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는 대한제국의 국권을 지키기 위해 독립운동을 펼친 최세윤(1968년 독립장), 정원집(1995년 독립장), 김영백(1982년 독립장) 선생을 ‘2024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2024년 11월의 6·25전쟁영웅’으로는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서 살신성인의 자세로 자신의 목숨을 던져 전우들을 구한 발도메로 로페즈(Baldomero Lopez) 미 해병 중위를 선정했다.
최세윤 선생은 명성왕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을 기점으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안동의진에 참여했으나, 임금의 해산명령에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후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여론이 확산되던 1906년, 산남의진을 결성하던 정용기 선생의 요청을 받아 의병 모집과 무기 조달, 정보 제공 등 후방지원에 나섰다. 그는 1908년 산남의진 제3대 의병장을 맡아 경북을 중심으로 치열한 항일투쟁을 이끌다가 체포됐고, 경성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단식투쟁 끝에 순국했다.
정원집 선생은 대한제국의 군인이었으나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에 합류한 뒤 군자금을 조달하다가 체포되어 전남으로 유배됐다. 하지만 유배 중 탈출해 전해산(의병장) 의진인 대동창의단에 선봉장으로 참여했고, 전라도 지역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면서 군사지식을 활용해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1909년 일본군 섬멸과 무기 확보를 위해 나주 고막원에 있는 일본군 병참소 공격에 나섰으나 전투 과정 중 총에 맞아 전사했다.
김영백 선생은 을사조약을 반대하고 일본인을 비롯한 외세를 쫓아내기 위해 의병 1000명을 규합해 봉기했다. 김영백 선생의 의병부대는 전라남·북도를 넘나들며 항일투쟁을 전개했고 10여 차례 이상 일제 군경과 전투를 벌였다. 1909년 일제의 남한대토벌작전 이후 김영백 선생을 비롯해 휘하의 의병 상당수가 체포되었으며, 그는 교수형을 선고받고 순국했다.
세 명의 독립운동가는 일제의 그늘을 걷어내고 조국의 미래에 빛을 밝히기 위한 의병항쟁 중 순국했고, 이들을 위시한 의병항쟁은 일제강점기 동안 계속되는 전 민족적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정부는 이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각각 독립장을 추서했다.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된 로페즈 중위는 1925년 8월 23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태어났다. 1947년 6월 6일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해병대 소위로 임관했다. 1950년 6월 중위로 진급한 뒤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파병에 지원했다.
한국에 도착한 로페즈 중위는 미 제1해병사단 5해병연대 1대대 A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했으며,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다.
소대원들과 함께 해안에 상륙한 로페즈 중위는 선두에서 사다리에 올라 해안 방벽을 넘은 뒤 전방의 북한군 벙커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던 중 적의 기관총 사격으로 우측 어깨와 가슴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수류탄을 떨어뜨렸다.
바닥을 기어 수류탄을 다시 집어 던지려고 했지만, 부상으로 멀리 던질 수가 없었던 그는 부하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 대신 자신을 희생하기로 선택, 수류탄을 끌어안은 채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런 공로로 미국 정부는 1951년 8월 30일 로페즈 중위에게 미합중국 명예훈장(Medal of Honor)수여했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4월 25일 대한민국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글=송시연 기자/사진=국가보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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