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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현대화 논의 동향과 시사점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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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개최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이어 워싱턴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초청 연설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동맹을 안보 환경 변화에 발맞춰 현대화해 나가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특히 “한반도 안보를 지키는 데 있어 한국이 더욱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한미동맹 현대화의 일차적 목표가 ‘한국 방위의 한국화(Koreanization of the Korean Defense)’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냉전기 닉슨 독트린은 그 원형적 접근법이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으로부터 미국 지상군을 철수시키는 동시에 남베트남의 국방력을 강화하는 ‘베트남전의 베트남화(Vietnamization of the Vietnam War)’를 추진했다. 또한 한국을 닉슨 독트린 적용의 적합한 사례로 간주하면서 ‘한국 방위의 한국화’에 착수했다. 즉, 주한미군의 감축과 한국 국방력 증대를 연계 추진함으로써 한반도 안보의 일차적 책임을 한국이 담당하도록 구상한 것이다.
탈냉전기 도래를 배경으로 미 의회가 제출한 1989년 넌-워너(Nunn-Warner) 수정안 역시 한국 방위에서 주한미군의 역할 축소 필요성을 강조했다. 동 법안에 따라 미 국방조직은 아시아 주둔 미군의 단계적 감축안에 대한 청사진을 의회에 제출했다. 동아시아전략구상(EASI)으로 명명된 이 보고서는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과 함께 궁극적으로는 한미연합사령부 해체를 통한 동맹 지휘구조 변화를 통해 한국 방위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과 미국의 보조적 역할을 확정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국의 주도적인 방어 역량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통한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는 지난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방비 증액 계획을 공식화했다. 국가안보실은 이 대통령이 트럼프 미 대통령을 상대로 국방비 증액을 먼저 적극적으로 거론했다고 밝혔으며, 이를 동맹 현대화를 위한 우리 정부의 접근법으로 규정했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능력을 구축하는 동시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역량을 확보하면서 연합방위체제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국방비 증액 목표치를 둘러싼 쟁점이 제기될 가능성을 고려한 정책 추진도 요구된다. 미국은 동맹국의 국방비 인상을 압박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5%’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러한 압력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안보 우려 고조에 따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은 2035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5% 수준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이와 연계해 유럽연합(EU) 차원에서는 회원국의 대대적인 국방예산 증액이 가능하도록 기존 재정 준칙 적용의 예외조항 발동을 승인했다.
나토 방식에 따라 군 관련 기반 시설 비용과 연구개발 비용 등을 간접 국방비로 책정하고 국방중기계획을 일부 조정하는 방식으로 국방비 증액을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유럽 동맹국의 선례를 기준으로 한국의 국방비 증액을 요구할 경우 부담이 커질 것이다. GDP 대비 5%라는 수치는 우리의 재정 여건상 감당하기 어려우며, 자칫 국내적 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반적 상황을 고려한 대미 소통이 요구될 것이다.
한국 방위의 한국화가 주한미군 태세 조정과 연계될 가능성도 주목되는 점이다. 전략경쟁의 관점에서 주한미군을 포함한 역내 주둔 미군의 태세를 중국 위협 억제에 최적화된 방향으로 재구축해야 한다는 논리가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미국이 이차적 위협으로 규정한 북한 억제 차원에서 한국에 대규모 미군을 주둔시키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따라서 한국이 북한의 재래식 위협 대응을 주도하는 대신 미국은 확장억제 제공에 주력하면서 중국 위협 대응에 최적화된 방향으로 주한미군을 감축 및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따른 미국의 군사력 운용 역시 한미동맹 현대화의 핵심 쟁점이다. 이 개념의 원형적 사고는 9·11 테러의 충격을 배경으로 2004년 공표된 ‘글로벌 방위태세 검토(GDPR)’다. 글로벌 차원에서 유연하고 집중된 방식으로 군사력을 운용하기 위해 미 본토를 중심으로 순환 배치를 추진하는 동시에 해외 주둔 미군을 작전적 차원에서 탄력적으로 운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군사력 운용의 접근법은 트럼프 집권 1기 시기 미국의 국방전략을 통해 재부상했다. 2018 국방전략서(NDS)의 ‘역동적 군사력 운용(DEF)’ 개념이 그 내용이다. 미 국방조직은 전략적 경쟁자들을 억제·격퇴하기 위해 “전략적으로는 예측이 가능하되, 작전적으로는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미 군사력을 역동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4 GDPR에 따라 아·태 지역 주둔 미 군사력 태세에도 변화가 초래됐다. 특히 3만7500명 수준의 주한미군 병력을 2008년 말까지 1만2500명 감축했다. 그 과정에서 제2사단 예하 3600여 명의 병력이 2005년 8월부로 이라크로 파병됐다. 버웰 벨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필요할 경우 주한미군 병력 일부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 해외 전쟁지역에 일시 차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을 거점 지역을 넘어선 역외 작전에도 운용할 수 있다는 ‘전략적 유연성’을 시사한 것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미·중 전략경쟁 맥락에서 재해석되고 있다. 대만해협 유사시 한국 내 미군기지를 거점으로 주한미군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특히 최근 미국 국방정책 커뮤니티 내에서는 주한미군의 대만 유사시 개입이 반드시 보장돼야 하며, 한국과의 합의 도출이 어려우면 주한미군의 역내 재배치를 통해 한반도 주둔 규모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우리 안보 관점에서 명확한 입장을 정하고, 미국을 상대로 필요한 설득과 대안적 접근법을 제시하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미의 동맹 현대화 협의에 따라 한국 방위의 한국화와 주한미군의 태세 조정 관련 논의가 가시화되면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에도 우호적 환경이 형성됐다. 현재 한미는 조건에 기반한 전작권 전환의 로드맵을 견지하면서 한미연합사 체제를 미래연합사 체제로 변화시키고 있다.
한미동맹의 지휘구조를 점진적·안정적 과정을 거쳐 한국이 주도하는 연합방위체제로 변화시키겠다는 양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환 이후의 한미동맹과 관련한 주요 쟁점들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대응책을 수립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한국 안보를 보장하고 국민적 지지를 담보하는 방안 마련도 요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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