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 벗고 교단으로…가족 품고 주특기는 살렸죠”

입력 2025. 07. 07   16:47
업데이트 2025. 07. 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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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공동연재 제대군인 취·창업 성공기 ‘내 일(Job) 출근합니다’
21. 조승제 예비역 육군중령

군복을 벗었지만, 조승제(예비역 육군중령) 씨는 다시 군을 위해 일하고 있다. 군인으로 돌아간 것도, 그렇다고 군무원도 아니다. 바로 미래 육군·공군의 정예 기술부사관이 될 학생들을 길러 내는 ‘선생님’으로서다. 23년간의 군 생활을 명예롭게 마무리하고, 경남자동차고등학교에서 군특성화고 교사로 제2의 인생을 열어 가고 있는 그에게서 취업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정리=임채무 기자/자료=국가보훈부 제공

 

전역 후 군특성화고 교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조승제 씨는 “용기 있는 첫걸음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전역 후 군특성화고 교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조승제 씨는 “용기 있는 첫걸음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학창 시절, 그의 꿈은 성악가였다. 고교 때 합창단 활동을 하며 무대를 꿈꿨지만, 대입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결국 조씨는 다른 학과에 진학하게 됐고, 평범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해병대 출신인 아버지는 특유의 절제된 언어로 베트남전 참전 경험담을 들려주시며 ‘책임지는 삶, 누군가를 지키는 삶’의 무게를 아들에게 일깨워 줬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그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겼고, 군인이라는 직업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그렇게 조씨는 1995년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해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임관 후 첫 근무지는 육군12보병사단 수색대대 전방초소(GP)였다. 1996년 9월, 6개월간의 혹독한 GP 근무를 마치고 철수를 준비하던 바로 그날,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터졌다. 철수는 즉각 취소됐고, GP장 임무는 두 달 가까이 연장됐다. 극한의 피로에도 조국 수호의 최전선에 섰던 이 경험은 그를 더욱 단단한 군인으로 만들었다.

이후 수송병과 장교로서 특수전사령부 천마부대, 2작전사령부, 국군수송사령부 등에서 지휘관과 참모 직책을 두루 거치며 군인으로 성장했다. 특히 육군훈련소에서 근무하던 시절, 간호장교이던 현재의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흥미로운 점은 아내 역시 전역 후 교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씨는 “아내가 먼저 전역해 김해중앙여고에서 보건교사로 재직 중”이라며 “부부가 전역 후 교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웃었다.

그는 제대군인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직업은 생계수단을 넘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나침반입니다. 군대에서 달았던 계급장을 내려놓고,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마주할 용기를 가지세요. 그 용기 있는 첫걸음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겁니다.”


조승제(맨 위) 씨가 학생들에게 자동차 엔진 구조를 가르치고 있다.
조승제(맨 위) 씨가 학생들에게 자동차 엔진 구조를 가르치고 있다.



1. 가족 위해 전역 결심

진급해 자부심 커질수록 
가족과는 더 멀어지더라 
균형 맞추려 가족 곁으로


계급이 올라갈수록 군인으로서 자부심은 커졌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군인의 숙명이라고 여겼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공허함은 쉬이 채워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역이라는 큰 결단을 내렸다. 조씨는 “더 늦으면 소중한 것들을 놓칠 것 같았다”고 당시 심정을 회고했다.

2018년 23년간의 군 생활을 명예롭게 마친 그는 국제라이온스협회 사무국장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년간 국내외 봉사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보람을 느꼈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은 비어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타인을 위한 봉사에 몰두하느라 정작 나 자신과 가족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며 “전역하면 되찾고 싶었던 삶의 균형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2. 교실에서 찾은 새로운 소명
가뭄의 단비 같았던 ‘군특성화고 교사’로 첫발
6년간 제자 120여 명 키워내며 자긍심과 보람

방향을 잃고 고민하던 조씨에게 경남제대군인지원센터의 연락은 가뭄의 단비 같았다. ‘군특성화고 교사’ 채용소식이었다. 마침 국방부 군특성화사업이 전국 23개교 40개 학과로 대폭 확대된 게 큰 기회로 작용했다. 센터의 체계적인 지원(취업간담회, 서류작성법, 실무상담) 덕분에 그는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었고, 마침내 합격 통보를 받았다.

2019년 2월, 그는 경남자동차고 자동차과 군특성화고 교사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가 맡은 자동차과는 내연기관은 물론 군에 보급이 확대되고 있는 전기차까지 아우르는 첨단 차량 정비교육을 실습 위주로 진행한다. 특히 벤츠·볼보 등 세계적 기업과의 협약으로 학생들이 전역 후에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지난 6년간 그가 길러 낸 제자는 120여 명. 이들 중에는 부사관으로 임관해 중사로 진급한 졸업생도 있다. 조씨는 “휴가 나온 제자들이 학교에 찾아와 후배들에게 조언해 주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과 자긍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3. 진짜 나를 찾으세요
주4일 근무에 방학은 덤 ‘만족도 최상’…제자들, 군 핵심 간부로 성장해주길

처음부터 교직이 쉬웠던 건 아니다. 계급과 서열에 익숙했던 그에게 수평적인 교직문화는 낯선 도전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조직에 적응하며 마음이 편해지고, 성격도 유연해져 인간관계가 더 넓어졌다”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조씨는 현재의 삶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그가 말한 군특성화고 교사의 매력은 주 4일 근무와 방학이었다. 그렇기에 군 복무 시절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교사로 근무 중이다. 학생들의 성공적인 군 생활을 위해 군사 기초지식부터 부대생활 요령까지 현실적인 멘토링을 제공하고, 전·후반기 각 1회씩 제자들이 복무하는 부대를 찾아가 격려하는 일을 자진해 하고 있다.

그는 “제자들이 군의 핵심 간부로 성장하거나 설령 전역하더라도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는 인재가 되길 바란다”며 “군에서의 경험은 어떤 상황에서도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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