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다시 빛날 기억들
세계 속 독립운동 거점 ③ 멕시코·쿠바
1905년 ‘에네켄’ 농장 일꾼으로 이민
대한인국민회 메리다 지방회 설립 뒤
안창호 순행 지원·독립운동 자금 제공
1921년 멕시코서 쿠바로 이주한 한인
광복군 후원금 모집·민족교육에 힘써
대한 독립을 위한 노력은 세계 곳곳에서 전개됐다.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 지역에서도 치열하게 이뤄져 미국뿐만 아니라 인근 멕시코와 쿠바 등에서도 활발히 진행됐다. 특히 멕시코와 쿠바는 한인 이민자가 대거 거주한 나라다. 한인들은 이곳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관련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쳤는데, 그 흔적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서현우 기자/사진·도움말=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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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대한인국민회 메리다 지방회관(64깔레)
1909년 5월 9일 유카탄 에네켄 농장에서 노동에 종사했던 한인을 중심으로 대한인국민회 메리다 지방회가 설립됐다. 이곳은 메리다 지방회가 최초로 사용한 회관 건물이다. 한인들이 모이는 장소로, 각 농장에서 온 한인 70~80명이 서로 고생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달랬고 교인들은 예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다 지방회관은 30평(약 99㎡) 정도의 건물로, 1910년 전후에 지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건물은 지난해 기준 숙박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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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유카탄 데모손 농장
1905년 유카탄으로 이민 온 한인들은 각지의 에네켄 농장에 배치됐다. 에네켄은 날카로운 잎을 가진 선인장의 일종이다. 데모손 농장도 그중 하나였다. 메리다 지방회는 1915년 3월 각 구역 대표를 선임하면서 데모손 농장 구역의 대표로 이종오를 내세웠다. 데모손 농장은 메리다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약 45분 거리에 있다. 이 농장은 17세기에 만들어졌고, 현재도 에네켄 농장 당시의 풍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건물은 데모손호텔로 리모델링됐다.
멕시코 멕시코시티 돌로레스 공동묘지
돌로레스 공동묘지는 1875년 개장했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 있는 가장 큰 묘지로, 약 70만 명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인 중에는 멕시코 한인사회의 주요 지도자였던 김익주가 안장돼 있다. 김익주는 1905년 계약노동자로 멕시코에 이민해 농장에서 일했다. 1922년 대한인국민회 탐피코 지방회장을 맡았고, 수차례에 걸쳐 대한인국민회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했다. 3·1운동 기념행사, 순국선열기념식 등 행사를 주도했다. 1927년부터 멕시코시티에서 한인사회 주요 지도자로 활동하며 멕시코에 사는 동포들의 독립의식 고취에 앞장섰다. 1932년에는 안창호가 상하이에서 붙잡히자 자금을 보내며 흥사단을 지원했다.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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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탑
2005년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메리다시(市)에 세워졌다. 재외동포재단이 공사비를 지원했고,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와 현지 한국인의 기부금을 받아 건축됐다. 메리다시에선 2019년부터 5월 4일을 ‘한국 이민자의 날’로 제정하고, 2021년에는 멕시코 연방정부에서 지정했다. 기념탑 맨 위에는 에네켄 잎을 상징하는 철제 구조물이 있다. 기단부에는 스페인어로 1905년 한인의 멕시코 이민에 관한 내용을 기재한 동판을 부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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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과달라하라 안창호 숙소
