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5월 일본 유학생들이 ‘대조선인일본유학생친목회’를 결성하고 이듬해 2월 『친목회회보』를 창간한다. 하지만 발간 장소가 일본 도쿄이다 보니 우리 땅에서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잡지는 독립협회가 1896년 11월 30일 발행한 『대조선독립협회회보』로 알려져 있다. ‘독립신문’이 1896년 4월 7일 창간됐고, 약 7개월 후 이 잡지가 발행된 것이다. 4×6판형과 5×7판형의 중간 크기에 24면 또는 28면으로 매달 15일과 말일에 발행됐다. 기사는 한자 전용, 국한문 혼용, 한글 전용의 3가지로 인쇄됐고 1897년 8월 15일까지 통권 18호가 나왔다.
초창기 근대잡지의 발행 주체는 교회 등 종교 계통을 비롯해 유학생 단체, 학회 또는 단체, 독립된 잡지사 등이었다. 독자적인 잡지사가 발행하는 잡지의 등장에 앞서 종교 계통과 유학생 또는 학회가 먼저 잡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사회적 여건 때문이었다. 또한 잡지들은 계몽적인 내용을 주로 다룸으로써 개화와 자강사상을 전파하는 데 기여했다. 근대잡지 형성기에는 상업성을 초월해 민족사상 함양에 주력함으로써 본격적인 종합잡지와 전문잡지들이 나타날 토대를 닦아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든 면에서 체계가 갖춰진 근대적 의미의 종합잡지는 1908년 11월 창간된 『소년』이다. 이 잡지는 육당 최남선과 최창선 형제가 설립한 출판사 신문관에서 발행한 것으로 1911년 5월 통권 23호까지 나오고 폐간됐다. 잡지계에선 1966년도부터 『소년』이 우리나라 잡지문화 정착에 미친 영향을 기리기 위해 이 잡지가 창간된 11월 1일을 ‘잡지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이 같은 토대 위에서 우리 잡지는 현대로 이어졌다. 지금은 종이잡지보다 디지털잡지가 우세하고, 그마저 활자보다 영상 이미지에 밀리는 형국이다.
개인적으로 지난 30여 년간 1만 종 이상의 잡지 창간호를 수집하면서 느낀 감회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잡지가 우리 땅에서 명멸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내용의 다양성에 놀랐으며, 깊이와 넓이가 다채로우면서도 천양지차라는 사실에 거듭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운영하는 ‘처음책방’에는 수많은 잡지 창간호가 웅크리고 있다. 활짝 펼쳐 놓을 공간이 없다 보니 서로 포개져 있거나 얼기설기 쌓여 있거나 종이상자 안에 갇혀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책장에 꽂혀 있는 것도 책등만 간신히 보이는 형국이라 어떤 잡지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창간 당시엔 하나같이 존재감을 뽐냈던 당대(當代)의 총아들이건만, 이제는 잊힌 것도 모자라 방치돼 있다니. 전국을 다니며 발품과 손품을 팔아 모은 것들이니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그것들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
대내외적 여건이나 근대화를 위한 사회적 토대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시대 배경으로 보건대 『소년』뿐만 아니라 당시 등장했던 모든 잡지는 우리나라 근대화 및 자주독립을 향한 열망에 기여한 점, 식민지 시대를 건너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 소중하다. 잡지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당대를 대표하고, 당대를 대변하고, 당대를 이끌었던 공로자들이다. 잡지를 가리켜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래서 더욱 잡지를 읽어야 한다. 어떤 잡지든 그 속에 시대가 들어 있어서다. 단언컨대 잡지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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