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트렌드 - AI 인재 전쟁, 현실과 과제
10년 전 ‘죽은 분야’ 취급에도 연구
20~30대 박사 돼 빅테크서 러브콜
실리콘밸리 ‘리스트’, 쟁탈전 보여줘
수학적 기초 소양 갖춘 인재 많고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풍부한 한국
10년 이후 미래 보고 인재 키워야
1억 달러짜리 두뇌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한 ‘그 리스트(The List)’라는 제목의 기사는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공지능(AI) 인재 쟁탈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메타의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가 수개월에 걸쳐 작성한 이 비밀 명단에는 AI 분야 최고 엔지니어와 연구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1억 달러 규모의 연봉 패키지가 제시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돈의 게임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미래 패권을 좌우할 핵심 기술로 자리 잡으면서 이 분야 최고 인재들이 그 어느 때보다 귀중한 자산이 됐기 때문이다. 저커버그는 개인적으로 연구 논문을 샅샅이 뒤져가며 영입 대상자를 물색하고 있으며, 두 명의 메타 임원과 함께 ‘리크루팅 파티’라는 이름의 그룹 채팅방에서 수백 명의 잠재적 후보자들과 접근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극소수 엘리트들의 세계
‘그 리스트’에 오른 인재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발견된다. 대부분 버클리, 스탠퍼드, 카네기 멜런 같은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들 프로그램의 입학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까다롭다. 샌프란시스코의 오픈AI나 런던의 구글 딥마인드 같은 세계 최고 연구소에서 경험을 쌓았으며, 대부분 20~30대의 젊은 나이에 이미 해당 분야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루카스 바이어의 사례는 이들의 독특한 이력을 잘 보여준다. 벨기에에서 비디오게임 개발을 꿈꾸던 소년이었던 그는 독일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머신러닝에 매력을 느꼈다. 10여 년 전 구글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지원했다가 거절당한 후 박사과정을 시작했고, 컴퓨터 비전과 로봇 인식 분야로 전향했다. 2018년 취업 시장에 나왔을 때는 업계 모든 주요 AI 연구소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단 한 곳, 메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바이어는 2024년 구글을 떠나 두 동료와 함께 오픈AI 취리히 사무소를 설립했지만, 최근 저커버그의 직접적인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메타로 이직을 결정했다. 그는 트위터에 “우리는 메타에 합류할 예정이다. 하지만 1억 달러는 받지 않았다”고 농담 섞인 글을 올리기도 했다.
완벽한 타이밍의 박사들
연구자들이 지금 이토록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완벽한 타이밍’ 때문이다. 10년 전 박사과정을 시작할 당시 그들이 연구하던 로보틱스나 생성 인공지능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였다. 오히려 ‘죽은 분야’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오픈AI의 음성 연구자인 유 장의 경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10년 전 첫 인턴십을 마칠 때 멘토로부터 “음성 분야에서 일하면 안 된다. 이는 죽은 분야다”란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그 멘토는 곧 야후로 이직해 광고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몇 달 후 딥러닝의 혁신적 발전으로 컴퓨터가 음성 패턴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이 등장하면서 음성 인식 분야는 완전히 되살아났다. 이제 장은 모든 AI 연구소가 탐내는 엔지니어가 됐고, 저커버그 역시 그에게 직접 연락을 취했다.
한국이 직면한 현실
이러한 글로벌 AI 인재 전쟁을 바라보며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한국은 이 경쟁에서 어떤 위치에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먼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 리스트’의 인재들이 받는 대우와 연구환경은 현재 한국의 수준과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높은 연봉이 아니다. 메타가 올해만 AI에 7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이 이보다 더 많은 자금을 쏟아붓는 환경에서, 최고의 연구자들은 무제한에 가까운 컴퓨팅 자원과 데이터, 그리고 실험의 자유를 원한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AI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아직 글로벌 테크 자이언트들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들이 AI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들을 끌어들이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면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나 자금력뿐만 아니라 연구 문화와 시스템의 차이다. 실리콘밸리의 AI 연구자들은 서로 다른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들 사이에는 ‘부족 지식’이라는 독특한 암묵지가 형성돼 있다.
우리의 강점과 기회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한국은 여전히 상당한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우수한 수학적 기초 소양을 갖춘 인재들이 많고, 제조업과 정보통신 분야에서 축적된 하드웨어 전문성이 있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게임, 엔터테인먼트, K콘텐츠 등 AI와 접목될 수 있는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K팝과 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의 성공은 AI 기반 창작 도구나 개인화 추천 시스템 등에서 독특한 장점이 될 수 있다. 교육 시스템도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KAIST, 서울대, 포스텍 등 주요 대학이 AI 전문 대학원 과정을 확대하고 있으며, 국제적 수준의 연구자들을 영입하려는 노력도 늘어나고 있다.
장기적 전략의 필요성
10년 전 “죽은 분야”로 여겨졌던 음성 인식이 지금은 핵심 기술이 됐듯, 기술 흐름은 예측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현재 주목받지 않는 분야에서도 꾸준히 기초 연구를 지속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응용 연구에 강하다는 특성을 살려야 한다. 기초 이론보다는 실제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문화가 있어, 이를 AI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 단기적 성과에 급급하지 않고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전략적 사고가 중요하다. 특히 연구 환경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결론: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메타의 움직임이 보여주는 것은 현재 AI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경쟁의 단면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기회기도 하다. AI 혁신의 핵심이 결국 사람이라는 점이 명확해진 만큼 한국도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인재 육성과 연구 환경 조성에 투자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현재 한국은 세계 AI 경쟁에서 중간 정도 위치에 있다. 미국이나 중국에는 뒤처지지만, 여전히 상당한 기술력과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격차를 좁히기 위한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다.
지금 당장 ‘그 리스트’에 한국인 연구자의 이름이 없을지라도 미래의 리스트에는 포함될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물론 그 인재를 우리가 품고 키워야 한다. 그 시작은 바로 지금이어야 한다. 10년 후, 20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적 투자와 인내심 있는 인재 육성만이 한국을 글로벌 AI 경쟁의 주요 플레이어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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