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함께하는전쟁사
연합군의 덩케르크 철수작전과 수수께끼 변주곡
고립된 연합군 40만 명 절박한 상황
민간 배 800여 척 동원 ‘다이너모’ 작전
영국 본토 성공적 철수 기적 이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동명 영화 삽입
‘님로드’ 변주곡, 숭고한 희생 극적 표현
|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대규모 기갑부대를 앞세운 독일군의 전격전이 큰 힘을 발휘했다. 더욱이 예상치 못했던 아르덴 삼림지대를 통과하는 기습에 성공함으로써 프랑스 북부에 배치돼 있던 연합군은 배후가 차단된 채 고립됐다. 독일군 주력은 파리로 향했고, 다른 한 축은 대서양을 향해 고립된 연합군을 압박했다. 지연전을 펼치던 40만 명에 가까운 연합군은 프랑스 북부 해안 덩케르크로 몰렸다. 연합군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포위된 덩케르크,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연합군
참호전을 준비하고 있던 연합군으로서는 대규모 기갑부대의 빠른 기동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런 이유로 아르덴숲을 통과한 독일군에 의해 프랑스도 40여 일 만인 6월 22일 항복했다.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접경지역으로의 독일군 진격에 대비하고 있던 연합군은 뒤가 절단되는 상황이 됐다. 당시 연합군의 주력은 영국군이었다. 만약 이들이 괴멸되면 영국 본토 방어가 어려워질 수 있었다.
연합군은 후퇴를 거듭해 프랑스 북부 해안가 덩케르크로 철수했고, 독일군은 덩케르크를 포위하며 진격했다. 그런데 1940년 5월 24일 히틀러는 덩케르크로 진격하던 독일 기갑부대에 ‘정지 명령’을 내렸다. “아(Aa) 운하를 넘지 말고 현 위치에서 3일간 정지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는 당시 국방군 최고사령부(OKW)를 통해 구데리안 등이 지휘하는 기갑부대에 하달했다. 급격하게 진격한 기갑부대와 뒤처진 보병부대 간 간격을 줄이고 정비와 휴식의 시간을 가지라는 의도였다.
갑자기 하달된 히틀러의 정지명령
진격 정지에는 덩케르크 주변의 늪지와 운하 지대가 전차 기동에 부적절하다는 지형적 요인도 있었다. 공군총사령관 헤르만 괴링은 지상군 대신 공군의 공중폭격만으로도 덩케르크에 고립된 연합군을 섬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가지 더 이유를 들자면 5월 21일 아라스(Arras) 지역 전투에서 영국군의 반격으로 독일군이 큰 피해를 본 경험이었다. 이런 이유로 당시 A집단군 사령관 폰 룬트슈테트 장군은 무리한 진격보다는 포위망을 형성하고 공군력이나 화력으로 공격할 것을 건의했다.
히틀러의 정지 명령은 기갑부대의 핵심인 속도와 충격력을 둔화시켰다. 결국 연합군은 몰살될 수도 있었던 절박한 상황에서 사흘간의 시간을 번 셈이다. 이에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해군 함정뿐만 아니라 어선, 상선, 요트 등 민간 선박까지 모두 동원하는 ‘다이너모(Dynamo)’ 해상 철수작전을 지시했다. 다이너모는 ‘발전기’를 의미하는데 당시 도버성 지하에 있는 비밀 작전실이 과거 발전기실로 사용된 곳이었기 때문에 작전명이 됐다.
|
은밀히 진행된 해상 철수작전
포위망을 형성한 독일군은 Ju-87, Ju-88, He-111 등 폭격기를 대거 투입해 해안가에 고립된 병력과 항구 시설을 무차별 폭격했다. 뒤따라오던 보병 사단들은 연합군의 방어선을 서서히 좁혀가며 압박을 가했다. 독일군 지휘부는 연합군의 역습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정비와 휴식을 통해 다음 작전인 프랑스 본토 공략을 준비해 나갔다. 그러나 연합군의 해상 철수작전이 감행되자 독일군은 당황했다. 독일 공군은 철수작전에 투입된 구축함과 민간 선박들을 직접 공격해 격침하고 덩케르크항구 항만시설을 폭격하며 철수작전을 방해했다. 히틀러도 5월 26일 정지명령을 철회하고 공격 재개를 지시했지만 이미 연합군이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철수가 진행돼 호기를 놓쳤다.
수백 척의 민간 선박이 만들어낸 ‘덩케르크의 기적’
연합군은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9일간의 작전을 통해 약 33만8000명의 병력을 성공적으로 철수시킬 수 있었다. 당시 덩케르크 철수작전에 동원된 선박은 850~930척이었다. 이 중 군함은 100~150척 정도였고, 나머지 700~800척은 민간이 소유한 작은 배들이었다. 이 민간 선박은 수심이 얕은 해안가에서 대형의 구축함까지 병력을 실어나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실상 영국에서 동원될 수 있는 모든 배가 다 작전에 동원된 셈이었다. 그것도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작전 중 200여 척 이상의 민간 선박이 침몰하거나 파괴됐다.
이 모습은 마치 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마른강 방어선에서 독일군을 저지하기 위해 파리의 민간 택시들이 병력을 실어 나르며 결전 의지를 다져 마침내 ‘마른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과도 유사하다.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국민이 하나로 뭉치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방증이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철수작전을 흔히 ‘덩케르크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성공적인 작전을 기념하며
지금도 프랑스 덩케르크에는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과 연합군 33만여 명을 구출한 철수작전을 기념하는 기념관과 다양한 기념물이 있다. 철수작전의 중심지였던 벙커를 활용해 만들어진 덩케르크 박물관은 당시 작전과 관련된 지도, 사진, 무기, 군복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 작전 중 사망한 영·프 연합군을 기리는 연합군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덩케르크 외곽을 방어하다가 전사한 영국군 810기의 무덤이 있는 영국군 공동묘지도 있다.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도 많다. ‘덩케르크’ ‘다키스트 아워’ ‘아름다운 날들’ ‘어톤먼트’ ‘미니버 부인’ 등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2017년 작품 ‘덩케르크’다. 놀런은 이 영화에서 독일군에게 포위돼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병력 40만 명의 절망적인 상황과 영국 본토로 탈출하는 다이너모 작전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포위된 절망적 상황을 ‘수수께끼 변주곡’으로 묘사
특히 이 영화에 사용된 에드워드 엘가(1857~1934)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9변주곡 ‘님로드(Nimrod)’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서정적인 선율을 통해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서로 의지하는 병사들의 인간애와 숭고한 희생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영국의 근대 음악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작곡가로 우리에게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잘 알려진 엘가는 ‘수수께끼 변주곡’을 1898년 완성했다.
엘가는 아내에게 피아노를 즉흥적으로 연주해 주다가 친구들의 모습을 묘사하게 된 것이 계기가 돼 하나의 원초적 주제(Theme)와 14개의 변주곡으로 작곡했다. 원제는 ‘오리지널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지만 엘가가 “이 곡에 숨겨진 또 다른 테마가 있지만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수수께끼’라는 별칭이 붙었다. 1변주는 엘가의 아내를 묘사하는 곡이고, 9변주는 엘가의 절친한 친구였던 악보 출판업자 아우구스트 예거를 묘사한 곡이다. 그리고 마지막 14변주는 엘가 자신을 묘사하며 웅장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해당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