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6·25전쟁 영웅 김영덕 육군이등중사·랄프 몽클라르 프랑스 육군중령
국가보훈부는 일제의 민족차별에 맞서 한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헌신한 이재유·김사국·강주룡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이재유(1905~1944) 선생은 일본 도쿄 유학 중 노동운동에 나서 한국인 노동자단체 조직 및 민족 독립과 노동권 신장을 모색했다. 또한 서울에서 ‘경성트로이카’를 조직하고 △노동자·농민단체 조직 △독서회를 통한 학생운동 지도 등의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선생은 반복된 체포와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청주보호교도소에서 순국했다.
김사국(1895~1926) 선생은 1919년 한성정부 수립을 위한 조선국민대회를 준비하다가 검거돼 복역했다. 출옥 후 청년운동에 헌신했고, 일본을 오가며 노동운동단체를 조직해 민족단결을 강조했다. 선생은 간도에서 대성중학교 부설 동양학원을 설립한 뒤 일제의 탄압을 피해 도피, 만주 닝구타(寧古塔)에서 대동학원을 세우는 등 민족교육에도 헌신했다.
강주룡(1901~1932) 선생은 평양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중 1931년 한국인 노동자의 임금 인하에 반발한 파업 과정에서 ‘을밀대 지붕 투쟁’을 벌이며 노동자의 권리를 외쳤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의 연대와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사회적 관심을 모았다. 이후 평양 노동조합사건 연루 혐의로 체포됐고 건강이 악화해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사망했다.
당시 한국인 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일제의 식민지적 억압·수탈과 민족차별에까지 시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들은 노동운동과 동시에 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해 적극 투쟁했고, 이들의 노동운동은 일제를 향한 저항과 민족 독립을 지향하는 투쟁으로 발전했다. 정부는 애국지사들의 공훈을 기리고자 이재유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김사국 선생과 강주룡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
|
|
|
같은 날 보훈부는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김영덕 육군이등중사와 랄프 몽클라르 프랑스 육군중령을 ‘5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
김영덕 이등중사는 1952년 3월 육군에 입대한 후 8사단 16연대 11중대에서 복무했다. 당시 8사단은 강원 인제군 서화계곡 일대에서 전투를 수행 중이었고, 김 이등중사는 1952년 9월 812고지 일대에서 북한군의 공격에 맞서 싸우며 전공을 세웠다.
이후 1953년 5월 8사단은 수도고지·지형능선에 투입돼 중공군과 치열한 쟁탈전을 반복했다. 김 이등중사는 고지 공격 중 총탄에 다리 부상을 입었음에도 포복으로 적의 기관총 진지까지 접근해 총안구(총구멍)로 수류탄을 밀어 넣었다. 적 진지 폭파에 성공했지만, 김 이등중사도 함께 전사했다. 정부는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이등중사로 1계급 특진(전투 당시 하사)과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랄프 몽클라르 중령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각종 무공훈장을 수여받은 프랑스의 전쟁영웅이다. 육군중장이었지만 6·25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대대를 지휘하기 위해 대대 지휘관인 중령으로 강등을 자청해 유엔군으로 참전했다.
그가 지휘하는 프랑스대대는 미 2사단 23연대에 배속돼 중공군의 2월 공세 당시 전략요충지인 지평리에 투입됐다. 1951년 2월 중공군이 지평리를 포위하면서 미 23연대와 프랑스대대는 고립됐다. 험난한 지형과 살을 에는 혹한 속에서 3일 밤낮으로 이어진 적의 파상공격을 물리쳤다. 지평리전투의 승리는 중공군 참전 이후 유엔군에 승리의 자신감을 안겨 줬으며, 재반격 기틀을 마련해 유엔군이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역할을 했다. 박상원 기자/사진=국가보훈부·서울역사아카이브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해당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