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만난 6·25전쟁

입력 2025. 07. 08   16:13
업데이트 2025. 07. 08   16:14
0 댓글
유승호 소령 육군정보학교 전자기전발전센터
유승호 소령 육군정보학교 전자기전발전센터



올해는 6·25전쟁 발발 75주년이 되는 해다. 육군정보학교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 6·25전쟁 음성지구전투를 기념하는 감우재전승기념관과 동락리전투기념비가 있다. 이곳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방문할 수 있어 75주년에는 좀 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15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미국 동부 뉴욕과 워싱턴DC로 떠난 이유다. 

뉴욕 도착 첫날 유엔본부를 둘러봤다. 1950년 6월 25일 유엔은 북한의 남침 소식을 접하자마자 안전보장이사회를 열어 ‘결의안 82호’를 채택하고 북한에 즉각적인 적대행위 중단과 38선 이북으로의 군대 철수를 촉구했다. 뒤이은 ‘결의안 83호’ ‘결의안 84호’에는 각각 유엔 회원국들이 한국을 도와 북한의 무력침략을 격퇴해야 한다는 내용, 미국을 중심으로 유엔군사령부를 설치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유엔의 깃발 아래 자유진영이 대한민국을 수호하고자 결집한 이 사건을 국제관계학에선 신생 국제기구였던 유엔이 국제평화 유지를 위해 집단안보체제를 발동시켰던 성공적인 사례로 꼽는다. 침략자를 규탄하고, 이들을 격퇴할 조직에 합법성을 부여할 결의안 채택을 위해 수많은 외교관이 분주히 뛰어다녔을 현장을 둘러보니 당시의 긴박함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이틀 뒤 워싱턴DC에 도착했다. 도시 중심부 링컨기념관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를 찾았다. 제일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너무도 유명한 문구였다.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부름에 응한 우리의 아들딸들을 기린다”는 문장과 대리석에 새겨진 희생자들의 이름도 볼 수 있었다.

미국을 위해 희생한 국민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 그런 국가를 믿고 들어본 적도 없는 이역만리 땅으로 총을 메고 떠난 군인들. 세계 최강의 군대를 보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질서를 이끌어 가는 미국의 힘은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첨단 과학기술을 군사력에 활용해 따라갈 수 없는 전투력을 갖게 된 미군의 파워 밑바탕엔 군인에게 예우를 다하는 미국 사회와 군복을 입은 미군들의 자부심이 깔려 있었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75년이 지난 현재, 세계 각국은 K방산에 매료돼 앞다퉈 우리 무기를 구매하고 우리 군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군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러한 군사력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절대 잊지 않고 어떠한 형태로든 보상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유엔본부와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를 방문했던 이번 여정에서 강군의 조건과 군인으로서 자세를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