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과 AI, 전장의 공식이 바뀐다
100년을 진화한 드론 기술의 발전
1918년 무인폭격기 ‘케터링 버그’ 등장
1930년대 영국산 무인기 ‘퀸비’가 원조
2차대전 땐 독일 전투용 드론 실전 활약
GPS·컴퓨터 발달로 정확·자율성 향상
아프간 전쟁서 군사적 가치 본격 입증
AI 결합 ‘완전 자율 지능형 체계’로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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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미국에서 놀라운 실험이 진행됐다. 미 육군의 ‘항공타깃프로젝트(Aerial Target Project)’를 통해 개발된 ‘스페리 에어리얼 토페도(Sperry Aerial Torpedo)’가 100㎏ 넘는 폭탄을 싣고 하늘을 날았다. 이어 1918년에는 ‘케터링 버그(Kettering Bug)’가 개발돼 폭탄을 장착한 비행기가 무선 유도로 약 80㎞를 날아가 표적을 타격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보는 드론 기술이었다. 100년이 흐른 지금, 그 원시적인 실험은 세계 전장을 지배하는 혁명적 기술로 성장했다.
초기 드론은 매우 조잡했다. 당시에는 무인기가 폭탄을 싣고 목표물에 떨어지면 기능을 다하는 일회용 기체 형태였다. 케터링 버그는 타격 성공률이 너무 낮아 실전에는 활용되지 못했지만 인간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도 적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혁신적 개념을 제시했다.
진정한 전환점은 1930년대에 찾아왔다. 영국에서 최초의 왕복 재사용 무인항공기 ‘퀸비(Queen Bee·여왕벌)’를 개발해 400기 이상을 양산했다. 퀸비는 오늘날 드론이라는 용어로 널리 불리는 무인표적기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이 표적기는 조종사들의 사격 훈련을 위해 만들어졌다. 공항에서의 이륙을 위해 바퀴를 달았고, 바다에서도 사용하기 위해 플로츠를 장착했다.
‘드론’이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여러 설이 있다. 그중 하나에 따르면 1935년경 미 해군 제독 윌리엄 스탠들리가 영국 해군의 퀸비 시연을 목격한 후 미군에서도 무인항공기를 개발하게 됐고, 이때 퀸비와 대비되는 ‘드론(Drone·수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설로는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 벌이 날갯짓을 하는 소리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더욱 발전된 무인 기술이 등장했다. 독일은 V-1 비행폭탄을 실전에 투입했고, 1944년 독일 나치가 만든 전투용 드론 V-1은 영국을 공격해 900여 명의 사망자와 3만5000여 명의 부상자를 내기도 했다. 한편 미국에서도 무인표적기 개발에 착수해 1939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라디오플레인(Radioplane)이라는 회사는 무인표적기 1만5000여 대를 생산했다. 흥미롭게도 라디오플레인 생산 공장에서 한 소녀가 드론 부품을 들고 있는 모습이 잡지에 실리면서 스타가 됐는데, 바로 세계적인 여배우 매릴린 먼로였다.
냉전 시대인 1960년대 들어서면서 드론 기술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미국이 개발한 라이언 파이어비(Ryan Firebee) 시리즈는 베트남전쟁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최초의 현대적 군용 드론이었다. 이 드론은 적진 상공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했으며, 유인기로는 불가능했던 고위험 지역 정보 수집을 가능하게 했다. 조종사의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군사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명적 발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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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트랜지스터, 집적 회로, 마이크로프로세서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다양한 전자 기기들이 등장한 전자 혁명기였다. 이때 이스라엘은 미국의 AQA-34 라이언 파이어비를 비밀리에 들여와 ‘사냥개’라는 이름을 붙인 새로운 형태의 드론 마스티프(Mastiff)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비행 능력을 바탕으로 표적 지역을 고해상도 영상으로 촬영해 실시간 전송하는 기능을 갖춘 현대적 의미의 정찰용 드론이었다.
1990년대 들어 드론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실용화와 컴퓨터 기술의 진보가 결합하면서 드론의 정확성·자율성이 크게 향상됐다. 특히 미국의 MQ-1 프레데터는 드론 역사상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다. 이 드론은 단순한 정찰을 넘어 헬파이어 미사일을 탑재해 정밀 타격까지 수행할 수 있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드론 기술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프레데터 드론이 적 전투원을 성공적으로 제거하면서 드론의 군사적 가치가 전 세계에 입증됐다. 이후 각국은 앞다퉈 드론 개발에 투자했고, 기술 경쟁이 본격화됐다. 이 시기부터 드론은 단순한 정찰 도구에서 전략 무기로 그 지위가 격상됐다.
2010년대는 드론 기술의 민주화 시대였다. 2010년 프랑스의 패럿이 개발하고 판매한 AR 드론이 상용 드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AR 드론을 휴대전화나 태블릿 PC로 조종하는 기능은 당시 혁신적인 기능으로서 무선 조종 업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중국의 DJI를 비롯한 업체들이 저렴하고 성능 좋은 민간용 드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DJI는 전문가용 비행 제어시스템 개발을 통해 기술력을 축적하고, 2013년 첫 번째 드론 팬텀 시리즈를 출시했다. 이후 DJI는 상업용 드론 시장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201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드론 기술은 군사 분야를 넘어 농업, 배송, 촬영, 구조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했다. 동시에 이러한 민간 기술이 군사 목적으로 전용되는 사례도 늘어났다. 또한 상업용 드론을 무기로 사용하려는 시도가 시작됐다. 이슬람국가(IS)는 2016년 10월 온라인쇼핑몰 아마존에서 사들인 초소형 드론에 폭발물을 장착해 민간인을 공격하는 테러를 자행했다. 이는 상업용 드론을 활용한 첫 번째 테러 사례로 기록됐다.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드론 기술의 정점은 인공지능(AI)과의 결합이다. 머신러닝과 딥러닝 기술이 발전하면서 드론은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지능형 체계로 진화했다. 최신 드론들은 복잡한 환경에서도 자율적으로 경로를 계획하고, 표적을 식별하며, 최적의 전술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 혁신의 흐름에서 우리나라는 독특한 강점을 지니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술과 5G 통신 인프라는 차세대 드론의 핵심 구성요소인 AI 프로세서와 실시간 데이터 전송 시스템에서 경쟁 우위를 제공한다.
1917년 원시적인 무선 조종 폭격기에서 시작된 100여 년의 여정은 이제 완전 자율 지능형 드론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군사 목적으로 시작된 기술이 민간으로 확산하고, 다시 군사 분야로 돌아오는 이 순환 과정에서 드론은 단순한 무기를 넘어 전쟁 양상 자체를 바꾸는 게임체인저로 자리 잡았다. 미래 전장에서는 드론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가 전략적 우위를 점할 것이며, 이를 위한 기술 개발과 대응 전략 수립이 국가안보의 핵심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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