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 K뷰티 트렌드에서 배운다
속도력, 대응력, 기획력, 주도력, 상품력, 덕후력...
빠른 검증과 민첩한 실행력 구조 해부
K뷰티, 신드롬 아닌 ‘K산업 총아’ 우뚝
‘코덕’ 소비자 반응 기획 밑바탕으로…
‘화해’ 플랫폼 독보적 안전한 성분 자랑
‘예쁘다’ ‘퓨어서울’이라는 브랜드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놀랍게도 한국 브랜드가 아니다.
‘예쁘다’는 독일 화장품 브랜드이고
‘퓨어서울’은 영국에서 한국 화장품을
전문 유통하는 브랜드다.
전 세계에서 K뷰티 사랑이 뜨겁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화장품 수출 규모가
지난해 상반기보다 14.8% 증가해
역대 최대 수출액을 기록했다.
특히 수출국은 중국, 미국, 일본을 넘어
전 세계 각국으로 번지고 있다.
K뷰티는 어떻게 한국의 대표 산업이 됐을까?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정받게 된
이유를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
이는 단지 화장품 산업이나 관련 소비재
업계에만 시사점을 주는 게 아니다.
전 세계가 연결되고 급변하는 현대 경제를
경험하는 조직·개인 모두 벤치마킹할
점이 있다. 필자가 공동 집필한 저서
『K뷰티 트렌드』에서는 K뷰티가
가진 6가지 힘을 분석했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는 기획력이다. 기획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황을 분석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논리적·창의적으로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K뷰티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매력적으로 제시하는 데 탁월하다. 예를 들어 소비자 리뷰 데이터로 소비자의 욕구를 읽어 내며,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어떤 유통·마케팅·상품·생산이 필요할지 역순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역기획’을 한다.
두 번째는 속도력이다. 현대 경제는 더 이상 ‘규모의 경제’가 아닌 ‘속도의 경제’라고 부를 만하다. 소비자 취향이 세분되고 급변하는 시장에선 가설을 빠르게 검증하고 즉각 실행으로 옮기는 속도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화장품 개발주기가 짧기로 유명하다. 외국 브랜드의 경우 평균 1년가량 걸리는 반면 우리나라는 3개월 정도다. 특히 패션이나 메이크업 분야는 유행주기가 짧은 만큼 개발기간이 길어지면 트렌드에 대응하기가 어렵다. K뷰티의 인기요인으로 ‘트렌디함’이 떠오르는 것은 속도력의 역할이 크다.
세 번째는 대응력이다. 불과 5~10년 사이 미디어·유통환경은 크게 바뀌었다. 대응력은 이러한 환경 변화에 최적화된 대응방안을 신속하게 마련하는 역량을 일컫는다. 화장품 브랜드사들은 플랫폼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가령 짧은 영상 중심인 틱톡에서는 전후 비교나 독특한 제형·패키지로 시각적 놀라움을 주는 게 유용하다. 또한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타 SNS에서는 구독자가 소중하지만 틱톡에선 공유·댓글과 같은 ‘참여도(engagement)’가 알고리즘에 중요하다는 점도 고려했다. 이에 따라 구독자가 많은 메가 인플루언서를 공략하는 대신 작지만 여러 인플루언서에게 무료로 체험제품을 제공하는 ‘시딩’을 진행하는 게 한 예다.
네 번째는 상품력이다. 한국 화장품은 ‘가성비’로 유명하다. ‘적정한 성능 대비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는 의미의 가성비가 아니라 ‘적정한 가격 대비 성능이 매우 뛰어나다’는 뜻의 가성비다. 국내 화장품의 상품력에는 제조사만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가 얽혀 있다.
로레알그룹과 같은 유명 글로벌 브랜드의 생산도 맡은 국내 제조자개발생산(ODM)사의 제조 역량, 더불어 끊임없이 혁신성분을 개발하는 기업, 품질에서 타협하지 않는 브랜드사, 미용의 학술적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는 학회들까지 이바지하고 있다.
다섯 번째는 덕후력이다. 오래전부터 화장품 ‘덕후’로서 기업들에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한 국내 소비자의 힘을 의미한다. 앞서 기획력·속도력·상품력이 가능했던 것도 모두 소비자의 영향이 크다. 일명 ‘코덕(코스메틱 덕후)’으로 불리는 수많은 소비자가 화장품에 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기획의 밑바탕이 됐고,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속도력이 발전했다. 또한 일찍이 화장품 성분 분석 서비스인 ‘화해(화장품을 해석하다)’와 같은 플랫폼이 생겼을 만큼 소비자들이 유해성분을 허용하지 않았기에 국내 화장품은 전 세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안전한 성분을 갖게 됐다.
마지막은 주도력이다. 이러한 K뷰티의 힘을 실제 플레이어로서 발휘한 것은 산업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실무자다. 아무리 여건이 잘 갖춰졌더라도 조직문화가 장애가 된다면 기업은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도력이란 조직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말한다. 화장품 업계의 인디브랜드는 물론 ODM사, 대기업 유통사인 올리브영까지 공통점은 구성원들이 주도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조직 구성원의 주도력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첫 번째로 구성원들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이 일은 내 책임이다’고 생각하는 ‘직원 오너십’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올리브영은 20대 MD가 자신이 맡은 카테고리의 경우 막강한 권한을 갖고 의사결정을 한다. 대신 올리브영은 사입구조여서 기획한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MD가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 물론 압박만 큰 구조여선 안 된다. 구성원들이 각자 맡은 제품에 한해선 전 세계에서 최고 전문가라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성장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실패했을 때는 낙인찍는 게 아니라 실패에서 무엇을 학습했는지를 공유하도록 독려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선 자율성이 성공의 핵심이다.
K뷰티의 역사를 돌아보면 생각보다 굴곡이 많았다. 대표적 사례로 한류 열풍이 불어 국내 화장품 브랜드들이 승승장구하던 시절, 사드(THAAD) 사태를 맞이하며 중국 수출길이 막힌 일이 있다. 이러한 굴곡은 되레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화장품 기업들은 중국이 아닌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렸고 생존을 위해 ‘어떻게 해야 아마존을 공략할 수 있을지’와 같은 고민과 시도를 반복한 끝에 지금과 같은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이를 ‘위장된 축복’이라고 한다. 불운해 보이지만 실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상황을 이른다. 모든 위기가 그렇다. 위기는 곧 기회이고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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