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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 문화산책] 변화에 대응하는 자세

기사입력 2018. 11. 29   13:34 입력 2018. 11. 29   15: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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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수 진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예술기획자


오늘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다. 스무 살을 갓 넘겨 입대한 병사에게나, 머리에 눈꽃이 내려앉은 어르신에게나, 오늘은 참으로 공평하게도 말 그대로 지금 막 맞이하는 날이다. 하루하루가 새날이어서 설레고 신나기만 하면 좋을 텐데 가끔은 세상살이가 두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

부서지는 햇빛에 눈이 부신 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다가 난생처음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던 순간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무얼 알았겠나 싶다가도 어린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던 존재의 무력감을 떠올리면 이내 수긍한다. 세월이 이 정도 흘렀으면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나의 20대 청년기를 지배했던 고민의 한 자락은 롤 모델을 찾는 것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정답을 제시해줄 수 있는 인물, 저 사람처럼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열렬히 찾았다. 유명한 학자, 예술가, 작가, 선배들을 찾아다녔지만 내 마음을 채워줄 모범답안을 만날 순 없었다. 실망스럽고 지친 마음에 선택한 것이 공부였다. 나는 이미 예술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권하지 않는 길에 들어섰다. 닮아가고 따라갈 사람을 찾지 못했으니 그냥 나의 질문을 따라 길이 없을지도 모르는 깊은 숲 속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나의 전공이었던 심리학과 사진예술이론은 아직 어디에 활용될지 모르는 미개척 분야에 가까웠다. 실용적이지도 못한 두 학문의 관심사와 연구방법을 연결해 보겠다는 나의 순진한 아이디어는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역시 세상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은 이제 모든 이의 상식이 됐다. 사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온 국민이 포토그래퍼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두가 성능 좋은 카메라가 딸린 전화기를 휴대하는 시대에 살게 됐다. 복합과학으로서의 심리학과 현대예술의 핵심 미디어인 사진을 연결해서 기초연구를 하고, 전시하고 책을 만들고 작가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들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르를 넘어 예술 전반에 대한 기획자로 일하게 됐다. 돌이켜 보면 관객들을 먼저 이해하고 소통 방법을 찾는 관점의 차별성이 내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세상이 순식간에 바뀐 덕분에 많은 기회를 얻었으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처음 작은 숲길로 걸어 들어가던 그 시간을 생각하면 다시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오지 않은 시간은 온전히 예측될 수 없고 내일은 다시 새로운 오늘로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도 세상은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그 변화는 혼란보다 또 다른 기회를 열어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명료하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묵묵히 걸어갈 용기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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