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발굴사업! 호명되지 못한 이름을 끝까지 불러주는 일

입력 2025. 07. 04   16:48
업데이트 2025. 07. 0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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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발발한 지 75년이 지났지만, 돌아오지 못한 이들은 아직 그 자리에 있다. 그 땅을 직접 밟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곳은 어떠한 설명 없이도 느껴지는 공기 속 무게감이 있었다.”

지난달 24일 경기 파주시 박달산 370고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6·25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견학했다. 현장을 눈으로 접한다는 건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니었다. 정비된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목, 조용히 서 있는 유해발굴 현장의 안내표지, 장비가 놓인 유해발굴 현장, 그 주변을 감싸는 숲속의 정적…. 풍경 자체는 평범해 보였지만 그 아래 잠들어 있을 누군가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순간, 그 평범함조차 무겁게 다가왔다.

유해발굴 현장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여기서 누군가는 오래전 조국을 지키기 위해 생을 마감했고, 우리는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오승래 발굴팀장님께서 설명해 주신 당시 전투상황, 지형 특징, 유품 발굴사례 등은 매우 생생했다. 군번줄 하나, 총탄 하나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아직 이름을 부르지 못한 전사자의 존재를 세상으로 다시 꺼내는 단서라는 이야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유해발굴 현장에 쌓여 있는 채취용 장비와 수습도구들이 하나같이 경건해 보였다.

이날 공직자로서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다. 기억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공간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유해발굴사업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은지를 보여 주는 ‘국가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직자가 된 이후 매일 새로운 제도와 업무를 배우는 데 급급했는데, 현장 견학은 아주 낯선 종류의 교육이었다. 보고, 듣고, 걷고,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경험이 공직자로서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유해를 직접 발굴하거나 이름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땅을 바라보고, 그곳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왔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어떤 묵직한 숙제 하나를 들고 온 기분이었다. 국가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 기억이 있어야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공직자는 그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연결하는 다리가 돼야 한다. 호명되지 못한 이름을 끝까지 불러 주는 일. 그것이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책임의 시작’이라는 걸 박달산에서 알게 됐다.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 준 국방부 병영정책과 관계관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린다.


김지원 군무주무관 국방부 기획총괄담당관실
김지원 군무주무관 국방부 기획총괄담당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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