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겨울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우리나라에서도 60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 죄수들이 폭우 속에서 노를 저으며 외치는 절규, 도시 변두리의 음습함과 대중의 척박한 삶, 미리엘 주교의 인자한 미소와 회심한 장발장의 결기 넘치는 노래는 영화 초반부터 관객을 압도한다. 여기까지가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에서 ‘빵을 훔쳐 죄수가 된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를 만나 갱생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줄거리는 소설 초반 일부에 불과하다. 빅토르 위고는 장대한 이야기를 통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국가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진지한 시선으로 다룬다. 장발장의 삶이 인간의 ‘사랑과 용서’라는 가치를 상기시켰다면, 프랑스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우리를 또 다른 주제에 대한 사색으로 안내한다.
프랑스 시민들은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감옥을 점령하고 왕을 끌어냈다. ‘바스티유 데이’라고도 부르는 프랑스혁명 기념일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40여 년 후 왕정에 저항했던 청년들은 군대에 의해 처참히 짓밟힌다. ‘레미제라블’은 1832년 6월 일어난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와 청년들이 쌓았던 바리케이드는 왕정 군대에 의해 힘없이 무너진다. ‘반동 시기’라고 불리는 역사적 퇴행의 결과였다.
프랑스 국민도 생각이 나뉘었다. 마리우스는 ‘공화파였던 아버지’를 증오한 ‘왕당파 할아버지’와 갈등을 겪는다. 소설 속 인물들의 대사가 갈등의 내용을 보여준다.
마리우스와 함께 바리케이드를 지켰던 앙졸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주권이 자유입니다. 모두 같이 권리를 누리는 것이 평등이며, 서로를 보호하고 하나 되는 것이 박애입니다”라며 자유·평등·박애의 이상을 설파한다. 이 가치는 오늘날 프랑스 국기에 삼색으로 선명히 새겨 있다.
한편 마리우스의 할아버지 질노르망은 왕이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군주 없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간단 말이냐” “폭동을 혁명이라 부르지 마라”고 말하며, 공화정에 대한 격렬한 혐오를 표출한다. 그는 기존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왕정을 지지했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 팽배했던 세대의 간극과 신념의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빅토르 위고가 소설을 집필할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설 『레미제라블』은 1851년 망명 이후 영국령 섬에 머물던 시기에 완성됐다. 공화적 이상을 담고 있는 세기적 저작은 1862년 프랑스와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출간과 함께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첨예한 논쟁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각계의 ‘질노르망’들이 ‘앙졸라’의 메시지를 불편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고가 지금 시점에서 19세기 프랑스를 되돌아본다면 어떤 심정일까? 오늘날 프랑스혁명은 ‘근대 민주주의 토대를 마련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프랑스혁명 기념일 즈음해 영화 ‘레미제라블’이 선사하는 깊은 감성의 노래와 묵직한 메시지에 빠져 보는 건 어떨까 한다. 우리 국군이 지키는 민주주의가 프랑스혁명에서 태동한 근대 민주주의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긴 호흡으로 원작 소설에 도전해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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