신 크로노스를 로마식으로 부른 이름이 사투르누스다. 예언에 따르면 그는 장차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길 운명이었고, 이를 두려워한 나머지 태어나는 자식들을 차례로 삼켜 버렸다. 신화에서는 사투르누스가 자식을 삼킨 뒤 곧바로 돌을 삼켜 토해냈다. 하지만 고야를 비롯해 이 주제를 다룬 화가는 어린 자식을 먹는 순간의 공포와 광기를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는 고야가 말년에 남긴 ‘검은 그림’의 연작에 속하는 작품이다. 밤, 어둠, 살육의 이미지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 연작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현재 통용되는 작품 제목들 역시 후대 학자들이 붙인 것이어서 작품 의미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반론이 공존한다. 그림 속에서 잡아먹히는 아이가 몇째 자식인지, 성별이 무엇인지,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인지조차 명확히 단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잃은 채 인간을 삼키는 장면을 통해 드러나는 광기와 폭력성은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탐욕을 강렬하게 환기한다. 이 이미지는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 속에서 권력을 좇아 질주하는 제임스란 인물을 은유하는 장치로도 읽히며 욕망이 불러오는 파괴적 갈등을 암시한다.

영화에서는 젊은 트레이더 무어와 금융계의 기성세력 사이의 갈등이 두드러지게 부각된다. 무어는 친환경 에너지 기업에 투자하며 미래지향적이고 상생 가능한 금융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반면 월스트리트를 군림하는 제임스는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를 독점한 채 젊은 세대가 자본시장에 쉽게 진입하지 못하도록 견고한 장벽을 세운다. 한때 월가의 전설로 불렸던 게코는 무어에게 조언과 통찰을 건네는 조력자처럼 다가오지만 결국 자신의 이익과 복수를 위해 그를 이용한다. 기성 권력이 권력 유지를 위해 다음 세대를 활용하고 소모하는 관계는 고야의 그림에서도 환기된다.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속 사투르누스는 왕좌를 물려주긴커녕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아들로 상징되는 다음 세대를 게걸스럽게 삼킨다. 그런데 그의 표정에는 욕망이 실현된 만족감보다 두려움이 더 짙게 드리워 있다. 성취의 순간에도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심리는 잃을 것이 많은 위치에 설수록 커지는 인간의 보편적 아이러니다. 욕망과 결핍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를 강화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은 영화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 속 기성세대가 보여주는 끝없는 욕망과 상실에 대한 공포와도 겹쳐 보인다.

영화에서 이 그림은 비교적 초반에 등장해 인물 간 갈등이 본격화하기 전에 앞으로 펼쳐질 사건을 예고편처럼 암시한다. 고야의 작품은 ‘탐욕은 곧 악’이라는 단순한 교훈을 직접 전달하지 않는다. 또한 권력을 좇은 자의 비참한 최후만을 일방적으로 보여주지도 않는다. 대신 권력을 향한 욕망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 형상을 통해 탐욕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디인지에 대한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필자 김유미는 홍익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관에서 교육을 연구하는 일을 맡고 있다. 동시대 미술에서 배움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필자 김유미는 홍익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관에서 교육을 연구하는 일을 맡고 있다. 동시대 미술에서 배움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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