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일고(伯樂一顧)

입력 2025. 07. 07   16:17
업데이트 2025. 07. 0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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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이영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춘추시대 사람 손양은 말(馬)을 감정하는 능력이 특출해 천마를 관장하는 별이자 신선을 가리키는 백낙(伯樂)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의 탁월한 식견과 활약을 소재로 한 ‘백낙상마(伯樂相馬)’ ‘백낙일고(伯樂一顧)’라는 고사가 전해진다. 

왕이 백낙에게 좋은 말을 구해 오라는 명을 내렸다. 백낙은 길을 나섰다가 비쩍 마른 말 한 마리가 끄는 소금장수의 마차를 만났다. 그는 단번에 이 볼품없는 말이 천리마의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알아봤다. 소금장수로부터 말을 산 백낙은 왕에게 그 말을 건넸다. 왕은 일견 크게 실망했지만, 백낙의 명성을 믿고 며칠을 기다렸다. 며칠 후 좋은 먹이와 보살핌으로 기력을 찾은 말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왕도 흡족했다.

소금장수의 마차를 끌고 있던 비루한 말의 드러나지 않은 자질을 알아보고 왕의 천리마로 활약할 수 있도록 발탁해 준 백낙의 활약상을 일컬어 ‘백낙의 말 감정’이란 뜻을 담아 ‘백낙상마’라고 한다. 훌륭한 인물을 얻기 위해선 사람의 자질을 제대로 분간하는 안목을 지닌 좋은 추천자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담은 말이다.

사람들은 대개 천리마를 못 알아보고 그냥 소금마차나 끌게 했던 소금장수처럼 익숙한 환경에 묻혀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살아간다. 또 다른 고사 ‘백낙일고’는 이런 지루한 일상에 숨어 있는 말의 능력을 알아채는 백낙의 능력을 칭송하는 동시에 이따금 백낙과 같은 전문가의 식견과 안목에 휘둘리며 부화뇌동하는 대중의 무력한 모습을 보여 준다.

어느 날 한 말장수가 백낙에게 사람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말 한 마리의 감정을 부탁했다. 백낙이 그 말에 관심을 보이자 사람들이 경쟁하게 되면서 말 값이 올라갔다. 실제 대단한 값어치를 하게 될 훌륭한 말이긴 했지만, 백낙의 감정이 있기 전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평범한 말이었다. 전문가 백낙의 일고(一顧)로 그 진가가 드러난 것이다. ‘백낙일고’는 백낙의 남다른 능력을 칭송하는 동시에 대중의 무심과 변덕을 힐난하는 양가적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은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천리마 백 필을 얻는 것이 백낙 한 사람을 얻는 것만 못하다(得百騏驥, 不若得一伯樂)”고 했다. 인재보다 인재를 분별하는 안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곧잘 사람은 많은데 쓸 만한 인재가 없다는 한탄을 듣는다. 숨은 인재를 찾아내지 못하는 답답함을 토로하는 것인데, 정도전의 말처럼 천리마 백 필을 보증하는 한 사람 백낙이 간절하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총리, 장관 등 하마평에 오른 사람들을 두고 말들이 많다. 자천타천 천리마들의 경주가 앞으로도 한참 사람들의 이목을 어지럽힐 듯하다.

지루한 다툼의 끝을 보여 줄 백낙일고의 한 방을 기대할 순 없을까. 능력 있고 문제없는 천리마 인재를 찾아내는 완벽한 인사검증 시스템이 그것일 터. 온갖 정보가 축적·유통되고 있는 이 시대의 여러 환경을 생각하면 현대판 백낙의 출현이 무망한 일만은 아닐 것 같다.

문제는 시스템을 대하는 인사권자의 마음가짐이다. 진영을 나눠 내 편의 공은 기리고, 상대를 배제하는 마음으로는 백낙의 지혜를 살릴 수 없다. 한유(韓愈)의 말처럼 천리마는 백낙이 있기에 존재한다(世有伯樂然後 有千里馬). 유능한 천리마 인재들이 속속 등장해 세상을 밝힐 수 있도록 건강한 인사검증 시스템이라는 현대의 백낙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겠다. 인사권자의 대범한 ‘백낙일고’의 수용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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