도산 안창호는 멕시코 한인들의 초빙으로 1917년 10월부터 1918년 8월까지 멕시코 전역을 순행했다. 순행을 마친 안창호는 미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허가를 받기 위해 멕시코시티에 머문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미국총영사관을 방문했지만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됐으니 일본영사의 여행권을 가져오라”는 말을 들었다. 안창호는 대한제국이 망하기 전 나라를 떠났기에 일본 국민이 아니고 대한제국의 신민임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다시 미국 입국허가를 얻기 위해 멕시코 제2의 도시 과달라하라에 왔고, 프란세스호텔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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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메리다 이종오 거주지
이종오는 1905년 멕시코로 이주했다. 1909년 5월 대한인국민회 메리다 지방회가 설립되자 적극 참여해 1940년대까지 한인 주요 지도자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1910년 차크툰 농장에 숭무학교가 만들어졌을 땐 교수로 활동했고, 1912년에는 메리다 지방회장에 선출됐다. 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위해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이종오의 후손도 교민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이종오의 거주지는 1926년께부터 메리다 시내에 살며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개인 주택으로 쓰이는데, 당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쿠바 한인 이민 80주년 기념탑
쿠바 마나티 항구에 있는 사적이다. 멕시코에 있던 한인들이 쿠바 이민국에서 절차를 마치고 1921년 3월 25일 처음 입항했던 곳이 마나티 항구다. 현재 폐쇄됐지만 쿠바의 설탕산업이 번성했을 때는 쿠바 제1의 항구이기도 했다. 마나티 지역에 거주하던 한인 30여 명은 1921년 9월 21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지방회 설립을 청원해 허가받았다. 마나티 지방회 초대회장은 양춘경이었다. 후손들은 선조들이 첫발을 내디딘 마나티 항구에 2001년 3월 25일 한국과 쿠바를 상징하는 한인 이민 80주년 기념탑을 세웠다. 기념탑에는 “멕시코에서 300여 명의 한인 동포가 기선 ‘따마을리빠스’ 편으로 쿠바에 이민 왔습니다. 그 후예들은 쿠바 각지에 흩어져 잘 적응해 살고 있으며, 조상의 얼을 기리고 그 뿌리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기념탑을 세웁니다”라고 적혀 있다.
쿠바 마탄사스 산카를로스 묘지
1921년 쿠바로 이민 온 한인 및 독립운동가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1872년 개장했고, 초기 이민자들이 다수 안장돼 있다. 대표적으로 임천택, 이세창·이채희의 가족묘, 호근덕의 가족묘 등이 있다. 그중 임천택은 2004년 국내로 유해가 봉환됐다. 임천택은 한인단체 활동을 주도하며 민족교육에 힘썼다. 광복군 후원금을 모집하고 국내 활동 지식인들과 교류해 민족의식 확산에 이바지했다.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쿠바 대한인국민회 아바나 지방회관
대한인국민회 아바나 지방회는 1937년 1월 서병학 주도로 설립됐다. 서병학은 한인들의 정체성과 민족의식 함양에 노력했다. 대한인국민회와 광복군 후원금 등 독립운동 자금도 지원했다. 202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아바나 지방회는 외국인 활동이 제한된 가운데 정치·경제·사회활동이 원활하지 못해 여러 곳으로 옮겨 다녔다. 아바나 지방회는 아울러 흥민국어학교를 설립해 한인 어린이들을 교육했다. 어린이들은 낮엔 쿠바의 공립학교를, 저녁에는 국어학교를 다녔다.
쿠바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 지방회관
1921년 3월 쿠바에 도착한 한인들은 마탄사스로 이동했다. 같은 해 6월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 지방회를 설립하고, 11월에는 마탄사스 주정부에 인허서류를 제출했다. 초기 마탄사스 지방회는 지방회의 역할을 하면서 사무를 보던 곳이었다. 1926년 시내에서 약 4㎞ 떨어진 엘볼로 농장의 한인마을로 옮겨졌고, 예배당과 국어학교 등 한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43년 10월 지방회관은 다시 시내로 옮겨졌다. 당시 나무로 지어졌던 집은 허물어졌고, 새 건물이 세워졌다.
쿠바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 지방회관
1921년 쿠바에 온 한인들은 마탄사스의 에네켄 농장에 자리 잡았다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카르데나스로 이주했다. 정착한 이후 1923년 4월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 지방회를 조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회에선 후손들의 교육을 위해 국어학교인 진성학교도 운영했다. 지방회관 건물은 헐렸고 새 건물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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