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일만 되면 갑자기 추워진다는 ‘수능 한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으레 수능일을 추위와 연관 지어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로 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뀌고 시험 날짜가 11월로 앞당겨진 뒤부터 지난 30여 년간 영하권의 날씨는 단 8번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수능 당일 날씨만 떠올려 봐도 수능일과 추위를 직접 연결시키기엔 무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사실들과 무관하게 여전히 수능 날씨 하면 자동적으로 ‘한파’가 연상된다.
한국에서 대학 입시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수험생활을 즐겁게만 기억하는 이는 아마 드물 것이다. 아무리 착실히 준비했어도 1년에 딱 한 번 열리는 시험으로 수년간의 배움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피하기는 어려우니 말이다. 게다가 “공부는 혼자 하는 거야” “딱 몇 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하자”와 같은 조언은 안 그래도 힘든 수험생활을 더 외롭게 만들기 딱 좋다. 주변 분위기가 이런데, 수험생활이 ‘따뜻하게’ 느껴질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가늠해 보면, 수능과 함께 쓰는 ‘한파’라는 표현은 실제 기온이 떨어지는 것과 무관하게 사용할 수 있는 비유적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수능과 함께 쓰는 ‘한파’라는 표현
오답 하나에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는 줄 알았고
매일이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그때의 나에게 한마디 해 줄 수 있다면
“인생은 탑 쌓기가 아니다” 말해 주고 싶다
대학 입시가 인생의 전부 같았던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 역시 ‘따뜻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대학 합격과 동시에 펼쳐질 봄날만을 기다리며 극한의 추위로 자신을 내모는 행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오답 하나에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는 줄 알았고, 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신경은 항상 뾰족하게 곤두서 있었고, 부모님께도 냉랭했다. 수험생은 사람들, 특히 가족을 차갑게 대해도 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건 잘못된 인식이고, 정말 후회되는 일 중 하나다. 대입에만 집중하다가 막상 더 중요한 걸 놓친 것 같아, 성적에만 몰두하다 보니 되레 실수하면서 배울 기회를 많이 놓친 것 같아 문득문득 아쉬울 때가 많다.
그때가 참 찬란한 봄날이었는데, 그 온기를 나약함이라고 느껴 스스로 차단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한마디 해 줄 수 있다면, 인생은 실수 한 번에 모든 게 우르르 무너지는 탑 쌓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그렇기에 한 번 잘못 쌓았다고 인생이 와르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오히려 형식과 형태가 자유로운 퍼즐 같기 때문에 대학도 수많은 조각 중 하나일 뿐이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된다고 꼭 말해 주고 싶다.
수능처럼, 직면한 모든 난제는 그저 인생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걸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얼마나 빠르게 많은 조각을 조립하는지보다 그 조각을 선택하는 과정과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힘을 기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알 것 같다. 그리고 잘못 끼운 것 같으면, 다른 조각을 찾아 다시 끼우면 되는 게 퍼즐의 가장 큰 장점인 것처럼, 한 번 실수했다고 너무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그림을 맞춰 가고 있다. 그 과정에 한파 대신 온기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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