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의 제원·성능 자료들을 보면 무게와 속도, 거리의 단위가 지상에서 운용되는 무기체계에서와는 낯설 만큼 다르게 쓰이고 있다. 대부분의 무기체계는 길이, 폭, 높이를 미터(m) 단위로 규모를 나타내지만 함정은 그런 시각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크기보다 톤(t)이라는 무게 단위로 표현한다.
그런데 같은 톤 단위를 쓰고 있더라도 결코 ‘같은 값’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적용하는 기준이 상선이 다르고 군함이 다르며 심지어 나라마다 다르다. 특히 어원과 유래도 매우 흥미롭다.
■ 배의 무게는 어떻게 잴까.
간단하다. 욕조에 물을 넘치듯 가득 넣고 어떤 물체를 넣어보자. 이때 물이 넘친(물체가 물을 밀어낸) 양이 곧 물체의 무게이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 들어갔을 때 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고 넘친 물의 양이 자신의 몸의 부피와 같다는 것을 깨달으며 ‘유레카(알았다)’라고 외쳤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이다.
배의 무게도 이런 원리를 이용해 측정한다. 이렇게 물을 밀어낸 무게를 배수량이라고 ‘톤’ 단위로 표기한다. 일반적으로 물체의 무게를 그것의 부피로 나눈 것을 ‘평균 밀도’라고 하는데 물의 평균 밀도는 약 1000kg/㎥이다. 일반적으로 물 1리터(ℓ)의 무게를 1kg, 비중은 1로 정하고 있다. (조건은 1기압, 4°C인데, 이때 물의 부피가 가장 작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1㎥는 1000리터이며, 1톤이 된다.
■ 그럼 배는 어떻게 뜨는가.
당연하게도 물보다 물체가 가벼우면 뜨는 것이고 무거우면 가라앉는다. 보통 배를 만드는 철은 같은 부피의 물보다 약 7.8배가 무겁다고 한다. 그러니까 쇳덩이 상태로 물에 넣으면 그냥 가라앉게 된다.
그런데 쇠를 넓게 편다거나 그릇 모양으로 만들면 밀도가 물보다 작아져 결국 물보다 가볍게 할 수 있다. 이는 물속에서는 물체를 중력과 반대 방향인 위로 올리는 힘 즉 부력이 작용하기 때문인데, 물에 닿는 면적이 넓어진 만큼 부력이 커진다.
마찬가지로 육지에서 장갑차도 일정한 크기와 무게로 부력을 맞춰주면 물 위에 떠서 수상 운행을 할 수 있다.
■ 왜 톤으로 쓰나
배 무게의 단위는 1kg의 1,000배에 해당하는 톤(t)으로 표기한다. 또 톤은 용적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래서 민간에서 톤이라 하면 크기라기보다는 적재·운반 능력을 뜻하기도 하는데, 용적을 말하는 1톤은 1.133㎥의 크기, 무게를 말하는 1톤은 1,000kg에 해당한다.
어원(語源)을 찾아보면 톤(tonnage·ton)은 라틴어인 tunna에서 나왔다고 한다. 참치(tuna)가 아니라 술통이라는 뜻이다. 고대 영어에서도 tun은 큰 술통을 뜻한다. 특히 300~750 리터의 큰 포도주 통을 tonneau라고 한다.
이 술통이 어떻게 무게·용적의 단위가 되었을까.
옛날 유럽에서는 배의 크기를 배에 실을 수 있는 포도주 통의 크기와 개수로 계산하고 이를 근거로 세금을 매겼다고 한다. 즉 세금 징수를 위해 포도주 통(톤)을 배의 크기를 재는 단위로 쓰면서 배의 운반능력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오늘날 대부분의 선박에서는 화물을 적재할 때의 용적톤수로 표기하고 톤세(배의 톤수에 따라 내는 세금), 항만시설 사용료, 운하 통과료 등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군함의 경우는 상선과 달리 용적이 아닌 배수량(displacement tonnage)이라고 하는 중량톤수가 쓰인다.
함정에서 기계장비와 설비를 포함한 자체만의 무게는 경하(輕荷·light load) 배수톤수, 승조원과 화물·연료 등을 가득 채웠을 때는 만재(滿載·full load) 배수톤수라고 한다. 표준 배수량(Standard Displacement)은 과거 해군 군함의 크기를 규제하기 위한 워싱턴조약에 따른 배수량 기준으로, 탄약이나 승조원의 무게는 포함되어 있지만 연료나 청수 등은 포함시키지 않았을 때의 배수량이다.
■ 표기 기준, 하나둘이 아니다
그런데 같은 경하·만재 배수량이라고 해도 수치가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
미국의 니미츠급 항공모함을 보면, 미 해군이 공식적인 만재배수량을 시종일관 9만 7000톤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비해 민간에서 출간된 군사 서적에서는 10만 1000톤이나 10만 3000톤 같은 다른 수치를 제시하는 것도 만재 배수량의 기준이 경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더욱이 2000파운드를 1톤으로 하는 미국 톤(Short Ton), 2240파운드를 1톤으로 하는 영국 톤(Long Ton), 미터법 기준(Metric)의 1톤에 따라서도 수치가 달라질 수 있다. 나라마다 어떤 배수량을 표기 기준으로 삼는가 하는 것도 다르다.
미 해군은 기본적으로 만재 배수량으로 함정의 중량을 표시하지만 일본 해상자위대는 표준 배수량으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국, 프랑스, 중국 등은 필요에따라 경하 배수량과 만재배수량을 혼용하고 있다. 우리 해군은 일반적으로 경하 배수량 기준으로 한 경하톤수로 표기하고 있다.
같은 함정이라도 배수톤수가 제각각으로 나타나는 이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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