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하지 않은 행운

입력 2023. 06. 09   15:23
업데이트 2023. 06. 0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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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내가 일하는 헌책방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분야의 책은 단연 소설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으니까.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는 내용에 개연성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책 속의 이야기에 독자가 공감하니까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공감할 수 없는 책이라면 무슨 재미로 읽겠는가?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첫 장면에서 앨리스는 언니가 읽는 책을 힐끔 보더니 “그림이나 대사도 없는 책이 무슨 재미가 있담?” 하며 실망한다. 본문에 예쁜 그림이 없고 흥미로운 대사가 빠진 책은 어린이 앨리스가 공감하기 어려웠다.

이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을 때 이야기 전개가 억지스러우면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그 안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고, 그것들이 자연스러운 개연성을 갖고 연결돼 있을 때 우리는 구성이 탄탄하다고 말한다.

개연성은 기본적으로 인과관계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복잡한 줄거리라고 하더라도 작가는 결과에 따르는 원인을 명쾌하게 제시해야 한다. 결과와 원인이 애매하게 엮여 있거나 둘 중 하나가 아예 없다면, 혹은 연결고리가 끊어져 있다면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책은 재미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삶을 생각해 보면 어떤가? 현실의 삶은 소설처럼 개연성이 매번 딱 들어맞지 않는다. 소설은 인위적으로 창조해 내는 세계이기에 개연성이라는 게 존재하지만, 실제의 삶은 일부러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갈 수 없다. 그게 삶의 커다란 아이러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는 기뻐하기도, 반대로 슬픔을 겪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삶에서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한 매뉴얼 같은 게 있다고 믿는다. 사실 그런 건 없다. 앞서 말했다시피 실제 삶은 원인관계가 불분명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누군가 사람의 인생에서 정확한 인과관계의 원리를 찾아낼 수 있다면 당연히 완벽한 삶의 계획을 세울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정말로 그런 원리가 존재한다면 삶은 무척 재미없게 느껴질 것이다. 계획대로 뭐든 다 이뤄진다면, 심지어 그런 계획의 모범답안까지 존재한다면 모험이나 용기 따위는 불필요한 세상이 될 것이다. 삶의 기쁨은 소설과는 달리 정해진 것보다는 우연한 만남에서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연히 얻는 기쁨을 우리는 행운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이라는 큰 틀에서 봤을 때 행운은 길에서 우연히 돈을 줍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그저 공짜로 얻어걸리는 것만이 행운은 아니다.

행운이란 계획하지 않은 우연한 만남에 당황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마음을 열었을 때 찾아오는 선물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조금은 가벼운 감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아픔을 달랠 수 있다.

성공과 실패는 모두 행운을 이르는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 옛 고사 중 ‘선악개오사(善惡皆吾師)’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모두 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지금 기쁨에 들떠 있거나, 혹은 슬픈 감정에 빠져 있더라도 이 모두가 하나의 행운을 향할 수도 있다는 삶의 지혜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계획하지 않았던 그 모든 일의 결과는 크고 작은 행운으로 삶에 스며들어 마침내 멋진 작품을 만든다. 나는 그렇게 믿고, 그 믿음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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