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하늘이 노랗게 익기 시작하면
나를 부르는 목소리들이 하나둘씩 일어난다
왼편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어디에서 오는가
오른뺨을 돌려 그를 맞이하면
내게로 걸어오던 목소리들은 바람이 되어
먼 길 떠났다가 돌아온 아들 반기듯
이별의 다리 되돌아온 연인의 손길처럼
탯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으로
내 온몸을 훑고 핥으며 맞이한다
그중 하나 더 노랗게 익어 내 가슴에 파고들면
이내 지구의 가장 깊숙한 불덩이가 되어
고요한 열정으로 진동하기 시작한다
나는 온통 꺼지지도 지치지도 않는 불씨가 되어
나를 부르던 목소리들을 물들이고
오랜 세월 기다려온 너를 만나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며 우리의 시간을 헤쳐간다
<시 감상>
이 시의 화자 ‘나’를 독자 입장에서 ‘그(그녀)’로 바꿔 읽으면 ‘그(그녀)’의 ‘퇴근길’에 여러 감각적 이미지가 겹치고 포개져 아름다운 배경을 이루고 한 인물이 그 속을 걸어가는 선명한 동영상이 떠오르는 듯하다. 우리들의 늘 엇비슷한 평범한 일상의 체험적 사실과 그것을 배경으로 한 느낌을 시각·청각·촉각의 언어로 건드려 깨워 얼개로 엮으면 이렇게 담백한 시 한 편이 되고, 그 시의 행간에는 따뜻한 사랑과 설렘의 서정이 채워진다.
“하늘이 노랗게 익기 시작”하는 ‘그(그녀)’의 ‘퇴근길’은 지치고 힘든 일상만은 아닐 듯하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들은 ‘그(그녀)’를 속박하는 고정물이 아니라 ‘그(그녀)’에게 삶의 의미를 일으키며 “온몸을 훑고 핥으며 맞이”하는 존재다. 그리하여 ‘그(그녀)’는 “이내 지구의 가장 깊숙한 불덩이가 되어/고요한 열정”과 “꺼지지도 지치지도 않는 불씨가 되어” 그 “목소리들을 물들이고” 반복적인 우리 일상의 삶과 “시간을 헤쳐”가게 한다.
시인은 우리의 일상에 숨어 있는 삶의 시향을 불러내 소중한 가치를 감각적인 이미지로 보여 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상의 삶이란 굳이 시의 언술로 짠 옷을 입히지 않아도 그 자체로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시인은 우리의 일상에 배어 있는 삶의 이미지를 시의 언술로 그려 깊은 울림으로 재생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서정이 흐르는 우리의 퇴근길을 위하여.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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