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하면서 가장 부드러운…주민 마음 사로잡았다

입력 2021. 05. 13   15:50
업데이트 2021. 05. 1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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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동티모르 상록수부대 ⑮ -다국적군의 왕 / 김사진 예비역 준장 (8진 단장)

 
치안 회복 따라 전 부대원 민사활동
정신적 고통 겪는 주민들에 심리상담
실질적 자립 돕는 기계·장비 교육도
독립기념일 행사 한식소개 큰 인기
철수 일정 다가오며 아쉬움 더욱 커져

동티모르 상록수부대 장병들이 부대 개방행사를 진행하며 지역 주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방일보 DB
동티모르 상록수부대 장병들이 부대 개방행사를 진행하며 지역 주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방일보 DB

상록수부대는 강한 전투력을 바탕으로 본연의 임무인 치안 회복·유지 작전을 완벽히 수행하며 동티모르 내 다른 어느 곳보다 가장 먼저 책임 지역을 안정시켰다. 또 다양하고 실질적인 민사 활동으로 동티모르 주민들로부터 가장 모범적인 부대로 평가받았다.

상록수부대원들의 활동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동티모르 주민들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었다. 한국인이 가진 따뜻한 ‘정’의 표현이었으며, 과거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선열의 ‘얼’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그들이 느끼는 아픔과 상처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기에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일부 타국 군 장병은 주민들을 하대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다못해 아이들에게 사탕 하나를 주더라도 아이의 눈높이를 맞춰 손을 맞잡으며 건넸습니다. 못 먹고 못살지언정 그 정신과 마음이 가난한 것은 아닙니다. 또 동티모르의 역사를 통해 주민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독립을 위해 노력했고, 분쟁과 갈등으로 이어지며 수많은 희생을 받아들여야 했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상록수부대 8진 단장이었던 김사진 예비역 준장(당시 중령)은 1진부터 7진까지 이어진 민사 활동을 종합하는 ‘블루엔젤작전’을 펼쳤다. 제한된 분야에서 한정된 인원이 수행했던 앞선 진들과 달리 전 부대원이 참여해 창의적인 지원을 제공한 활동이었다. 블루엔젤은 상록수부대의 파란 베레모에서 딴 이름이었으며, 치안이 상당 부분 회복한 상태를 반영한 확장된 활동이었다.

“기존 농기계 수리, 이발 지원, 아동시설 방문에서 나아가 심리상담이나 기계·장비 교육 등을 했습니다. 심리학·교육학을 전공한 간부가 몇몇 있었는데, 가족이나 집을 잃어 정신적 고통을 겪는 주민들에게 심리상담을 진행한 것이었어요.”

이와 함께 실질적인 자립을 돕는 교육과 태권도 교실 등은 청년과 아이들의 상처 난 심신을 어루만지며 강인한 정신을 기르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태권도 교육·지원이 부대 철수 이후에도 지속하도록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국기원에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상록수부대에 대한 주민들의 지지는 8진 부대원들이 철수 직전 참여한 동티모르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잘 나타났다. 현지에 주둔 중인 각국 부대가 자국 문화를 홍보하는 장이었는데, 상록수부대원들의 태권도·특공무술 시범은 주민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 매력에 반한 것이었다.

“하이라이트는 2부 행사로 열린 각국 음식 문화 소개였습니다. 장병들이 김치, 잡채, 불고기, 떡볶이를 직접 만들어 판매했어요. 인근 호주에서 재료를 공수해 만든 음식이었습니다. 돈을 받고 판매한 음식이었음에도 불과 30분 만에 완판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판매 수익금은 동티모르 불우아동을 돕기 위한 유엔 기금에 전액 기부했다. 동티모르 주민들은 이 같은 상록수부대를 ‘다국적군의 왕’으로 불렀다. 가장 강한 부대면서 동시에 가장 부드러운 부대였던 것. 모든 면에서 타국 군을 앞섰다. 모범이 됐다. 부대 철수 일정이 다가올수록 주민들의 아쉬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서현우 기자


“주민 감정까지 세심하게 신경…현지 말로 인사하는 모습에 놀라”
본지에 실린 동티모르 학생의 감사 글


국방일보 1999년 12월 4일 자 지면에 실린 동티모르 학생의 글.
국방일보 1999년 12월 4일 자 지면에 실린 동티모르 학생의 글.

당시 동티모르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세르진하 헤르난데스는 1999년 12월 4일 자 국방일보 지면을 통해 상록수부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다음은 감사 글.

먼저 한국군의 상록수부대가 이 지역의 질서와 치안을 회복하고 평화를 가져다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런 한국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이 나라 모든 사람이 갖는 감정일 것입니다. 한국군이 이곳에 와서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불안과 긴장에 떨고 있던 사람들이 심리적 안정을 되찾고 생업에 종사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동티모르는 지난 8월 30일 독립을 위한 주민들의 투표와 그 투표 결과에 반대한 반독립파의 학살이 자행되기 전까지는 세계의 관심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동티모르는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 많은 원인 중 하나는 우리 스스로 이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가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긴 역사적 고통을 겪으면서 이런 우리의 잘못된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좋은 기회를 다시는 헛되게 하지 않으려 다짐하고 있습니다.

노예 같은 삶을 살아온 우리는 독립을 묻는 주민의 투표가 찬성 쪽으로 통과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런 기분은 한국군도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한국도 지금의 우리처럼 다른 나라로부터 속박을 받은 적 있고, 독립을 위해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는 말을 선생님에게 들었습니다.

한국군이 이곳의 문화를 이해하면서 주민들의 감정을 해치지 않게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현지 주민들과 친숙해지려고 현지 말로 인사도 하는 것에 감사함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곳은 한국군에게 외국이고 낯선 곳인데도 불구하고 그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항상 웃으며 다니는 모습이 보기에 너무 좋았습니다. 각자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모습에서는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치안 유지만으로도 감사한데 우리의 교육을 위한 학용품과 일일 영어교사 지원, 태권도 시범, 영화상영, 의료지원 등 지원을 해주고 있는 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한국군을 ‘백인종의 왕’으로 부릅니다. 동티모르인들은 다국적군을 백인종(무띤)으로 표현합니다. 이 말은 한국군이 가장 모범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동티모르인들이 한국군에 붙여준 애칭입니다.

현재 우리가 한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감사하다는 말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동티모르 주민을 대표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며, 한국의 앞날에 영광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서현우 기자 < lgiant6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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