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예술 - 그림 속 사계 구스타브 카유보트 ‘파리 거리, 비오는 날’
보슬비가 수놓인 거리…
화폭에 내려앉은 빗물…
화단의 눈총받던 르누아르·드가 등 작품 대거 사들여
모네 재정 후원 등 인상파 든든한 후원자·컬렉터로 명성
파리 프로젝트 마친 7년 후 재정비된 도시 풍경 담아
유족 소장하다 시카고미술관 구매…예술가로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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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날 부릴 수 있는 사치 중 하나는 실내에 앉아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일이다. 하늘이 잔뜩 흐린 우중충한 날씨에 비 오는 풍경 그림을 보는 것은 어떨까?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파리 거리, 비 오는 날(Paris Street, Rainy Day·1877)’은 장마철에 누릴 수 있는 작은 호사다. 이 작품은 가로 2.7m, 세로 2.1m가 넘는 큰 캔버스에 비 오는 한낮의 거리를 그렸다. 실물 크기로 그려진 우산을 함께 쓴 남녀는 마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와 관람객과 부닥칠 것 같은 생생함을 준다.
그림에는 보슬비가 촉촉하게 내려 화면 전체에 습기를 머금고 있다. 넓게 깔린 자갈 바닥에는 빗물이 고여 있고, 파리풍의 건물이 길을 따라 멀어져가는 대로 뒤편에 물러나 있다. 교차로에는 우산을 쓰고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 각자 제 길로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남녀는 왼쪽으로 고개와 시선을 돌리며 앞으로 걸어오고 있다. 콧수염을 기른 남성은 실크 모자, 나비넥타이, 단추가 달린 조끼를 입고 그 위에 깃을 세운 긴 코트를 걸쳤다. 여성은 갈색 코트를 입고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착용했으며, 얇은 베일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다.
19세기 말 근대 도시 파리 부르주아들의 전형적인 패션이다. 그림 속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서로 대화하거나 인사를 하는 일 없이 그들은 발길을 서두르며 자신의 목적지를 향하거나 생각에 잠겨 있다. 같은 색과 모양을 갖춘 대여섯 개의 우산은 비와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혹은 스스로 고립하는 보호막처럼 보인다.
이 작품의 배경은 파리 북부 생라자르 기차역 부근이다. 실제로 카유보트는 오랜 기간 이 교차로 부근에 살았고, 인상주의 화가들이 모였던 카페로 가기 위해 매일 이곳을 지나갔다. 1850년대만 해도 파리는 중세도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당시엔 좁고 복잡한 수많은 갈래 길이 파리 전역에 펼쳐져 있었고, 상하수도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전염병이 자주 창궐했다.
오스만 남작이 프랑스 시장으로 임명되면서 1853년부터 1870년까지 대대적인 파리 건설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무엇보다 파리의 시위 군중이 비좁은 골목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파리의 도로는 넓게, 직선으로 뻗어나갔다.
‘파리 거리, 비오는 날’은 파리 프로젝트가 끝난 7년 후의 풍경을 그린다. 커플이 거니는 좁은 도로는 옛 도시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반면 커플 옆으로 펼쳐진 넓은 방사형 자갈 도로, 도시 미관을 위해 석제 파사드와 슬레이트 지붕으로 규격화된 6층 건물은 새로운 파리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의 중앙 끝에 희미하게 보이는 비계는 파리가 아직도 공사 중임을 알려 준다.
당시 파리를 휩쓸었던 인상주의 작가들이 그러하듯 카유보트 역시 빠르게 변모하는 근대 도시를 그렸다. 그는 주로 파리 풍경, 세련된 부르주아의 여가 생활, 가정에 머무는 인물을 그렸다. 카유보트가 그림 대상으로 삼은 것은 파리의 근대 생활이었다. 하지만 그림의 주제만 인상주의자들과 공유했을 뿐 그림 기법과 미학은 인상주의와 크게 달랐다. 인상주의는 눈의 망막에 비친 순간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했다. 반면 카유보트의 그림은 고전적인 원근법을 사용해 화면 속 중간의 한 점을 중심으로 건물과 도로가 펼쳐진다. 형태가 뚜렷한 그림 속 인물들은 견고하게 모델링돼 있다. 자갈 바닥과 뒤편 건물은 단단하게 중력을 버티고 있다. 이 때문에 한 평론가는 카유보트에 대해 “그는 이름만 인상주의일 뿐이다. 그는 동료들보다 더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칠하는 법을 안다”고 남겼다.
인상주의 미학에는 비껴가지만 카유보트는 ‘파리 거리, 비오는 날’을 1877년 세 번째 인상주의 전시에 출품해 큰 호평을 받았다. 부유한 집안 출신인 카유보트는 상속받은 유산 덕분에 생계 걱정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는 꾸준히 작품을 그렸지만, 인상주의 화가보다는 인상주의 작가들의 후원자 혹은 컬렉터로서 더 유명했다. 카유보트는 당시 보수적인 화단에서 조롱과 비난을 받았던 인상주의 작가인 모네, 피사로, 르누아르, 드가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사들였다. 더군다나 모네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면서 모네가 예술 경력을 이어 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카유보트는 그림뿐만 아니라 요트를 제작하거나 우표를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했다. 카유보트가 소장한 작품이 훗날 인상주의 성지로 불리는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으로 이관되면서 화가로서 경력보다 프랑스 근대 미술에 끼친 후원자 역할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20세기까지 유족이 소장하고 있던 ‘파리 거리, 비오는 날’은 1964년 시카고미술관이 구매하면서 미국으로 건너간다. 이 시기부터 카유보트는 컬렉터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학자들에게 인정받게 되고, 그의 작품은 1980년대에는 방송과 영화에 노출되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2024년 오르세미술관에서는 카유보트의 작품을 되돌아보는 전시가 열렸다. 이 전시에서는 카유보트가 집중적으로 그렸던 남성 모습에 주목했다. 19세기 그림 속 주인공은 대부분 여성이었기에 카유보트의 이색적인 행보에 주목하며 작품을 분석했다.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그림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발굴된다. 비 오는 여름날을 그린 작품 ‘파리 거리, 비오는 날’에 또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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