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군대이야기’ 북한 도발 시리즈 ②제2연평해전

입력 2023. 11. 07   17:30
업데이트 2023. 11. 2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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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258발의 붉은 외침
절대 내려오지 말라
또다시 NLL 침범하면
박살 내 그 자리에 침몰시키겠다

2002년 6월 29일 북 경비정 NLL 불법 침범 해군 참수리 357호정 기습 공격
전사 순간까지 타기 꼭 쥔 한상국 상사, 방아쇠 잡은 조천형 상사…그날의 참상 고스란히
6용사 유토탄고속함 부활 전투 현장 지켜…“피 흘려 NLL 지킨 서해 영웅의 신념 잊지 않을 것”

해군에는 윤영하함부터 박동혁함까지 6용사의 이름을 딴 유도탄고속함 6척이 서해 NLL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해군에는 윤영하함부터 박동혁함까지 6용사의 이름을 딴 유도탄고속함 6척이 서해 NLL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해야 하는 장병들에게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는 강한 정신전력입니다. 강한 정신전력은 적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에 국방홍보원은 국방부 정신전력문화정책과와 함께 최근 북한의 도발 역사를 되짚어 봅니다. 정전협정 이후 북한군이 대한민국 영토를 직접 포격한 최초의 사건인 연평도포격전이 있었던 11월을 맞아 국방TV를 통해 ‘그날군대이야기 특별편 북한 도발 시리즈’를 선보이는 것입니다. 천안함피격사건에 이은 두 번째 주제는 제2연평해전입니다. 안승회 기자 


북한군의 불법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제2연평해전

2002년 6월 29일 오전 9시30분경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불법으로 침범해 대한민국 해군 참수리 357호정을 기습 공격했다. 북한군의 선제공격으로 357호정 승조원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다치는 큰 피해를 당했다. 그런 와중에도 357호정 승조원들은 목숨을 걸고 적과 맞서 싸웠다. 결국 북한군 경비정은 30여 명의 사상자가 나온 가운데 화염에 휩싸인 채 퇴각했다. 대한민국이 서해 NLL을 사수해 낸 승전, 제2연평해전이다.

“357호정을 볼 때면 고 윤영하 정장님을 비롯한 전사자 6용사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치열했던 전투 상황이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집니다. 한편으로는 승전의 역사에 있었던 군인으로서 자부심도 큽니다.”

제2연평해전 당시 357호정 부정장이었던 이희완 대령(진)의 말이다. ‘그날군대이야기 북한 도발 시리즈’ 2회 제2연평해전 편에선 이 대령(진)과 군사편찬연구소 최정준(선임연구원) 박사가 화자로 출연한다. 두 사람은 청자로 등장한 육·해·공군, 해병대 장병들에게 북한군의 치밀한 군사도발로 인해 발발한 제2연평해전에 대해 설명한다. 영상 속 배경은 해군2함대에 있는 서해수호관 일대. 실제 전투에 임했던 참수리 357호정이 전시된 곳이다.

참수리는 해군 함정 중에서 가장 작은 고속정이다. 길이는 약 37m, 높이는 약 10.7m다. 속력이 빠르고 신속한 고속정의 특성을 고려해 날렵한 조류인 ‘참수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참수리는 한반도 해역의 최전방에서 연안 방어 임무를 수행한다. 제2연평해전에 참전했던 357호정에는 당시 교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수백 개의 피탄 자국이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를 짐작하게 한다. 당시 북한 경비정 2척이 357호정에 발사한 총탄 수는 총 258발. 피탄 자국은 특정 몇몇 지점에 몰려 있다.

“당시 북한군 초탄이 겨냥한 곳은 정확히 함교, 통신실, 기관실이었습니다. 북한군의 85㎜ 주포가 ‘쾅! 쾅쾅!’ 소리를 내며 주요 시설물부터 타격했는데 이것은 북한군의 치밀하고 계획적인 도발이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이 대령(진)의 증언이다.


제2연평해전에 참전했던 참수리 357호정 모습. 빨간색 페인트로 표시된 피탄 자국이 당시 치열했던 전투를 짐작하게 한다.
제2연평해전에 참전했던 참수리 357호정 모습. 빨간색 페인트로 표시된 피탄 자국이 당시 치열했던 전투를 짐작하게 한다.



서해수호관 NLL해전실

출연진들은 서해수호관 내부에 있는 NLL해전실로 자리를 옮겼다. 대한민국 해군이 NLL을 지키기 위해 북한군과 맞서 싸운 여러 해전을 소개한 곳이다. NLL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한반도 해역에서 남북 간 무력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설정한 해상경계선이다.

하지만 북한은 수시로 NLL을 침범하며 도발을 일삼아 왔다. 최 박사는 “우리 해군 장병들은 투철한 군인정신을 바탕으로 온몸을 바쳐 대한민국 영해를 수호해 왔다”며 “NLL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린 전우들의 희생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전협정 이후 남북 간 첫 해전인 제1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 발발했다. 연평도 서남쪽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이 기습적으로 사격을 가하면서 교전이 시작됐다. 제1연평해전은 아군 전사자 없이 북한군 어뢰정 1척이 격침되고 경비정 1척이 대파되며 대한민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이 대령(진)은 “제1연평해전에서 패배한 북한군이 보복성 도발로 제2연평해전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제2연평해전 역시 대한민국이 승리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 장병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참전 장병 27명 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한 것. 이 대령(진)도 크게 다쳤지만, 긴박했던 그 순간에도 전사한 정장을 대신해 “쏴”라고 외치며 승조원들에게 사격 명령을 하달했다.

