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환경 인식해 현위치 파악…스스로 갈 길 찾는다

입력 2025. 09. 09   16:49
업데이트 2025. 09. 0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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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과 AI, 전장의 공식이 바뀐다
GPS 없이도 자율항법 구현하는 드론 비행 기술

동시적 위치 추정·지도 작성 ‘슬램 기술’
이스라엘 ‘헤르메스 드론’ 대표적 사례
지형지물 없는 사막·바다에선 부정확
A I 활용 등 GPS 대체기술 앞다퉈 개발
가짜 정보로 ‘드론 속이기’ 시도도 등 장
검증 보안기술·극한 환경 극복 등 과제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일이다. 러시아군이 강력한 전자전 장비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신호를 교란하자 수십 대의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갑자기 방향감각을 잃었다. 일부는 추락했고, 일부는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와중에도 몇 대의 드론이 GPS 신호가 완전히 차단된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목표지점에 도달해 임무를 완수했다. 이들 드론에는 특별한 기술이 탑재돼 있었다. 바로 GPS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자율항법 기술’이었다.

무인기 자율화 기술 운용개념. 국방과학연구소·필자 제공
무인기 자율화 기술 운용개념. 국방과학연구소·필자 제공



현대전에서 GPS는 드론의 생명줄과 같지만, 적국이 GPS 신호를 방해하거나 조작하면 수십억 원짜리 첨단 드론도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이란은 2011년 미군 RQ-170 스텔스 드론을 GPS 스푸핑 공격으로 납치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대규모 GPS 재밍(통신교란)을 일상적으로 사용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GPS에 의존하지 않는 자율항법 기술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가장 주목받는 기술은 슬램(SLAM·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이다. 이는 ‘동시적 위치 추정 및 지도 작성’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드론이 주변 환경을 스스로 파악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위치를 알아내는 기술이다. 마치 처음 가는 미로에서 벽을 더듬어 가며 길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드론은 훨씬 정교하게 이를 수행한다.

이스라엘의 엘빗시스템스가 개발한 헤르메스 드론 시리즈가 대표적 사례다. 이들 드론은 고해상도 카메라와 레이다로 주변 지형의 특징을 실시간 분석한다. 건물 모양, 도로 패턴, 산 능선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고 비교해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다. GPS 신호가 완전히 차단된 상황에서도 오차 3m 이내의 정확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의 스카이디오는 민간 분야에서 SLAM 기술혁신을 이끌고 있다. 이 회사의 드론은 6개의 카메라로 360도 시야를 확보하고,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3차원 지도를 생성한다. 나무 사이를 비행하는 드론이 GPS 없이도 장애물을 피하며 목적지에 도달하는 모습은 마치 공상과학(SF) 영화를 보는 듯하다. 스카이디오의 기술은 이미 미군에서도 채택돼 실전에 활용 중이다.

SLAM 기술에도 한계는 있다. 특징이 없는 사막이나 바다에서는 참조할 만한 지형지물이 부족해 정확도가 떨어진다. 또한 안개나 비 같은 악천후에선 카메라나 레이다 성능이 제한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등장한 것이 지형 참조 항법시스템(TERCOM·Terrain Contour Matching)이다.

TERCOM은 미사일에서 출발한 기술이다. 미군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수천 ㎞를 날아가며 정확하게 목표를 타격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기술 덕분이다. 드론에 탑재된 고도계가 실시간으로 지형의 높낮이를 측정하고, 이를 미리 저장된 지형 데이터와 비교해 현재 위치를 파악한다. 마치 지문을 대조하듯이 지형의 ‘지문’을 읽어 내는 것이다.

실제 전장에서 이런 기술들의 효과는 이미 입증되고 있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에서 아제르바이잔군이 사용한 이스라엘제 하롭 드론은 강력한 전자전 환경에서도 목표를 정확히 타격했다. 이들 드론은 GPS 의존도를 최소화하고 다양한 센서를 활용한 복합 항법시스템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AI가 이런 기술들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구글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고리즘은 단 몇 장의 사진만으로도 복잡한 3차원 공간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이 드론에 적용되면 GPS 없이도 인간보다 더 정확한 공간 인식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중국의 DJI도 자사의 상업용 드론에 GPS 대체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DJI의 최신 드론은 비전 포지셔닝 시스템(VPS·Vision Positioning System)으로 실내나 GPS 신호가 약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비행이 가능하다. 라이다와 같은 센서로 바닥 패턴을 인식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이 기술은 이미 수많은 드론에 탑재돼 그 신뢰성이 입증됐다.

미군도 차세대 무인이동체 개발에서 GPS 대체기술을 핵심 요구사항으로 설정하고 있다. 미 국방부의 합동인공지능센터(JAIC)는 “미래 전장에선 GPS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가정해야 한다”며 자율항법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록히드마틴, 노스롭그루먼 등 주요 방산업체들이 관련 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한국도 이 분야에서 뒤처지지 않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은 독자적인 항법시스템을 개발해 왔으며 LIG넥스원, 한화 같은 방산업체들은 GPS 거부환경에서도 작동하는 군용 드론 기술을 보유 중이다. 특히 한반도의 복잡한 산악지형은 지형 참조 항법 기술 개발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이런 기술 발전은 민간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자율주행차, 로봇청소기, 심지어 스마트폰의 증강현실(AR) 기능까지 모두 이런 공간 인식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아마존의 창고 로봇들이 GPS 없이도 정확하게 물건을 옮기고, 테슬라의 자율주행차가 도심에서 길을 찾아가는 것도 전부 이런 기술의 응용이다.

이들 기술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AI를 속이는 ‘적대적 공격’ 기법이 발달하면서 가짜 지형정보나 조작된 영상으로 드론을 속이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어서다. 이에 대응하고자 다중센서 융합과 블록체인 기반 데이터 검증 같은 새로운 보안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또한 극한 환경에서의 성능 향상도 지속적인 과제다. 북극의 백야나 사막의 모래폭풍, 도심의 전자기 간섭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항법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이런 기술들이 완성되면 드론은 지구상 어떤 환경에서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게 될 것이다.

GPS 없는 자율항법 기술은 단순히 드론이 길을 찾는 게 아니다. 이는 미래 전장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핵심 기술인 동시에 우리 일상생활을 더 편리하게 만들어 줄 기술혁신이기도 하다. 위성 신호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지능형 드론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는 시대가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사람보다 정밀하게, 바람보다 정확하게. AI는 이제 조종사의 손을 대신한다. 다음 회에선 인간을 뛰어넘는 드론 조종 기술의 진화를 살펴본다.

 

필자 김형석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교수는 예비역 육군대령으로, 광운대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대드론산업협회 드론센터장을 맡고 있다.
필자 김형석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교수는 예비역 육군대령으로, 광운대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대드론산업협회 드론센터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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