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아치형 기념물…승리·지배의 정당성 세우다

입력 2025. 06. 25   16:01
업데이트 2025. 06. 2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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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사람 그리고 세계문화유산
세베루스 개선문 - 황제와 로마군단의 승전을 시각화하다

제1차 유대전쟁 승리 기념 ‘티투스’
나폴레옹 아우스터리츠戰 상징 ‘에투알’
파르티아 원정 승전 시각화 ‘세베루스’
로마제국 영토 곳곳 개선문 유적 남아
대리석 건축물 정상부에 헌정 비문
부조로 조각한 전투·개선장면 백미
고대 로마 건축 양식 엿볼 수 있어

세베루스 개선문의 위용. 사진=위키백과
세베루스 개선문의 위용. 사진=위키백과



개선문(凱旋門·Triumphal Arch)은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위인의 공덕을 기리고 후대에 기억할 목적으로 세운 아치형 기념물이다. 그러다 보니 이는 통상 큰 전쟁에서 승리하고 귀환하는 장군이나 통치자의 업적을 기리기에 전쟁과 관련이 깊다. 개선문 하면 흔히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에투알 개선문을 떠올린다. 물론 이것도 황제 나폴레옹이 1805년 12월 초 아우스터리츠전투에서 거둔 대승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됐다.

역사적으로 개선문의 원조는 바로 로마제국이었다. 고대 로마는 강한 군사력을 토대로 융성한 문명이었기에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이에 따라 군사적 승리를 염원하고 이를 찬양 및 기념하는 문화가 보편화돼 있었다. 이러한 군사문화에서 배태돼 나온 관행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개선문 건립이었다. 실제로 제국 전역에 걸쳐 많은 개선문이 존재했고, 각각 특정한 역사적 사건·인물과 관련돼 있었다. 통상 선대의 업적을 드높이고 당대의 정통성을 고양할 의도로 바로 뒤이은 후임 황제가 세웠다.

 

로마제국에서 개선문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었다. 제국의 통치력, 군사력, 종교 및 시민의 정체성을 집약한 상징적 건축물이었다. 개선문은 황제의 승리를 기리는 동시에 제국 전체에 지배자 로마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일종의 시각매체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에 개선문은 로마제국 멸망 이후에도 유럽 각국에서 권력의 시각적 구현물이자 집단기억의 저장소로 모방됐다.

 

긴 세월 동안 제국의 수도로 군림한 로마에, 그것도 도시 심장부 격인 포로 로마노 주변에 개선문이 다수 들어섰다. 예컨대 제1차 유대전쟁(66~73)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81년경 세운 티투스 개선문, 파르티아 원정(197~199) 승전을 시각화한 203년 세베루스 개선문, 그리고 밀비우스다리전투(312)에서의 극적인 승리를 알려주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외에 로마제국 영토 곳곳에 군사적 승리와 로마 지배의 정당성을 선전할 목적으로 건립된 개선문 유적이 남아 있다.

이처럼 다양한 개선문 중 로마제국 대외 정복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간직한 유적이 바로 포로 로마노 동편 끝에 있는 세베루스 개선문이다. 이는 고대 로마 개선문 가운데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할 뿐만 아니라 예술적 가치도 빼어난 기념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적 가치보다 더 중요한 점은 아마도 당대 로마의 최대 경쟁국이던 파르티아제국을 물리쳤다는 군사적 의미일 것이다.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 사진=위키백과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 사진=위키백과

 

개선문의 주인공인 로마제국 20대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대리석 흉상. 사진=위키백과
개선문의 주인공인 로마제국 20대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대리석 흉상. 사진=위키백과

 

이탈리아 로마 포로 로마노 내부에 자리한 티투스 개선문과 멀리 보이는 콜로세움. 사진=위키백과
이탈리아 로마 포로 로마노 내부에 자리한 티투스 개선문과 멀리 보이는 콜로세움. 사진=위키백과



