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인 한승범은 어제까지 공군 조종사의 아들이자 공군 병사로 복무 중인 아들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대한민국 국민조종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처음 국민조종사라는 제도를 접하고 지원서를 쓰던 날, 마음 한편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느꼈다. 아버지가 지켰고 아들이 이어가고 있는 하늘. 그 가운데 서서 ‘국민의 대표’가 돼 무엇인가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다. 서류심사를 통과했지만 면접과 체력·적응 테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면접관들의 질문은 짧았으나 필자의 대답은 무거웠다. 내 삶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늘은 젊은이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도전할 수 있고 꿈꿀 수 있습니다. 늦은 비행이 누군가에게는 늦지 않은 용기가 됐으면 합니다.”
면접을 준비하는 내내 되뇌던 이 문장을 면접장에서 담담히 말했다. 62세의 나이지만 세상에 ‘가능성의 증명’이라는 메시지를 건네고 싶었다.
비행 당일, 캐노피 너머로 펼쳐진 풍경은 너무나 고요했다. 항공기가 급상승과 선회를 할 때마다 중력이 몸을 붙잡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군 조종사는 직업이 아니라 헌신이며, ‘대한민국 최후의 방패’라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18세에 전쟁터에 나가 폐허와 절망의 땅 위에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조종사의 꿈을 이루신 아버지. 평생 공군 조종사로서 대한민국 하늘을 지켜온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나는 국민을 대표해 조국의 하늘로 올랐다. 국민조종사가 돼 대한민국 공군의 숭고한 사명과 전문성을 온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수많은 공군 장병과 그 가족들의 헌신으로 쌓아 올린 가을의 높은 하늘을 날고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가슴이 벅차올랐다.
착륙 후 캐노피가 열리자마자 아버지께 “임무완수, 필승!”을 외치며 경례했다. 그 경례는 아버지께서 국가와 국민에 대해 무수히 올렸던 경례의 연장선이자, 이제는 아들이 이어갈 경례의 출발점이었다. 국민조종사 임명식과 빨간 마후라 수여식이 끝나고 공군참모총장께서 직접 아버지께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감사를 전하셨다. 아버지는 “우리 집은 3대가 공군입니다”라고 운을 떼며 가족을 소개하셨다. 우리의 신념과 정신이 이어지며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국민조종사는 군과 국민의 간극을 메우는 다리다. 국민은 군의 헌신을 직접 체험하고, 군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 그리고 그 다리가 단단해질수록 안보는 일상의 존중이 된다. 단순히 전투기를 체험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한 국민이 군과 숨결을 맞추며 나라를 지킨다는 사명이 무엇인지 느끼고, 공군의 숭고한 정신과 전문성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자리라는 것을 이번 선발 과정과 체험비행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비행은 여기서 끝나지만 국민조종사로서의 역할은 이제 시작이다. 경험했던 모든 내용을 ‘용기의 언어’로 바꿔 세상에 소개하고자 한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하늘은 당신의 나이를 묻지 않는다”고 말하겠다. 그리고 가정과 일터, 지역사회에서 군을 향한 감사와 이해를 확산시키겠다. 무엇보다 국민을 대표해 하늘로 날았던 오늘을 기억하며, 국민조종사이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내일을 살아가겠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해준 대한민국 공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이 순간에도 영공방위를 위해 묵묵히 임무를 완수하고 있는 모든 공군 장병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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