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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호 종교와 삶] 맥락을 만드는 힘

기사입력 2021. 04. 06   16:43 입력 2021. 04. 06   16: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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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호 지상작전사령부 군종실 군종작전장교·목사·소령

신약성경에는 예수와 대화를 나눈 사마리아 출신 여인의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2000년 전 남성 중심의 신분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로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던 한 여인이 새로운 삶을 살 힘을 얻게 된 이야기다.

바닥을 친 여인의 삶에 반전의 힘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예수의 말 한마디였다. 그것을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쉽게 표현해본다면 ‘당신도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정도가 된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이 흔한 문장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마신 물은 똑같았지만 그 물이 어떤 맥락에 놓였느냐에 따라 원효의 반응이 달라졌다. 그 물이 갈증을 풀어준 시원한 빗물이란 맥락에서는 고마움의 대상이었지만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이란 맥락에서는 구토 유발 물질이 되고 말았다.

이런 예는 찾기 쉽다. 이를테면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와 같은 말이다. 어머니는 왜 강한가? 답은 명확하다. ‘여자’는 자녀가 없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어머니’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상 지켜내야 할 자녀가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라는 맥락이 여자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종교의 가치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순교자들이 생기는 이유도 같다. 그들은 소중한 종교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강렬한 신앙적 맥락에서 기꺼이 생명을 희생한다. 전장의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죽음이라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맥락에 놓이게 되면 군인은 누구라도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다. 맥락은 목숨까지도 걸게 만든다. 맥락은 힘이 세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폴 틸리히는 “짐승과 인간은 같은 지구에 산다. 그러나 짐승에게 지구는 환경일 뿐이지만 인간에게는 세계다”라고 했다. 여기서 ‘환경’은 주체적인 변혁의 가능성이 없는 개념일 것이고, ‘세계’는 발전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대상일 것이다.

사람은 상황(맥락)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회심리학의 일반적인 주제를 극복하고, 발전적인 맥락을 창조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힘을 실어주는 말이다.

인간의 삶이란 주어지는 맥락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삶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짐승과 구별된 인간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는 그 삶에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창조적 맥락의 유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을 위한 도구,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하는 고교생활, 직장생활은 딱 그만큼이다. 하지만 새로운 맥락의 창조는 평면의 일상을 입체화하고 새로운 시각을 부여한다.

우리의 군 생활은 다양한 맥락으로 재창조될 수 있으며 오르막과 내리막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우리의 삶 역시 새로운 맥락을 통해 재해석될 수 있다. 배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 일을 시키기보다, 거대하고 드넓은 바다를 동경하게 만들라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냄으로써 놀랍도록 창조적인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 맥락은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개인의 삶에, 그리고 우리의 조직 속에 어떤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같이 질문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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