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할아버지 김일성도 극동 소련군서 훈련받았다

입력 2024. 10. 25   15:28
업데이트 2024. 10. 2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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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국제정치학 박사
박승준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국제정치학 박사



‘1945년 가을 9월 어느 날,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한 그룹의 군인이 소련 군복을 입고 소련군이 점령한 원산항에서 소련 기선 푸가체프호에서 내렸다. 그 가운데 소련 육군 대위 계급장을 단 30대 초반의 남자가 있었다. 그는 동료들 사이에서 소련군 88독립보병여단 제1조선인 대대의 지휘관 김일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안드레이 란코프(61) 국민대학교 교양학부 교수가 2013년 뉴욕에서 출간한 『진짜 북한(The Real North Korea)』 첫 머리에 나오는 기록이다. 란코프 교수는 러시아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 1984~1985년 평양 김일성대학교에 유학했다. 1989~1992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동양학부에서 한국어와 한국사를 가르치다가 2004년부터 국민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란코프 교수에 따르면 1945년 일본이 패전한 뒤 8월 말 한반도 북부를 장악한 소련군은 한반도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소련군에는 한국어를 구사하는 통역관이 없었다. 한반도에서 일본군과의 전투를 대비하고 왔기 때문에 모든 통역관이 일본어 구사자였다. 8월 말에야 한반도 출신 한국어 통역관들이 북한에 도착했는데 김일성은 그중 한 명이었다. 김일성은 1930년대 중국 동북의 홍군 소속 빨치산이었고, 1940년대 초에는 소련 육군 88독립보병여단(88th Separate Rifle Brigade) 대대 지휘관이었다. 평양 출신인 김일성은 나중에 북한 최고 정치권력자로 떠오른다.

88독립보병여단은 소비에트연방 극동전선군 소속 부대다. 1930년대 만주에서 활동하다가 일본군 토벌에 쫓겨 소련으로 망명한 동북항일연군 잔존세력을 수용하기 위해 1942년 7월 창설됐다. 1940년부터 1941년 초까지 소련으로 망명한 중국 홍군 빨치산은 우수리스크 근처와 하바롭스크 동북쪽 70㎞가량 떨어진 아무르강변 뱌츠코예 마을 두 곳에 분산 수용됐다. 김일성은 1940년 10월 23일 국경을 넘어 소련으로 들어갔다가 체포됐다. 중국인 빨치산 상관 저우바오중(1902~1964)의 신원보증으로 풀려나 소련군에 들어갔다. 저우바오중의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에는 김일성이 소련군이 한반도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일 상황에 대비해 낙하산 훈련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문화정보부 전략커뮤니케이션센터는 지난 19일 “북한군이 러시아 극동지방의 세르키예프스키 훈련장에서 군수물자를 보급받으며 우크라이나 파병을 준비 중”이라며 독점입수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동영상에는 북한 군인들이 줄을 서서 전투장비와 복장을 배급받는 장면이 촬영됐다. 이 북한 군인들이 구사한 “야, 가져가라” “나오라” 등 북한말투도 녹음됐다.

이들의 모습에서 80여 년 전 소련군에서 훈련받던 김일성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동시에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러시아군으로부터 군복을 보급받는 북한 군인들이 들고 있는 체크리스트에 제일 작은 군복이 ‘키 162~168㎝’로 적혀 있는 걸 보니 더욱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북한과 중국 국경지대 압록강에서 본 북한 군인들의 키는 162㎝는커녕 150㎝도 채 안 돼 보이는 병사가 대부분이었다.

우크라이나 파병을 앞두고 북한 군인의 몸에는 너무나 큰 러시아군 군복을 헐렁하게 입고 난감해할 북한 병사들의 표정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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