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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계족산성

기사입력 2021. 04. 23   08:37 입력 2021. 04. 23   13: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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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계족산성


계족산 능선 따라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 

둘레 길이 1,037m… 대전 산성 중 최대

백제·신라·고려·조선의 유물 다수 발굴

성 안 국내 최대 규모 집수지 발견 복원


계족산성의 정문 역할을 하고 있는 서문의 모습.


■ 황톳길를 따라 걸어보며 역사를 만나다


대전광역시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곳 중 한 곳인 계족산은 황톳길로 유명하다. 등산로를 따라 이어진 황톳길의 전체 길이는 15㎞에 달한다. 등산객들은 등산화를 벗고 등산로 한쪽에 이어진 황톳길을 맨발로 걸으며 황토의 시원한 촉감에 빠져든다. 이렇게 황톳길을 따라 산을 오르다 보면 나무계단 앞에서 계족산성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나무계단을 오르다 숨이 턱까지 찰 때쯤 계족산 정상에 다다른다. 


계족산성은 계족산 봉우리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긴 사각형 모양의 산성이다. 성곽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인 경관을 자랑하며 대전 시내도 볼 수 있다. 


정면이 탁 트인 경관을 자랑한다.


■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성의 역할 수행


‘산줄기가 닭발처럼 퍼져 나갔다’ 하여 계족산이라 부르는 이곳에 위치한 계족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된 산성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성 내부에서 백제유물뿐 아니라 신라와 고려, 조선시대의 토기와 자기 조각도 출토되고 있어 상당히 오랫동안 성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을 것으로 짐작게 한다.

계족산성은 대전에 있는 30여 개 산성 중 가장 큰 규모로 삼국시대 당시 백제가 신라의 침입을 방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계족산성은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 형태이며 둘레 길이는 1037m이다. 성벽 높이는 동벽이 4~6m, 남벽이 2~8m, 서벽은 7.8m, 북벽은 9.4m다.

문터는 동쪽과 남쪽, 서쪽에 하나씩 있는데 이 중 계족산성의 정문 역할을 하고 있는 서문터와 함께 남문터만 복원된 상태다.

복원된 서문은 계족산성에서 가장 높은 쪽 산등성이에 위치해 있는데 사다리를 이용해야만 통과할 수 있는 현문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현재는 계단을 설치해 손쉽게 통과할 수 있으며 바닥 높이 4.6m이고 폭은 4m로 상당히 넓은 편이다.

서문을 소개하는 안내문에 따르면 “서문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연꽃무늬 수막새기와 2점과 안쪽에 기와를 만들 때 쓰는 통쪽을 가로로 묶은 굵은 선의 흔적, 그리고 돗자리 무늬가 새겨진 평기와 조각이 많이 출토됐다”며 “이를 통해 계족산성이 삼국시대에 쌓은 성임을 알 수 있다”고 밝힌다.

남문은 서문과 같은 현문 형태지만 남문 옆 동쪽 바깥벽에 2단으로, 서쪽 바깥벽에 3단으로 보축성을 쌓았다. 이 보축성은 성곽의 보강뿐 아니라 적의 동정을 살피고 방어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서문터 왼쪽 성벽을 따라가다 보면 계족산성에서 유일한 곡성을 만날 수 있다. 곡성은 치성과 같은 역할을 하며 근접한 적이 성에 다가서거나 오르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남문 밖 왼쪽 아래의 수구문
국내 최대 규모로 알려진 집수지 모습. 북쪽 방향이 반원 형태이며 계단식으로 이뤄져 있다.


■ 8개의 건물터 발견


산성 안에는 최근까지의 발굴조사를 통해 동서남북 벽 쪽에서 모두 8개의 건물터가 발견됐다. 이 중 서문터 옆에서 발굴된 건물터에서는 내부에서 12~13세기 당시의 청자·토기 조각이 나와 고려 시대의 건물터로 짐작하고 있다.

남문 안쪽 언덕에는 봉수대가 있는데 현재 봉수시설은 남아 있지 않고 봉수대의 규모를 알려주는 표지판만 볼 수 있다.

표지판에 따르면 “봉수대는 길이 11m, 최대 너비 22.8m의 방호벽을 쌓고 안쪽을 두 구역으로 나누었다”며 “동쪽에는 길이 11m, 너비 5.2~7.8m 규모의 평면 사다리꼴로 만들어 봉수 시설을 설치했다”고 알려준다. 이 봉수대는 조선 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쪽 벽 가까이에서는 국내에서 발견된 것 중 최대 규모인 ‘집수지’를 만날 수 있다.

이 집수지는 산성 안의 군사들에게 마실 물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화재 발생 시 소화용 물로 사용됐다. 또한,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의 속도를 낮춰 성벽을 약화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진다. 집수지는 경사가 급한 북쪽을 반원형으로 쌓았으며 남북으로 길쭉한 계단형태의 모습이다.

계단을 올라야만 통과할 수 있는 현문 형태의 복원된 남문. 남문 좌우로 성곽 보강과 방어의 역할을 하는 보축성이 보인다.

■ 편집 = 이경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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