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명소 시즌2]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입력 2024. 07. 24   17:15
업데이트 2024. 07. 2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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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대 명품 전우를 소개합니다 - 시즌2 
육군53보병사단 김재현 원사 

1998년 특전부사관 임관 ‘방방곡곡 누비는 최정예 특전요원’
동생·어머니 간호 위해 고향 가까운 39사단 근무 지원
작년 3월 18해안감시기동대대서 노후화 작전시설 개선 맡아
“특전맨 꿈 잠시 접었지만…마지막까지 안주하지 않는 선배 될 것”

 

자신의 평생 목표를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뜻을 세운 이에게 목표란 삶의 대부분, 혹은 전부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목표를 잠시 접고 부대, 전우를 위해 헌신하는 이가 있다. 육군53보병사단 18해안감시기동대대 김재현 원사가 바로 그런 경우. 김 원사는 특전부사관이란 꿈을 잠시 내려놓고 노후화된 작전시설을 개선, 장병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전국을 누비는 최정예 특전요원’이 후방부대로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글=박상원 기자/사진=이기복 대위

 

육군53보병사단 김재현 원사가 시설물을 점검하고 있다.
육군53보병사단 김재현 원사가 시설물을 점검하고 있다.



특전맨이었던 그의 삶

“특전사 시절이 아쉽냐고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임무도 전투력 증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죠.”

53사단 한 소파견지에서 만난 김 원사는 업체 관계자들과 물탱크 점검에 한창이었다. 장병들이 깨끗한 물을 이용하게 하기 위한 그의 점검은 ‘꼼꼼’ 그 자체였다.

1998년에 특전부사관으로 임관한 그는 현재 26년째 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2008년부터 39사단에서 근무한 김 원사는 바다 근처에서만 15년 근무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 기간 그는 대대 주임원사 임무는 물론 한빛부대로 파병을 떠나 재건사업과 민·군작전에도 참여했다. 당시 김 원사의 헌신에 감동을 받은 남수단 정부는 노동부 장관 표창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53사단 18해안감시기동대대로 자리를 옮겨 군수부사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대대에는 노후된 작전시설이 잔존해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바다와 밀접한 해안 소파견지 특성상 시설 곳곳에 부식이 빠르게 진행돼 각별한 관리도 필요했다.

사단 차원에서도 풍부한 경험을 갖춘 인물이 필요했다. 결국 39사단 남해대대 주임원사를 지낸 김 원사가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그는 대대 군수부사관으로 부임하자마자 세탁방을 설치하고 ‘더 좋은 병영식당’을 운영하는 등 장병들이 최상의 전투력을 유지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특히 실제 작전과 연계된 열영상감시장비(TOD)와 레이다기지(R/S) 개선 때는 주임원사 시절 경험을 되살린 노련한 운영으로 전투준비 태세에 크게 기여했다.

김 원사는 “진지 자체가 쇠로 만들어져 자칫 관리가 소홀하면 장병들이 다칠 수도 있다”며 “사업 추진 시 장비가 작동되는 모습을 보고, 점검한 시설물이 안전하게 유지되고 있으면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특전사 시절 전우와 함께 어깨동무한 김 원사의 모습.
특전사 시절 전우와 함께 어깨동무한 김 원사의 모습.

 

이라크 평화재건사단 5진에서 임무 수행 중인 김원사.
이라크 평화재건사단 5진에서 임무 수행 중인 김원사.



힘든 순간 가족 보고 버텨

사실 김 원사는 촉망받는 특전사였다. 특전사 복무 시절 합동참모의장 개인표창을 받는 등 ‘정예 특전맨’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이라크 평화재건사단 5진에 파견돼 대한민국 특전사의 우수성을 알리기도 했다.

그는 ‘왜 특전부사관으로 임관했냐’는 질문에 “학창시절부터 누구보다 강한 특전사가 되고 싶었다”고 간결하게 답했다.

“임관 이후 해외 파병 분쟁지역을 가면서 평화는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라크에서는 경호 작전을 수행하면서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다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의 친동생이 중증장애 판정을 받은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를 간호하던 어머니도 크게 몸이 안 좋아졌다.

특전맨으로 평생 임무를 수행하고 싶었던 그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당시 안 힘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사실 동생도 특전사로 근무했습니다. 전우였던 동생의 몸이 불편해져 가슴이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이어 어머니까지 힘든 상황에서 이기적으로 제 삶만 살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김 원사는 군인고충심사위원회 심사를 통해 자신의 고향과 가까운 39사단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집 가까이에서 가족들을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한 특전맨이라도 힘든 현실이었다. 하지만 뜻밖의 행운도 찾아왔다. 동생 덕분에 아내를 만났기 때문이다.

“동생을 극진히 보살펴준 간호사가 지금의 제 아내입니다. 저의 집안 사정을 알면서도 저와 결혼해준 아내에게 지금도 정말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말하기 힘든 가정사인데 이를 숨기고 싶지는 않냐는 질문에는 “내 이야기를 해야 병사들도 공감을 갖고, 어려운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괜찮다”며 “오히려 오늘 이야기를 계기로 장병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고 말했다.





파병지서 전역 목표

김 원사는 대대의 모든 시설물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임무 수행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일반 직장인이 아닌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이 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가진 경험을 총동원해 대대 장병들이 편안한 환경에서 경계 임무를 할 수 있게 돕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마지막 목표’를 설명했다. 파병지에서 군문을 떠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남수단 파병 때 주임원사님께서 파병지에서 복귀하고 전역하는 모습을 보며 감명받았습니다. 쉬운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자신의 경험을 알려주는 선배 모습을 보며 저도 같은 목표를 세웠습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안주하기보다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로 남고 싶습니다. 그게 저의 마지막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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