“쓰러진 정장님을 향해 달려가던 중 북한군 총탄에 맞아 넘어졌습니다. 총탄이 왼쪽 무릎 아랫부분을 관통해 8㎝의 구멍이 나 피가 콸콸 흐르고 있었습니다. 오른쪽 다리는 무릎 하단 부분부터 절단돼 멀리 떨어져 나간 군홧발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고 박동혁 병장 몸에선 130여 개의 포탄 파편이 나왔는데 그 무게가 무려 2.65㎏에 달했다.
고 박동혁 병장 몸에선 130여 개의 포탄 파편이 나왔는데 그 무게가 무려 2.65㎏에 달했다.



제2연평해전의 영웅, 6용사

NLL해전실 제2연평해전 구역에는 북한군과 용맹히 맞서다 전사한 6용사의 사진과 유품이 전시돼 있다. 이들은 전사 후 1계급 추서됐다.

고 윤영하 소령은 357호정 지휘관인 정장이었다. 함교에서 전투를 지휘하다가 교전 초반 북한군 포격이 함포와 조타실에 집중되면서 3~4분 만에 전사했다. 이 대령(진)은 “평소 원리원칙을 정확하게 지키며 357호정을 지휘하신 윤영하 소령님은 제2연평해전 승리의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고 한상국 상사는 조타장으로 전사하는 순간까지도 타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고 조천형 상사는 21포 사수로 교전 중 포대와 함께 불길에 휩싸였다. 마지막까지 두 손으로 방아쇠를 잡은 채 적을 향해 응사하다 전사했다. 고 황도현 중사는 22포 사수로 포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북한군을 항해 대응 사격을 하다가 머리에 37㎜ 포탄을 맞고 방아쇠를 잡은 채로 전사했다. 고 서후원 중사는 M60사수로 자신의 몸을 은폐하기 어려운 중앙갑판에서 피하지 않고 끝까지 대응 사격하다가 북한군 총탄에 왼쪽 가슴을 맞고 전사했다. 고 박동혁 병장은 의무병으로 다친 전우들을 구하기 위해 357호정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다가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교전이 끝나고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돼 83일간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전사했다. 박 병장 몸에선 130여 개의 포탄 파편이 나왔는데 그 무게가 무려 2.65㎏에 달했다.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군의 초탄은 함교, 통신실, 기관실을 겨냥했다.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군의 초탄은 함교, 통신실, 기관실을 겨냥했다.

 


유도탄고속함으로 부활해 NLL 수호

현재 대한민국 해군에는 윤영하함·한상국함·조천형함·황도현함·서후원함·박동혁함 등 6용사의 이름을 딴 유도탄고속함 6척이 서해 NLL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대령(진)은 “6용사가 유도탄고속함으로 부활해 자신이 전투했던 현장을 끊임없이 지키고 있다”며 “이는 대한민국 해군의 전투의지를 보여주는 한편 북한에는 ‘절대 내려오지 말라. 또다시 NLL을 침범하면 박살 내 그 자리에 침몰시키겠다’는 강력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군은 제2연평해전 이후 교전수칙을 수정하고 안전장치를 강화했다. 더이상 안타까운 희생을 만들지 않겠다는 해군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 대령(진)은 “대응 절차를 축소하고 현장 지휘관의 사격통제권을 강화해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해졌다”며 “수정된 교전규칙을 실전에 적용한 이후 북한군의 수상 침투 수가 현저히 감소했다”고 말했다.


이희완 대령(진)이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군 총탄에 맞은 왼쪽 다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희완 대령(진)이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군 총탄에 맞은 왼쪽 다리를 보여주고 있다.



선배 전우 군인정신 이어받아 북한군과 싸워 이길 것

출연자들이 제2연평해전전승비 앞에서 출연 소감을 말하는 것으로 영상은 마무리된다. 해군본부 이규빈 대위는 “치열했던 전투 순간에 직접 온 듯한 느낌을 받아 눈물이 핑 돌았다”며 “선배님들 덕분에 대한민국이 북한군을 상대로 서해를 지켜낼 수 있었고, 또 그 정신을 이어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북한군과 싸워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육군6보병사단 옹성우 일병은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군인정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며 “‘군인으로서 나는 나의 전우들을 지킬 수 있는가, 그만한 힘이 있는가, 그러한 자세가 갖춰져 있는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령(진)은 장병들에게 “북한은 끊임없이 대한민국을 도발하기 위해 각종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며 “피 흘려 NLL을 지킨 나의 전우들, 서해 영웅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군 생활하는 동안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 곽진성 씨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 곽진성 씨


인터뷰
/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 곽진성 씨


“북한군과 교전 중 오른팔에 관통상을 당하면서 튕겨져 나갔습니다. 마침 포탄이 터지는 바람에 제 머리 밑으로 모든 신체가 다 날아간 줄 알았습니다. 성치 않은 몸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기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바다에 뛰어들까’라는 생각까지 했죠.”

1998년 해군 전기부사관으로 임관한 곽진성 씨는 제2연평해전 당시 357호정 전기장이자 M60 기관총 사수로 북한군과 맞서 싸웠다. 곽씨는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를 지켜야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두려움을 떨쳐내고 적과 맞설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가 북한군에게 뚫리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죽기살기로 대한민국을 지켜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곽씨는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용맹하게 대응사격하다 팔과 하반신에 큰 부상을 입고 전역했다. 전역 이후에는 방위산업기업인 LIG넥스원에 입사해 또다른 방식으로 대한민국 수호에 일조하고 있다.

“함께 싸우다 전사한 전우들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먼저 떠난 이들을 위해서라도 대한민국 국방에 일조한다는 마음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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