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불운…학습하는 조직이 실패확률 줄인다

입력 2025. 07. 09   16:49
업데이트 2025. 07. 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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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군사명저를 찾아서
엘리엇 코헨·존 구치의 『군사적 불운: 전쟁에서 실패의 해부』
Eliot A. Cohen & John Gooch. 1990[2006]. Military Misfortunes: The Anatomy of Failure in War. Free Press. pp. 320. 

학습·예측·적응 실패 구조적으로 작용

세 가지 한꺼번에 발생하면 가장 치명적
다양한 역사적 사례로부터 교훈 얻고
피드백 살아 있어야 실패 확률 줄여
성공적 조직은 개인 리더십 의존보다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지휘체계 보유

 

유능한 군대가 왜 전투에서 패하는가? 아무리 유능한 군대라도 시종일관 승리할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연합군은 진주만과 프랑스, 그리고 동부전선에서 참담한 패배를 경험했다. 6·25전쟁에서 북진하던 미 8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궤멸에 가까운 위기에 직면했다. 1973년 욤키푸르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초기 패배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패배의 조직적 원인을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엘리엇 코헨, 존 구치의『군사적 불운: 전쟁에서 실패의 해부』. 필자 제공
엘리엇 코헨, 존 구치의『군사적 불운: 전쟁에서 실패의 해부』. 필자 제공

 


저자 엘리엇 코헨은 존스홉킨스대 전략학 교수로서 군사전략과 민·군 관계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민간 통치자와 군사령관의 관계를 다룬 『Supreme Commander』(2007)의 저자다. 그가 문제시하고 있는 것은 전투 실패의 책임을 지휘관에게 묻는 방식의 부당성이다. 대표적인 것이 진주만 공습 이후 태평양함대사령관 킴멜 제독과 하와이방어사령관 쇼츠 중장이 강등 조치와 함께 해임된 일이다.

저자들은 ‘불운(misfortune)’을 무능하거나 압도적 열세, 혹은 상대방의 천재성과는 다른 영역에서 발생하는 조직적 실패로 정의한다. 즉, 비교적 유능한 조직이 특정한 방식으로 실패할 때 이를 불운이라 칭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군사적 불운’은 단순한 패배와 구별되며, 보다 체계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군사적 실패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설명은 지휘관의 무능이나 실책으로 귀속시키는 것이다. 지휘관의 권한이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정치적 희생양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현대전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지휘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예컨대 병력관리(베트남전쟁에서의 징집병)나 전략적 수준의 결정(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쟁)에 대해 지휘관이 책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외 군사문화적 설명이나 제도적 설명 역시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문화적 설명은 국가적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인데, 어느 국가에서나 거의 예외 없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같은 제도를 가진 나라들도 다른 군사적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에 제도적 설명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저자들은 제도보다는 이러한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조직적인 분석과 이해가 더 중요할 것으로 본다.

군사적 불온을 설명하는 데 저자들이 사용하는 준거는 민간사회 재난에 대한 분석이다. 1945년 이후 재난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뤄져 왔으며, 하나 확실한 것은 재난은 단일 이론으로 구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이다. 사람의 실수로 환원할 수 없는 많은 구조적 요인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재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재난이 발생해도 시장이나 군수가 책임지고 물러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난의 원인을 사람의 잘못으로 귀책시킬 경우 책임 추궁에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설명하는 데는 부족하다.

재난에 관한 연구를 종합하면 크게 세 가지 실패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과거의 사례에서 배우지 못하는 ‘학습 실패’, 다른 하나는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을 대비하지 못하는 ‘예측 실패’, 그리고 상황 발생 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적응 실패’가 구조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을 시작한 미 8군은 중공군 개입을 예측하지 못했고 적응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참담한 패배를 낳았다. 1950년 11월 청천강 강변 참호에서 전투에 대비하고 있는 미 2사단 장병들 모습. 필자 제공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을 시작한 미 8군은 중공군 개입을 예측하지 못했고 적응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참담한 패배를 낳았다. 1950년 11월 청천강 강변 참호에서 전투에 대비하고 있는 미 2사단 장병들 모습. 필자 제공

 


이러한 세 가지 실패가 하나씩 작용해서 일어나는 ‘단순 실패’는 그리 치명적이지 않다. 학습 실패의 사례로 1942년 미군의 반잠수함 작전 실패를 들고 있다. 영국으로부터 호송 시스템의 효과를 전달받았지만 도입하는 데 6개월이나 지체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자초했다. 예측 실패의 사례는 1973년 이스라엘의 경우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침공할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으나 아랍 국가들이 전쟁을 벌일 능력이나 의도가 없다고 잘못 판단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벌인 갈리폴리 전역에서의 참패는 적응 실패의 전형이다. 영국은 기존 서부전선에서의 참호전 경험에 의존한 채 갈리폴리의 지형적·병참적 특수성을 무시했다. 급변하는 전장환경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두 가지 실패가 결합한 ‘복합 실패’의 사례로 1950년 한국에서 미 8군의 패배를 들고 있다. 미군은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을 여러 차례 경고받았음에도 이를 정치적 허세 또는 국지 도발로 해석했다. 작전계획은 북진 성공에만 몰두해 방어나 후퇴 시나리오가 부재했다. 정보평가(예측)의 실패와 작전적 준비 부족(적응실패)이 결합해 참담한 패배를 낳았다.

가장 치명적인 ‘파국적 실패’는 세 가지 실패가 한꺼번에 결합할 때 발생한다. 대표적 사례가 1940년 프랑스의 붕괴다. 프랑스는 과거 교훈을 배우지 못했고, 기갑전과 공중전의 가능성에 대한 예측에 실패했으며, 변화된 전략과 전술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단순한 패전이 아니라 국가 체계 자체가 무너지는 파국적 실패를 경험했다.

그렇다면 군사적 불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들은 ‘조직적 학습(organizational learning)’을 강조한다. 다른 나라나 역사적 사례로부터 교훈을 얻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제도나 방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예측 능력과 적응 능력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명령 일변도의 위계 구조가 아니라 피드백 구조가 살아 있는 학습하는 조직이야말로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성공적인 조직은 단순히 개인의 리더십에 의존하기보다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지휘체계를 보유하고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사고는 불가피한 일이다. 중요한 사고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마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다. 개인의 책임도 피하기 어렵겠지만 조직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고쳐 나가는 합리적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결론적으로 『Military Misfortunes』는 단지 과거의 군사 실패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재앙을 피하기 위한 건강한 조직문화의 건설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필자 최영진은 국방전문가로 전쟁사, 전략론, 정신전력, 병력구조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필자 최영진은 국방전문가로 전쟁사, 전략론, 정신전력, 병력구조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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