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그들이 온다
암흑 속 무법지대… 하늘을 우러러 ‘전장’을 보라
|
진화하는 첩보위성들의 스파이전
21세기 정보전의 무대는 지상과 사이버공간을 넘어 우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미국, 러시아, 유럽 각국의 움직임은 ‘우주판 스파이 전쟁’이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 준다. 지난 1월 미국 기업 스페이스X는 미 위성정보기관 국가정찰국(NRO)의 NROL-105 사업을 위한 스파이 위성을 궤도에 올렸다. 수백 기의 소형 첩보위성을 저궤도에서 군집 운용해 지속성, 회복성, 수집 속도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이 사업은 우주 첩보전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이는 민간 기업이 국가안보 임무를 수행하는 대표적 사례로, 미국이 우주정보전에 민간 기술을 동원해 빠른 변화를 추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러시아는 위성을 이용한 영상 감시를 넘어 유럽·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위성들을 근접 추적, 교란하는 공격적 전략까지 구사하고 있다. 지난달 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의 군과 민간 우주 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 러시아 첩보위성 루치(Luch) 1·2호가 2023년 이후 3년간 유럽 각국이 쏘아 올린 17개의 위성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12개 위성정보를 가로채거나 교란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위성은 대부분 민간 용도로 사용되지만 정부와 군사 통신도 담당하고 있어 문제가 된다. 미하엘 트라우트 독일 우주사령관은 “러시아 위성들이 신호정보(SIGINT) 수집 활동을 하는 것으로 의심되며, 궤도 조정용 통신 채널까지 가로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이들 위성은 지상국에서 위성으로 송신되는 신호를 가로채기 위해 위험 수준인 20㎞까지 접근했다고 한다. 러시아가 통신을 감청, 정보를 빼내 갈 뿐만 아니라 위성 관제정보를 확보해 유사시 지상 통제소를 가장한 신호를 보내 궤도를 이탈시키거나 충돌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 정보 수집을 넘어 상대의 우주 인프라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이다.
지난해 9월에도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러시아 위성이 독일군이 활용하는 통신위성 2대를 근접 추적하며 신호를 조작·재밍(전파방해)하거나 위성 자체를 파괴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위성 네트워크는 현대사회의 아킬레스건으로, 이를 공격하면 국가 전체가 마비된다”며 위협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우주정보전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영상·통신 감청부터 물리적 파괴까지
인류가 의존하는 통신·항법·관측시스템은 대부분 위성에 기반한다. 위성은 현대사회의 핵심 인프라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발사로 시작된 인공위성의 역사는 다양한 분야로 발전했다. 특히 감시·정찰, 작전 통신, 전자전, 유도무기, 조기경보 등 군사 분야의 발전은 비약적이다. 최근 이란과의 충돌에서 보여 준 정밀타격도 위성 영상 없이는 불가능하며 육·해·공군 상황 공유와 합동작전도 위성 통신 없이는 수행할 수 없다.
우리가 매일 쓰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 지도 서비스 기반인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만 하더라도 항공·해양 운송, 재난 구조, 정밀 시간 측정을 통한 금융거래 등 여러 영역에 관여하고 있는데 시작은 미군이 군사용으로 개발한 것을 민간에 개방한 것이다.
스파이 위성은 정찰위성으로 불리며 주로 영상정보(IMINT), SIGINT, 전자정보(ELINT)를 수집하지만 최근엔 상대 위성을 기능적으로 마비시키거나 파괴하는 수준으로까지 진화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1959년부터 ‘코로나(Corona)’ 프로그램으로 영상 정찰을 시작했다. 1968년부터는 ‘캐니언(Canyon)’ 위성들로 외국의 통신도 감청했는데, 그 존재는 수십 년간 비밀로 유지됐다. 위성은 지상국과 특정 주파수로 교신하며 수집된 자료를 전달하므로 지상 안테나로도 상대국 위성 통신을 감청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러시아·중국 등 강대국들은 첨단 전자정보 수집 기능을 탑재한 첩보위성으로 우주에서 더 정교하게 감청할 뿐 아니라 특정 위성의 기능을 파악하고 교란할 수 있는 기술까지 확보했다. 이런 위성 감청 기술의 발전은 군사작전의 지휘체계와 경제정보를 노출시키고, 민간 통신·금융거래·항법시스템까지 마비시킬 수 있어 사회 기간시설의 안전에 큰 위협을 초래한다.
지상에서 정보요원들이 상대국 스파이 동향을 파악하고자 미행 감시를 하는 것처럼 우주에서도 상대국의 위성 임무와 동향을 알아내기 위한 위성 간 스파이전이 치열하다. 2022년 6월 미국 첩보위성 USA-270호는 중국 첩보위성 스옌 12-01호와 02호에 접근해 감시하다가 오히려 중국 위성이 태양 빛을 등지는 위치로 이동해 역촬영당했다. 같은 해 8월엔 러시아가 첩보위성 코스모스 2558호를 미국 첩보위성 USA-326호와 동일한 궤도로 발사해 밀착 추적하며 기능·임무를 파악하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우주공간에서도 지상의 정보요원들처럼 첩보위성 간 쫓고 쫓기는 감시와 역감시, 우주쓰레기로 위장 접근해 감청하는 등 다양한 스파이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우주 스파이전 대응책 필요
우주는 이제 단순 과학탐사공간을 넘어 국가안보와 정보전의 최전선이 됐다. 앞으로 우주에서 벌어질 스파이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이와 관련한 이해와 대비가 국가안보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지상과 달리 각국의 배타적 지배권과 국제법적 규제에서 벗어난 우주는 첩보 활동에 매우 효율적이며 유용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주요 국가들은 군과 정보기관을 중심으로 우주정보전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민간 기업과의 협력으로 위성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러시아는 적극적 요격 전략으로 상대 인프라를 위협한다. 독일과 유럽은 방어적 투자에 나서고 있으며, 중국 역시 정찰 역량을 강화하고 양자암호를 활용한 위성 통신 보안에서 앞서가고 있다.
가장 앞선 미국은 우주군 산하 국립우주정보센터(NSIC)와 합동우주사령부(SPACECOM)뿐만 아니라 첩보위성의 개발·운용을 담당하는 NRO, 신호정보 수집 및 암호 해독에 특화된 국가안보국(NSA) 등 정보기관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군과 정보기관은 서로 협력하며 우주에서의 정보전을 다층적으로 수행한다.
우리나라도 군사위성을 자체 개발·운용하는 소수 국가에 포함된다. 2010년부터 전천후 영상레이다(SAR) 위성 4기와 전자광학(EO)/적외선(IR) 카메라 탑재 위성 1기 획득을 위한 ‘425사업’을 추진, 2023년 12월 첫 군사 정찰위성을 궤도에 올렸고 현재는 5기의 군사위성을 운용 중이다. 자체 정보 능력을 갖추면 동맹국과의 정보협력도 확대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획기적인 정보력 향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젠 더 많은 위성을 확보하고, 수집된 정보의 분석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위성 숫자가 많아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지역을 촬영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각국이 첩보위성을 동원해 위성정보를 가로채는 스파이 활동을 강화하는 상황에선 통신과 데이터 감청 및 위성 자체 통제권 탈취 등에 대비한 사이버·전자전 능력, 양자암호 기술 개발 등에도 힘써야 한다. 제한된 위성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급변하는 우주정보전 환경에서 핵심 정보자산을 지켜 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해당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