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와 AI시대, 장교에게 술(術)과 과학이란 무엇인가

입력 2025. 07. 14   15:34
업데이트 2025. 07. 1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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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현 중령 해군사관학교 작전학과 교수
김필현 중령 해군사관학교 작전학과 교수

 


21세기 국방환경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그 양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은 전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오며, 군사작전의 개념 자체를 혁신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 속에서 장교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갖춰야 할까? 나는 ‘술(術)’과 ‘과학(科學)’이라는 두 개념을 중심으로 물음에 답해보고자 한다.

전통적으로 군사에서 ‘과학’은 객관적인 사실과 논리를 바탕으로 한 기술적, 이론적 기반을 의미한다. 현대의 빅데이터 역시 이러한 과학의 산물이다. 정찰위성, 드론, 각종 센서에서 쏟아지는 막대한 정보는 명확한 사실에 근거한 판단을 가능하게 하며, 적의 움직임을 수치화하고 분석하고 예측하게 만든다.

즉, 빅데이터는 과학적 사고를 통해 전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정량적 정보를 토대로 합리적 결심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술’은 전통적으로 병법에서 창의적 전략, 전술적 기지, 지휘관의 감각을 일컫는 말로 사용돼 왔다. AI는 바로 이 술의 영역을 현대적으로 대변한다고 본다.

AI는 단순히 정보를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예측하며, 때로는 인간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창의적 선택을 제시한다. 이러한 AI는 장교의 ‘술’을 강화하고, 비정형적 전장에서의 유연한 결심을 가능하게 한다. 이 둘의 조화를 가장 인상 깊게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명량해전’이다.

이순신 제독은 열악한 전력과 극도로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과학적 사실에 입각한 판단과 술을 발휘한 지휘로 대승을 거뒀다. 조류 방향과 속도, 해협의 폭, 적의 기동제한 등을 철저히 분석한 것은 ‘과학’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만으로 전투는 승리하지 못한다.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로 이끈 명량해전은 과학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창의성과 결단, 즉 ‘술’이 핵심이다. 울돌목의 협소한 수로를 활용해 적의 수적 우세를 무력화하고, 기습과 유인을 통한 전술적 교란은 AI시대의 ‘전술 알고리즘’보다 앞선 인간 술기의 극치였다.

하지만 AI가 아무리 발전하고, 빅데이터가 쏟아지더라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 장교는 이러한 과학과 술을 운용할 수 있는 기본 군사지식과 교리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작전환경, 병력 운용, 무기체계의 원리, 전장 분석 능력 등 기초 군사 지식은 과학의 ‘언어’이며, 그 위에 세워지는 창의적 판단은 술의 ‘화법’이다. 이 두 가지가 균형 있게 준비될 때, 장교는 기술의 노예가 아니라 기술을 지휘하는 지휘관이 될 수 있다.

빅데이터와 AI는 이제 단순한 보조수단이 아니라 군사작전의 핵심 요소다. 과학이 제공하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술이 요구하는 창의적 결단을 끌어내는 것, 그것이 오늘날의 장교가 갖춰야 할 역량이다. 이순신 제독이 그러했듯 우리는 과학이라는 나침반과 술이라는 돛을 함께 펼쳐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군사 지식’이라는 선체가 반드시 존재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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