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귀환과 함께 대서양 동맹을 포함한 미국·유럽 관계가 큰 변화의 흐름을 맞이한 가운데 동맹 주요 현안을 점검하는 ‘2025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지난달 네덜란드에서 열렸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국방비 증액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구상 △통상 등 미국·유럽 간 주요 현안 전반에 대해 이전과 다른 기조로 접근하자 유럽은 전례 없는 도전과 시험에 직면하게 됐다.
더욱이 6월 들어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 속에 이스라엘·이란 간 전쟁이 발발하면서 대서양 동맹의 대외적 도전은 중첩적으로 확대되는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나토 정상회의는 트럼프 행정부의 지속적인 집단방위 공약 이행을 전제로 유럽의 역할과 책임을 확대하면서도 동맹의 신뢰와 의미를 묻는 시험대가 됐다.
2025 나토 정상회의 공동성명을 포함해 정상회의와 상반기 동안 이어진 준비 과정을 살펴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대외 여건 악화로 지난 1기 때보다 트럼프의 의중이 대서양 동맹의 방향 설정에 더 결정적인 변수가 됐다.
먼저 외형적인 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과 심기를 우선 고려해 돌발 변수를 최소화하려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긴 회의를 선호하지 않는 트럼프 성향에 따라 정상급 북대서양이사회 등 정상회의 일정을 대폭 축소한 데 이어 논쟁적인 태도 대신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을 필두로 전략적 찬사와 아첨을 넘나드는 발언이 쏟아진 점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덧붙여 트럼프 색채는 나토 정상회의를 정리하는 공동성명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일례로 지난해 워싱턴 선언은 별도의 우크라이나 지원 공약을 포함해 위협 평가·역외권과의 관계·비전통 안보 등을 총망라해 44개 항으로 구성됐다. 반면 올해 정상회의 공동성명은 나토 헌장 ‘5조’에 기초한 동맹의 집단방위 공약과 나토 헌장 ‘3조’가 명시한 회원국의 지속적인 자체 방위력 강화 노력 필요성을 중심으로 5개 항만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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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9개 항으로만 이뤄진 트럼프 1기 시절 2019 런던 정상회의 공동성명보다 짧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나토 회원국의 국방비 증액을 통한 대서양 동맹 재조정에 초점을 두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가 깊게 담겨 있다. 이에 따라 러·북 간 군사협력 강화를 비롯한 러시아발 위협·도전 요인이 간과된 가운데 여전히 동맹의 핵심 이슈인 우크라이나가 뒷순위로 밀렸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추가로 이번 나토 정상회의의 핵심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방위 공약과 동맹으로서의 자체 방위력 강화 의무 간 균형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헌장 ‘5조’의 집단방위 공약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이전과 달리 좀 더 명확한 태도를 보였다. 그렇지만 의도적인 모호성을 필요에 따라 드러내며, 이를 외교 지렛대로 활용하고자 하는 모습도 여전했다.
무엇보다 유럽 동맹국들이 집단안보 공약에 기댄 채 자체 방위력 강화에 소홀히 하며 안보 무임승차를 일삼고 있다는 트럼프의 일관된 인식은 취임 직후부터 강압적 외교로 이어지며, 균형추를 회원국의 자체 방위력 강화 의무를 명시한 나토 헌장 ‘3조’로 크게 옮겨 놓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도출된 2025 나토 방위비 지침은 2014년 채택된 현재의 GDP 대비 2% 방위비 지출 기준을 역대급인 5%로 높이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이번 나토 방위비 지침은 10년 후인 2035년까지 방위비를 목표치인 GDP 대비 5%로 증액하도록 규정한 가운데, 이 중 3.5%는 직접 군사비에, 나머지 1.5%는 인프라 보호·방산 등 간접적 안보 비용에 투입하도록 했다.
아울러 2029년 중간평가를 실시해 이번 방위비 지침 이행을 독려한다는 방침이다. 나토는 2025 지침에 맞춰 큰 폭의 방위비 증액이 이뤄질 경우 미사일·방공 전력·포탄 등을 중심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드러난 전력 부족을 크게 해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3월 유럽연합(EU)이 발표한 8000억 유로 상당의 ‘대비 태세 2030(Readiness 2030)’ 계획 역시 대서양 동맹 차원에서 이번 방위비 지침 이행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표된 2025 나토 방위비 지침은 5월 말부터 수면 위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막판까지 이행 시점을 놓고 치열한 협상이 이뤄졌지만 최종적으로는 2035년으로 수렴됐다. 이 과정에서 독일·영국 등 유럽 주요국이 앞다퉈 방위비 증액 계획을 발표해 동맹 차원의 방위비 증액 노력에 힘을 보탰다. 다만 다른 회원국보다 현저하게 낮은 방위비를 지출하는 스페인 입장을 고려해 회원국 전부를 아우르는 ‘우리’ 대신 ‘동맹국’이란 표기로 유연성을 발휘하며 만장일치 결정을 이끌어냈다.
끝으로 큰 진척은 없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심이 종전으로 기울면서 지난해까지 나토 정상회의의 중심이던 우크라이나 이슈가 전반적으로 크게 희석되는 모양새다. 외교적 참사로 끝난 지난 2월 회담과 비교하면 올해 세 번째로 이뤄진 나토 정상회의 간 트럼프·젤렌스키 회동은 젤렌스키 및 우크라이나에 대한 트럼프의 시각이 나름 교정됐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아래서 우크라이나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음을 숨기지는 못했다. 미국 측의 완고한 요구로 공동성명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언급이 크게 준 가운데 우크라이나 지원마저 개별 회원국의 ‘주권적’ 사항으로 명시해 향후 미국의 추가 지원을 담보하지 않았다.
더불어 6월 초 나토 국방장관회의와 같이 진행된 우크라이나 방위연락그룹(UDCG) 회의에 피터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불참하고, 정상급에서 이뤄졌던 나토·우크라이나 이사회가 장관급으로 격하되면서 우크라이나 이슈 희석이 일회성이 아님을 방증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미국·유럽 관계도 전례 없는 변곡점을 맞고 있다. 이 가운데 2025 나토 정상회의는 ‘트럼프 변수’에도 대서양 동맹 틀 안에서 미국·유럽 관계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아울러 트럼프 이후 미래 대서양 동맹에서는 유럽의 역할과 책임이 커질 수밖에 없으며, 이번에 중점적으로 다뤄진 나토 차원의 방위 동맹비 증액은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나토 정상회의가 트럼프 2.0 시대 대서양 동맹을 비롯한 미국·유럽 관계의 순항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정말 어려운 과제와 여정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유럽의 자체 방위력 강화를 위해 이뤄진 2025 나토 방위비 지침 결정 과정은 역설적으로 유럽 안보에서의 미국 중심성이 트럼프라는 한 개인에게 수렴되는 형태로 재확인되며, 유럽의 취약성과 존재감 상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다음으로 방위비 증액 문제는 이번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일단락된 듯 보이면서도, 트럼프가 동시다발적으로 유럽 주둔 미군 조정과 통상 등 미국·유럽 간 주요 이슈를 다루면서 방위비 증액을 비롯해 전체적인 이익의 균형이 맞는지를 놓고 양측 간 논란과 대립은 일정 부분 피할 수 없게 됐다.
끝으로 2025년을 기점으로 미국보다 유럽이 더 많은 재정·군사적 지원을 하며 ‘유럽의 전쟁’이 된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매듭지을지는 미국·유럽 간 첨예한 이슈로 남을 것이다. 7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서양 동맹이 트럼프발 도전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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