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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 정리한 철수 보고서에 유엔 직원들 깜짝 놀라

기사입력 2021. 05. 12   16:36 입력 2021. 05. 12   16: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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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마침표 그리고 쉼표 -김사진 예비역 준장 (동티모르 상록수부대 8진 단장)

감축 계획 따라 병력 절반 수준 편성
2003년 6월 철수 명령 공식 접수
복잡하고 까다로운 경비보전 업무
사소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정리
한국군 성실함·꼼꼼함 알린 계기

동티모르 상록수부대 8진 장병들이 2003년 10월 철수 작전을 수행하며 장비·물자를 선적하고 있다.  국방일보 DB

동티모르 상록수부대는 2003년 4월 마지막 8진 장병들이 앞서 파견된 1~7진까지의 성과를 이었다. 8진은 유엔의 동티모르 평화유지군 감축 계획에 따라 기존 병력의 절반 수준인 240여 명으로 편성됐지만 4년여의 동티모르 상록수부대 활동을 완전하게 마무리하고 철수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했다.

2002년 5월 동티모르 독립 정부가 출범하자 유엔은 동티모르 평화유지군 감축을 서둘러 진행했다. 독립 정부의 자주적 역량을 높이고 유엔의 예산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유엔은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4단계에 걸친 감축 계획을 실행했다. 상록수부대 역시 2003년 말께 철수하기로 했다. 최종 철수·귀국 일정은 유엔군사령부와의 협의와 현지 상황을 고려해 10월로 결정했다.

2003년 4월 현지에 파견된 상록수부대 8진은 기존 치안 유지와 국경선 관리 임무를 계속 수행하면서 안전하고 완전한 부대 철수 임무를 함께 진행했다. 당시 8진 단장으로 작전을 지휘한 김사진 예비역 준장(당시 중령)은 성공적인 부대 철수를 위해 유엔 및 현지 정부와 유기적인 협조를 이어갔다.

“작전 지역에서 활동 중인 유엔지원단을 비롯해 동티모르 중앙·지방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조 회의를 했습니다. 4년여 평화유지활동(PKO)의 마침표이면서, 양국의 새로운 협력적 관계를 잇는 쉼표였습니다. 부대원 모두가 막중한 책임감으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김 예비역 준장은 1진 지원대장이기도 했다. 1진 본대 파병에 앞서 선발대로서 가장 먼저 현지에 파견돼 호주군과 협조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동티모르 상황과 우리 군 파병 과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파병만큼이나 철수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최초 파병 임무를 맡았었기에 철수 임무도 문제없었습니다. 앞선 5진 부대가 동부지역에서 서부지역으로 이동하며 겪은 경험을 이어받아 십분 활용했고, 각각의 진들이 자신의 업무 노하우를 인계하며 쌓아온 자료들 역시 큰 도움이 됐습니다. 1진부터 8진까지 모든 부대는 일치단결한 하나의 부대였습니다.”

유엔 평화유지군사령부의 상록수부대 철수 명령은 2003년 6월 공식 접수됐다. 상록수부대는 합동참모본부의 지령에 따라 신속하게 철수 계획을 수립했다. 임무 종료일을 그해 10월 15일로 지정받았다. 사실 부대 철수 임무는 업무량과 강도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현지 유엔군사령부, 유엔본부 담당 부서, 동티모르 정부 등과 끊임없이 철수 협의를 하고, 물자·장비를 비롯한 소모품·비품의 재고·상태를 정확히 파악해 분류한 뒤 처리해야 했다.

특히 경비보전 업무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은 유엔이 참여국의 병력·장비·물자를 임대하고 추후 경비를 보전하는 방식이었다. 장병들에게 지급하는 급여, 각종 재해보상, 장비·물자 감가상각 및 운영유지에 따른 경비보전 등을 구분해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는 유엔 직원들의 대조·검사도 수차례 반복됐다.

“유엔 직원들이 관련 서류를 보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소한 부분 하나까지 세세하고 정확하게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오차는 전혀 없었습니다. 업무를 하면서 스트레스가 심했지만, 한국군의 성실함과 꼼꼼함을 다시 한 번 알릴 수 있어 뿌듯했습니다.”

철수 작전을 수행하면서도 기존 치안 유지 임무는 계속됐다. 상록수부대 병력 규모는 절반 가까이 축소됐지만, 기존 업무에 더해 철수 업무가 추가로 주어지면서 업무량은 배 이상 늘어난 셈이었다. 하지만 부대원 누구도 불평·불만이 없었다. 시작만큼 맺음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철수 시기가 다가옴에 따라 먼저 상주작전중대를 철수해 주둔지 본대에 합류시켰습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불안해할 것 같아 걱정됐어요. 이 때문에 철수하는 날까지 일일 기동순찰을 계속했습니다. 동티모르 중앙·지방 정부와 실무 협조 회의도 수시로 진행했고요. 원활한 철수가 이뤄지도록 하는 데 서로의 의견·이견을 주고받는 일은 중요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의지였습니다.”

강한 의지로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아쉬움 가득한 주민들을 마주하는 일은 마음을 힘들게 했다. 하지만 상록수부대 철수는 동티모르의 건강한 미래를 위한 과정이었다. 더욱 발전된 관계로 나아가는 전환점이었다. 상록수부대 활동을 통해 형성된 우리와 동티모르의 우호적인 관계가 부대 철수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랐다. 서현우 기자



서현우 기자 < lgiant6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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