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스타를 만나다 - 군인들의 ‘원 톱’ 프로미스나인
걸크러시도 세계관도 없다
서바이벌·7년 징크스 딛고
다섯 명으로 새출발하는
소녀들의 성장이 있을 뿐
서로 다른 환경에 모인
낯선 존재를 하나로 묶은 힘
동경·공감·몰입 불러일으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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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당신의 ‘군통령’은?
국방일보가 지난 4월 4~17일 ‘봄맞이 위문열차 무대에서 만나고 싶은 스타’를 주제로 병영차트 설문조사한 결과 걸그룹 에스파가 1위를 차지했다. 뜨거운 여름날의 구도는 조금 달라진 듯하다. 최근 싱글 ‘더티 워크’로 컴백한 에스파를 꺾고 음악방송 7월 첫째주 정상에 오른 그룹은 앞선 조사에서 2위를 차지한 걸그룹 프로미스나인이었다. 지난달 25일 어센드엔터테인먼트로 적을 옮겨 발표한 미니 6집 ‘프롬 아워 트웬티스’의 타이틀곡 ‘라이크 유 베터’로 올린 쾌거다.
프로미스나인은 ‘군통령’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그룹이다. 셋톱박스에 저장된 음악방송 회차 속 클립으로부터 유튜브와 틱톡 등 영상 플랫폼의 숏폼 콘텐츠까지 세를 넓혀 나가던 그들은 어느새 모두가 인정하는 군인들의 원 톱 그룹으로 확고한 명성을 다졌다.
‘군통령’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그룹이 프로미스나인이다. 쟁쟁한 아이돌 그룹과 인기 가수들의 인기도 만만찮겠지만 대중적인 인식으로는 프로미스나인만큼 ‘군통령’이라는 칭호가 자연스러운 팀이 많지 않다.
그룹의 처음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지금과 같은 성장이 놀랍기만 하다. 지금은 희미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프로미스나인은 2017년 엠넷의 걸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돌학교’를 통해 선발된 9인조 팀으로 가요계에 등장했다. 수많은 국민 프로듀서의 문자 투표를 유도했던 ‘프로듀스’ 시리즈, 그 결과 데뷔한 프로젝트 아이돌 아이오아이와 워너원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픽 미’를 들으며 후반기교육을 받던 이등병이 ‘에너제틱’을 들으며 병장 진급할 즈음에 ‘아이돌학교’가 시작했다. 국내 최초 걸그룹 전문 교육기관이라는 콘셉트 아래 참가자 전원에게 교복을 입히고 다양한 커리큘럼을 제공한다는 당찬 포부와 함께였다.
반응은 좋지 않았다. 동기들은 참가자 숙소를 보고는 훈련소에서 경험한 침상형 생활관을 떠올리며 채널을 돌렸다. 열악한 환경에서 연습생과 일반인 사이의 어딘가에 머무르는 참가자들의 열악한 무대가 이어졌다. 준비된 연습생 무대였던 ‘프로듀스’ 시리즈에도 썩 흥미를 보이지 않던 군인들이 노골적으로 교복을 입고 춤을 추는 소녀들에게 관심을 가질 리 없었다. 제작진도 낮은 시청률에 무리수를 남발했다. 급기야 최종 순위를 조작해 데뷔조 9명 중 3명을 임의로 교체하기까지 했다. 2010년대 엠넷 ‘프로듀스’ 시리즈의 투표를 조작한 방송계 선배들에게 배운 악행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데뷔한 프로미스나인이 처음부터 화제를 모으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낮은 기대치가 제작 측면에서는 득이 됐다.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대표 한성수의 프로듀싱 아래 프로미스나인은 당찬 걸크러시나 복잡한 세계관, 창작의 강점 등 어려운 이야기 대신 아홉 명의 소녀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친밀한 음악에 담아냈다. 조심스럽게 시작한 데뷔곡 ‘유리구두’부터 담금질하던 매력을 크게 터트린 ‘러브 밤’까지 난해하지 않고 멤버 고유의 개성을 살린 곡이 연이어 등장했다.
본격적으로 프로미스나인이 ‘군통령’ 호칭을 얻기 시작할 때는 팬데믹 시기다.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복무한 예비역들은 ‘필 굿’ ‘위 고’ ‘DM’ ‘스테이 디스 웨이’의 황금 계보를 기억한다.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의 세련된 일상을 연상케 하는 콘셉트에 근심 걱정 없는 한여름밤의 디스코 계열 파티곡을 입히고, 선명히 다른 존재감을 뽐내는 개별 구성원의 활약이 더해지니 완벽한 청춘의 한 페이지가 만들어졌다. 위문열차 출연분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고, 군인들의 열광적인 환호가 인기를 부채질했다. 재계약을 놓고 팀의 운명이 갈리는 아이돌 7년 징크스를 앞두고 프로미스나인은 오히려 첫 정규 앨범과 그룹 최고의 히트곡 ‘슈퍼소닉’을 발표했다.
흔히 ‘군통령’ 하면 선정적인 콘셉트의 걸그룹을 먼저 떠올리던 때도 있었다.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을 인수인계하던 나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체감하기로는 볼빨간사춘기와 같은 인디 싱어송라이터와 엠넷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등장한 래퍼들, 베테랑 발라드 가수들의 인기가 더 많았다. 특히 컨테이너 노래방에서 하루 종일 돌림노래처럼 들려오던 윤종신의 ‘좋니’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요컨대 군통령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칭호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성장 과정을 거쳐 모인 낯선 존재들을 하나로 묶는 음악에는 스쳐 가는 즐거움보다 강한 동경 혹은 공감과 몰입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브라운관 앞, 셋톱박스 지칭 채널 번호,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검색한 유튜브 화면 속에서 춤추고 노래하던 연예인들의 무대는 지친 하루 끝의 낙이자 서먹한 단체 생활을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단합의 장이었다. 브레이브걸스와 라붐이 군에서의 인기를 사회로 끌고 나와 가요계가 기억할 음원 차트 역주행을 불러일으킨 비결이다. 각자 개인의 취향을 즐길 수 있는 요즘에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가치다. 들어주고, 함께 보고, 더 널리 알리며 응원하기다.
데뷔 8년 차를 맞이한 프로미스나인이 ‘군통령’에 등극한 비결이다. 그룹은 페인트도 마르지 않은 생활관에 40명이 모여 쪽잠을 자던 서바이벌 프로그램부터 문제가 많았던 데뷔 과정과 순탄치 않았던 신인 시절을 통해 케이팝의 모순을 몸소 겪었다. 아홉 명이라서 ‘나인’이었던 그룹은 8인 체제를 거쳐 이제 다섯 명만 남았다. 플레디스를 떠나 신생 기획사에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래서 더욱 단단해졌다.
‘프롬 아워 트웬티스’ 앨범은 프로미스나인의 전성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상징하는 안정적인 작품이다. 선 굵은 신스 팝 ‘라이크 유 베터’를 필두로 ‘레볼루셔널’, 청량한 록 트랙 ‘러브=디재스터’가 귀에 들어오는 가운데 멤버들이 작사 작곡에 다수 참여한 모습도 눈에 띈다. “설레임은 가득해도 어려운 건 사실이야”라고 노래하던 그룹이 1위 트로피를 받고 나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앨범을 닫는 ‘메리 고 라운드’의 노랫말이 뜻깊다. “설레임이 없던 내일은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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