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은 조금 떨어져도 노병의 노련미 빛났다

입력 2024. 02. 28   16:28
업데이트 2024. 02. 2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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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자원단체 시니어아미 소집훈련

지난해 6월 창립한 민간 예비군 단체

백발 노인서 여성까지 조건 없어 가입
유사시 적재적소 동원 목표 훈련 소화
힘들다는 말 대신 자부심으로 임해
“건강 허락하는 한 동참” 의지 불태워

27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육군52보병사단 박달과학화예비군훈련대. 다음 달 4일 예비군훈련 시작을 앞두고 준비가 한창인 이곳에서 때아닌 예비군훈련이 열렸다. ‘나라가 부르면 우리는 헌신한다’는 기치 아래 전시 자발적으로 참전하겠다는 예비자원단체 (사)시니어아미 회원들의 소집훈련이 진행된 것. 백발의 어르신부터 중년의 여성까지. 다양한 나이대로 구성된 이들은 전투복과 개인 장구류를 착용하고, 시가지 전술훈련·영상모의사격 등을 소화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훈련을 동행하며 이들이 이런 선택을 한 이유를 들어봤다. 
글=임채무/사진=양동욱 기자

김태구(예비역 육군대령) 시니어아미 회원이 27일 경기도 안양시 육군52보병사단 박달과학화예비군훈련대에서 마일즈 장비를 착용하고 시가지 전술훈련을 하고 있다. 이날 훈련은 시니어아미 소집훈련의 하나로 이뤄졌다.
김태구(예비역 육군대령) 시니어아미 회원이 27일 경기도 안양시 육군52보병사단 박달과학화예비군훈련대에서 마일즈 장비를 착용하고 시가지 전술훈련을 하고 있다. 이날 훈련은 시니어아미 소집훈련의 하나로 이뤄졌다.

 

대한민국 ‘히든카드’로 입지 다져

분명 차이는 있었다. 육안으로 봐도 힘과 움직임이 현역보다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노련함, 특히 훈련받겠다는 의지는 절대 뒤지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창립된 시니어아미는 그동안 단체 입영훈련, 행군 등을 소화하며 대한민국을 지키는 ‘히든카드’로 입지를 다져왔다. 이번 훈련은 시니어아미가 목표로 내걸고 있는 훈련 정례화 차원에서 추진됐다.

사실 이들을 만나기 전까지 회원 대부분이 직업군인 출신으로 이뤄졌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은퇴 후 농사를 짓거나 자영업자, 주부 등 군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었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김석범(64) 회원은 “친구를 통해 시니어아미를 알게 됐다”면서 “국가가 위기를 맞았을 때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한 치 망설임 없이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젊은 시절 13년간 군 간부로 복무한 남편 김상봉(66) 씨를 따라 시니어아미가 된 박경숙(64) 회원은 이날 훈련을 받기 위해 3시간 가까이 걸려 대전에서 왔다고 했다. 박씨는 “남편도 남편이지만, 친정이 3대(代) 모두 성실히 군 복무한 병역명문가라는 점에서 큰 거부감이 없었다”며 “북한의 계속되는 위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지원했다”고 밝혔다.

최고령 참가자인 민기홍(80) 회원은 “회칙상 75세 이상은 관리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고 해서 병원에서 신체 나이가 59세라는 걸 증빙하는 서류까지 받아 가입했다”며 “30~50대는 경제를 지켜야 하니 우리 시니어아미가 나서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90세든, 100세든 훈련에 동참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시니어아미 회원들이 시가지 전술훈련에 앞서 작전토의를 하고 있다.
시니어아미 회원들이 시가지 전술훈련에 앞서 작전토의를 하고 있다.



50~80세 시니어들 경험 살려 교전

이날 훈련의 하이라이트는 시가지 전술훈련이었다. 황팀과 청팀으로 나뉜 회원들은 훈련에 앞서 교장 환경을 재현한 워게임 상황판에 상대 팀을 공략할 전술을 수립했다. 분대장 지휘 아래 각자의 임무를 확인할 때는 비장함까지 엿보였다.

“교전 시작”이라는 방송과 함께 연막이 피어오르면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됐다. 회원들은 노련미를 뽐내며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30대 후반인 기자에게는 힘든 훈련이 아니었지만, 회원들은 50~80세의 시니어들.

교전을 끝내고 숨을 몰아쉬는 이들에게 신체적으로 어려운 점은 없는지 묻자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황순용(70) 회원은 “현역보다 체력은 떨어지지만, 우리에게는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고 말했다.

황인수(66) 회원은 “국가 안보 수호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면 이런 훈련은 충분히 받을 수 있다”며 “여기 계신 모든 회원이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원들은 훈련받으면서 힘들다는 말 대신 자부심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 회원들은 수십 년 만에 다시 하는 훈련에 “예비군훈련이 많이 발전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나도 할 수 있다”는 반응을, 여성 회원들은 “안보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는 의견을 밝혔다.


마일즈 장비를 착용한 시니어아미 회원들이 시가지 전술훈련을 하는 모습.
마일즈 장비를 착용한 시니어아미 회원들이 시가지 전술훈련을 하는 모습.



“국가에 도움 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 

이번 훈련을 기획한 윤승모 대표에게서 시니어아미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윤 대표는 “‘남성의 재입대’를 추구한다는 대중의 오해와 달리 시니어아미는 나이·성별 조건 없이 가입할 수 있는 민간 예비군 단체”라면서 “회원 중 55~75세의 남성을 예비 병력으로 관리하다 유사시에 훈련·건강 상태 등의 기록을 국방부에 넘기고, 적재적소에 동원되는 걸 목표로 한다”고 소개했다.

윤 대표는 또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인 이유로 단체를 설립했다는 일부의 주장에 “시니어아미 헌장에 ‘정파적 행동을 배격한다’는 지침을 포함했다”며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단체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윤 대표는 안보 위기를 꼽았다. 그는 “병력 공급이 안 되면 북한 등이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며 “지난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1억5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러시아도 예비역 30만 명을 동원하지 못해 쩔쩔매는 걸 보면서 ‘만약 전쟁이 나면 우리나라는 큰일 나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령 인구가 많은 장·노년층이 나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장·노년층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고, 함께 해결책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덧붙였다.

시니어아미는 올해 가입자 건강 상태와 훈련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또 훈련을 정례화하고, 지방에도 조직을 만들 예정이다.

윤 대표는 “저출생은 모든 국민에게 닥친 문제이고, 우리가 고심해서 내놓은 해결책이 ‘시니어아미’”라며 “우리는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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