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영화
지식플러스 / 오슬로 (2021)
이스라엘·PLO 민간인 비공식 접촉
교묘한 불확실함 속 평화 물꼬
적과 마주한 식탁서 쌓은 신뢰
‘뒷문의 거래’로 역사 바꾼 실화 담아
감독 : 바틀렛 셔
출연 : 루스 윌슨(모나 율), 앤드루 스콧(테리에 뢰드라르센), 도브 글리크만(야이르 히르시펠트), 살림 다우(아흐마드 쿠레이), 제프 윌부시(유리 사비르)
“우리를 사로잡는 폭력의 순환 속에 살면서 우리는 어떻게 그 순환을 넘어설 수 있는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현재 존재하는 현실에 한쪽 발을, 아직 존재하지 않는 곳에 다른 한쪽 발을 두어야 한다.” 『도덕적 상상력』, 존 폴 레더락 지음, 글항아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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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테이블은 왜 항상 뒤에 있었나
1993년 9월 13일 오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남쪽 잔디밭. 전 세계 카메라가 일제히 두 남자를 향했다.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 45년간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눠온 두 진영의 수장이었다. 빌 클린턴이 두 팔을 벌려 두 사람을 양쪽에 세웠다. 라빈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아라파트가 잡았다. 그 악수가 이뤄지는 순간, 잔디밭을 가득 메운 3000여 명이 숨을 멈췄다. 클린턴이 뒤에서 안도한 듯 크게 숨을 내쉬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것이 세상이 본 오슬로 협정이었다.
그러나 그 악수에 이르기까지 9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상은 몰랐다. 이스라엘은 당시 PLO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해 공식 접촉 자체가 불법이었다. 이스라엘 관리가 PLO와 만났다가 발각되면 형사처벌을 받았다. PLO는 걸프전에서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는 실수를 저질러 아랍 산유국의 재정 지원이 끊기고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태였다. 두 진영이 같은 방에 앉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배경에는 1987년 제1차 인티파다가 있었다. 가자와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 점령에 맞서 봉기했다. 매일 돌을 던지고 파업을 벌이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모습이 전 세계에 중계됐다. 이스라엘은 군사력으로 진압할 수는 있었지만 수백만 팔레스타인 주민을 계속 직접 통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점령 비용이 너무 컸다. 동시에 PLO는 걸프전의 실책으로 궁지에 몰렸다. 협상만이 살길이었다. 1991년 마드리드 평화회의가 열렸지만 교착에 빠졌다. 이스라엘은 PLO와 직접 협상하기를 거부했고, 팔레스타인 대표들은 PLO 명칭조차 내세울 수 없었다. 공식 채널이 막히자 뒷길이 열렸다.
1992년 12월, 이스라엘 경제학자 야이르 히르시펠트가 런던의 한 호텔에서 PLO 재정 담당 아흐마드 쿠레이를 비밀리에 만났다. 중재자는 노르웨이 외교관 모나 율과 그의 남편 사회학자 테리에 뢰드라르센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히르시펠트가 학자였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정부 공식 대표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부는 협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수 있었다. 만약 실패하면 ‘민간인들의 비공식 접촉’으로 처리하면 됐다. 그 교묘한 불확실함 속에서 역사가 시작됐다. 9개월 뒤 백악관 잔디밭의 그 악수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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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먼저, 협상은 나중
영화 ‘오슬로’는 이 9개월을 정면으로 다룬다. 전쟁 장면은 없다. 폭발도 총성도 없다. 영화의 전장은 노르웨이의 눈 덮인 저택이고, 무기는 대화다.
첫 만남 장면이 영화의 모든 것을 압축한다.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이 처음으로 같은 식탁에 앉는다. 아무도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모나(루스 윌슨)가 와인을 따르고 식탁 배치를 슬그머니 바꾼다. 같은 편끼리 붙어 앉았던 자리가 어느 순간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이 섞이게 된다. 그것이 모나의 전략이다. 협상 전에 인간적 친밀감을 갖도록 하는 것. 공식 입장을 내세우기 전에 상대방의 이름을 먼저 알게 하는 것.
히르시펠트(도브 글리크만)가 처음으로 쿠레이의 아들 이야기를 듣는 장면. 쿠레이(살림 다우)가 이스라엘 측 협상자의 농담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 영화는 이 작은 균열들을 집요하게 포착한다. 그 균열에서 협상이 자란다. 뢰드라르센(앤드루 스콧)은 중재자이면서도 협상이 흔들릴 때마다 자신이 어느 편인지 모르는 듯 흔들린다. 모나는 반대다. 흔들리지 않는다.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은 협상이 결렬 직전까지 가는 순간이다. 팔레스타인 측이 짐을 싸기 시작할 때 모나가 말한다. “당신들이 지금 여기서 포기하면, 이 방 밖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피가 당신들 손에 묻는다.” 외교관의 언어가 아닌 인간의 언어다. 그 한마디가 협상을 다시 살린다.
J.T. 로저스의 원작 연극은 2016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 2017년 토니상을 수상한다. 장면 전환보다 대화가 많고 행동보다 설득이 많다. 전쟁 영화에서 가장 드문 것, 즉 적과 마주 앉아 말을 나누는 장면이 이 영화의 전부다. 총 한 발 쏘지 않고 역사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조용히 증명한다.
뒤에서 시작된 평화… 역사를 바꾼 비밀 협상
역사의 분기점이 된 협상들은 종종 공식 채널 밖에서 시작됐다. 카메라 앞에서 악수가 이뤄지기 훨씬 전, 누군가는 이미 뒷방에서 테이블을 놓고 있었다. 1962년 10월, 인류는 핵전쟁 직전까지 갔다.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이라는 사실이 미국 첩보기에 포착됐다.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해상 봉쇄를 선언했다. 소련 선박들이 봉쇄선을 향해 접근하는 동안 전 세계는 숨을 죽였다. 공식 채널에서는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비밀 접촉이 이뤄지고 있었다. 10월 27일, 케네디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과 소련 대사 아나톨리 도브리닌이 비밀리에 만나 핵심 거래를 합의했다.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는 대가로,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터키에 배치된 미국 미사일도 철수하기로 했다. 로버트 케네디는 이 거래를 반드시 비공개로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소련은 이를 수용했다. 공식 발표는 소련의 쿠바 미사일 철수만 담겼다. 터키 미사일 철수는 수십 년간 비밀로 남았다. 뒷방의 거래가 핵전쟁을 막았다.
1990년대 초, 북아일랜드는 30년째 피를 흘리고 있었다. 1969년부터 1998년 사이 3600명이 사망하고 5만 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IRA의 테러와 영국군의 진압이 교차하며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 정부와 IRA 사이의 비공식 채널이 조심스럽게 작동하고 있었다. 미국의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이 중재자로 나섰다. 1998년 4월 10일, 300시간에 달하는 마라톤협상 끝에 굿프라이데이 협정이 체결됐다. 협정이 체결된 날이 성금요일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총을 내려놓는 데 걸린 시간은 30년이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비밀 채널도, 굿프라이데이 협정도, 오슬로도 같은 구조를 갖고 있었다. 공식 채널이 막혔을 때 뒷문이 열렸다. 중재자는 강대국의 외교력이 아니라 개인의 신뢰와 관계였다. 협상자들은 처음에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상대를 인간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인식의 변화가 역사를 바꿨다. 역사는 때로 회의실이 아니라 식탁에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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