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장교이지만 최근 육군 군종병과의 교리문헌인 ‘전장윤리’ 발간 심의위원으로 선정돼 군종업무에 관해 세심히 검토하고 보완사항을 제시한 경험이 있다. 또 지난 3월 ‘자유의 방패(FS)’ 연습기간에 육군항공사령부 자체적으로 항공작전 중 전시 군종활동과 관련해 전투참모단 토의를 한 적이 있다. 5월 2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개최된 주한미군 항공병과 연례행사인 ‘Army Aviation Ball’에 참석했을 때도 몇 가지 인사이트를 얻었다.
주한미군의 ‘Army Aviation Ball’은 미 2전투항공여단장이 주관해 소속 부대 군인가족에게 부대를 소개하고, 부대원 간 친목·단합을 다지는 행사다. 한국군 육군 항공병과 장교로서 부부 동반으로 이 행사에 참석했다. 행사에 앞서 부대기와 국기가 입장했다. 미 육군 항공기, 태극기, 성조기가 순서대로 들어와 행사 무대 중심에 위치하자 미 2전투항공여단 군종실장의 기도로 공식 행사가 시작됐다.
참석자 소개, 축하연설, 공연, 경품 추첨 등이 이어졌다. 미 2전투항공여단 예하 대대의 군종장교가 마무리 기도를 하고 행사 때 입장했던 깃발이 역순으로 빠져나가며 행사가 종료됐다. 깃발의 입장과 퇴출 시 사열했던 장교는 좌측부터 미 2전투항공여단 군종실장, 여단장, 미 항공병과 선임장교였다. 이들 3명은 계급과 직책은 다르지만 같은 위상으로 예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미국의 특수성에 기인한 문화·종교적 요인이지만 군종병과의 위상이 높고, 업무의 중요성을 모두가 느끼고 있음을 알게 해 주는 대목이었다.
또 하나의 예로 몇 해 전 미 항공대대가 남한강 강천섬 일대에서 전개한 훈련을 참관한 적이 있다. 각종 장비와 시설을 살펴봤는데, 남한강 물을 현지에서 직접 정수해 자체 취사와 샤워를 할 수 있게 했다. 방호차량의 위성장비·원격조종기관포·지상감시레이다와 연동되는 무장체계도 우수했다.
이목을 끄는 것은 야전 교회 텐트 옆에 빈 텐트가 하나 더 있었는데, 훈련에 참가한 미군은 모든 장비와 텐트를 통틀어 이곳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 빈 텐트가 왜 중요하냐고 의아해하자 미군은 이렇게 답했다. 실제 전장에서 죽음을 앞둔 전우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죽기 싫다고 소리 지르며 들것에 실려 오는데, 이곳에서 군종장교의 축복기도를 받으며 죽음을 받아들이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군인으로서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고 명예롭게 죽음을 기다리는 공간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사뭇 숙연해지면서 왜 가장 중요한 곳인지 납득이 됐다. 죽음을 앞둔 군인에게는 어쩌면 지휘관만큼이나 군종장교가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죽음을 앞둔 전우에게 누가 마지막 축복과 안정을 기원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최소한 대대급 단위로 이러한 전시 시설물과 기원체계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군은 전·평시 군종업무의 위상과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위상에 맞게 군종장교들을 예우하고 발전된 시스템을 운용 중이었다. 우리 국군도 군종장교들의 위상을 높여 나가야 한다. 그들이 사명감에 불타 열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 언제나 전우들 곁에서 함께하는 군종활동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강인한 신앙전력과 사생관은 모든 군인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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