당시 파르티아제국은 근동 지역 패권 국가로서 사실상 로마보다 긴 역사를 갖고 있었다. 영토 또한 유프라테스강에서 인더스강에 이를 정도로 광대했고, 군사력도 결코 로마에 뒤지지 않았다. 특히 중동의 지형적 특성상 파르티아군은 전통적으로 기동성이 뛰어난 기병 중심의 군대를 운영하고 있었다. 기병의 핵심을 이룬 기마 궁수와 중(重)기병이 구사한 유기적 순환(회전) 전술은 중무장보병 위주의 로마군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바로 이 개선문은 이처럼 강력한 상대였던 파르티아 제국을 194년(1차)과 특히 197~199년(2차) 두 차례에 걸친 원정으로 제압한 세베루스 황제(제위 193~211)의 치적을 선양(宣揚)할 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역사적으로 소아시아 지방으로 진출한 이래 로마는 파르티아 제국과 시리아 및 아르메니아 등 중동과 중앙아시아 완충 지대를 둘러싸고 수차례 맞부딪쳤다. 그런데 그 이전의 충돌에 비해 세베루스 황제가 수행한 파르티아 전쟁은 두 제국 간에 장기적인 경쟁 구도 속에서 일어난 가장 결정적인 군사적 충돌이자 로마의 대승이었다.

이때의 원정에서 세베루스 황제는 198년 파르티아 수도 크테시폰을 점령하고, 수많은 포로와 막대한 전리품을 제국 중심지 로마로 가져왔다. 물론 오래 유지되지는 못했으나 로마제국의 동방 지배권이 크게 강화되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었다. 치열한 내전을 통해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황제로 등극한 세베루스는 이러한 군사적 치적을 널리 알려 권력 기반을 다지고 후대에 남기고자 했다.

203년 로마 중심부에 들어선 세베루스 개선문은 3개의 아치형 통로가 있는 삼문(三門) 형식의 대리석 건축물(높이 23m, 너비 25m, 깊이 11.85m)이었다. 중앙의 대형 아치 1개를 중심으로 좌우로 2개의 작은 아치를 거느리고 있었다. 전면에는 코린트식 기둥이 4개씩 부착돼 있고, 기둥 위에는 수평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를 연결한 형태의 엔태블러처(entablature)가 있었다. 그리고 맨 정상부에는 개선문 주인공에게 헌정하는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사실상 세베루스 개선문의 백미는 벽면 돌 위에 새겨진 부조 조각 장면이었다. 개선문 양 측면과 내부에 걸쳐 파르티아 원정 중 일어난 로마군 보병과 파르티아 기병 사이의 전투 장면, 적군 대표단의 항복 장면, 그리고 세베루스 황제의 개선 승마 행진 장면 등이 부조로 생동감 있게 표현돼 있다. 그래서 이 개선문은 사실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잘 구현하고 있는 기념물로 예술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개선문의 주인공인 세베루스 황제는 도대체 어떠한 인물일까? 그는 로마제국의 첫 번째 아프리카 출신 황제로 이른바 5현제 시대 이후 극심한 내부 혼란에 처했던 제국을 재차 안정화한 통치자였다. 로마시민권을 취득한 북아프리카 귀족 가문 출신인 세베루스는 정치적으로 신중하고 유능한 행정관이자 특히 군사적 역량이 뛰어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총애를 받았으나 이어진 코모두스 황제(제위 180~192)의 잔혹한 치세 동안에는 은인자중한 처세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코모두스가 암살된 후 도래한 권력 공백기에 발 빠르게 움직여 정권 장악의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이처럼 세베루스는 통상적인 황위 계승 절차가 아니라 내전 상황에서 군대의 충성과 무력을 이용해 경합자들을 물리치고 권좌에 오른 경우였다. 따라서 대외 원정을 통해 통치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로마 시민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욕구가 강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제국의 전통적 난적이던 파르티아 제국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고 과시하는 일이야말로 이러한 목적 달성에 적합한 아이템이었음에 분명하다.

로마는 공화정 시기부터 대외 승전을 공개적으로 축하하는 개선식을 치렀기에 당연히 승리를 기념하고 역사화하는 상징물로서 개선문을 필요로 했다. 특히 개선문 표면에 새겨진 다양한 전투 장면을 표현한 부조를 통해 로마 시민들은 통치자 황제의 승리와 제국의 영광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로마의 카피톨리노 언덕 기슭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세베루스 개선문은 이러한 정치적 상징성 이외에 고대 로마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유적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1980년 ‘로마 역사 중심지’ 내 유적의 일부로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필자 이내주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로,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내주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로,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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