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한 방울, 뼈 한 조각

입력 2024. 06. 24   17:12
업데이트 2024. 06. 2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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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특집 - 그날을 기억합니다.
기억을 찾는 사람

호국영웅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일은 국민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할 국가적 책무다.
참전 영웅을 찾아 예우하고 치열했던 전사(戰史)를 기록하며, 끊임없는 교육·행사를 마련해 전쟁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의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과 신원확인도 이를 위해 시작됐다.
전사자 유해발굴과 신원확인은 시간과의 싸움이고, 지금 세대에서 유가족을 찾지 못하면 이후 발견되는 영웅들은 무명용사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25전쟁 74주년을 맞아 호국영웅 가족의 품으로 모시기 위해 임무를 수행하는 국유단 탐문관과 유전자분석관을 만났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며 호국영웅에게 세상의 빛을 비추는 또 다른 영웅이다.
글=서현우/사진=한재호·김병문 기자

 

김설하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탐문관이 증조부를 찾고 있는 6·25전쟁 전사자 유가족인 신기주 공군대위의 시료 채취를 하고 있다.
김설하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탐문관이 증조부를 찾고 있는 6·25전쟁 전사자 유가족인 신기주 공군대위의 시료 채취를 하고 있다.

 

김설하 기동탐문팀 탐문관

‘찾을 수 있겠냐’ 물음에… 

전후 2~3세대 시료채취 참여 절실 
찾겠다 확신 있다면 반드시 가능
숭고한 임무에 책임감… 
6월 25일 제사 지내는 유가족 안타까워
한 분이라도 더 찾도록 온 힘 다할 것

DNA 시료채취는 6·25전쟁 전사자 유가족 찾기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국유단은 지난 2월 기준 13만3192명의 6·25전쟁 미수습 전사·실종자 가운데 6만6673개의 시료를 확보해 확보율 50%를 돌파했다. 8촌까지의 유가족 시료를 합산하면 9만8923개에 이른다. 이 같은 성과에는 민·관·군 협업 유가족 집중찾기 사업 확대가 주효했고, 신속 기동탐문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기동탐문으로 채취한 시료는 전체의 43%에 달한다. 또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 96명 중 56명(약 58.3%)은 기동탐문으로 일궜다. 시료채취는 6·25전쟁 전사자의 유가족으로, 친·외가를 포함해 8촌까지 신청할 수 있다. 국유단 방문이 어려워 대표번호(1577-5625)로 전화하면 탐문관들이 직접 찾아가 DNA 시료를 채취한다. 제공한 정보를 통해 신원이 확인되면 유가족에게 1000만 원의 포상금도 지급한다.

전사자 신원확인은 STR(짧은연쇄반복)을 이용한 비교분석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STR은 국제표준으로 널리 사용되며 DNA의 특정 유전자 부위를 비교할 수 있다. 계촌법에 따른 유전적 거리(촌수)를 추정하기 위한 A-STR 마커와 가족관계에 따라 동일 부계를 확인하는 Y-STR 마커도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동일 모계를 확인하는 미토콘드리아 DNA 마커를 추가로 분석해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분석에는 새로운 기술도 접목하고 있다. 단 1%라도 신원확인의 정확도·가능성을 높이려는 노력이다. 지난 3월 고(故) 오용순 일병은 유해발굴 21년 만에 신원이 확인됐다. 2003년 유해를 발굴했고, 2012년 남동생의 DNA 시료가 채취됐지만, 당시 기술로 가족관계를 연결 짓지 못하다가 최신 기술로 재분석해 확인할 수 있었다.

“15년째 이 일을 하면서 지속적인 연구와 기술개발로 유전자분석을 발전시켜 온 것은 희망적인 일이고 보람을 느낍니다. 하지만 발굴과 채취 후 십수 년이 지나 재분석으로 가족관계를 증명했지만, 유가족은 이미 돌아가신 상황도 있어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전사자 신원확인은 시간과의 싸움으로 불린다. 유해발굴이 길어질수록 유해가 부패하거나 오염돼 DNA 추출이 어렵고, 유가족 세대가 멀어질수록 유전자분석의 정확도 역시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밀하게 유전자분석을 해도 유가족의 시료가 없으면 전사자 신원을 결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유가족의 적극적인 신원확인, 시료채취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유해발굴사업은 2000년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시작됐다. 6·25전쟁 당시 국군 전사자는 16만여 명으로, 이 중 3만여 명은 수습돼 현충원 등에 안장됐다. 나머지 찾아야 할 국군 전사자 13만여 명 중에서 현재까지 발굴한 유해는 1만1000여 구다. 그중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233명으로, 약 2%에 불과하다. 70년 이상 시간이 흘러 유해의 DNA 추출이 어렵고, 신원을 특정할 유품·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발굴된 유해도 완전한 형태는 10% 미만이고, 대부분은 유해 일부분만 발굴돼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국유단이 유해발굴과 함께 유가족 시료채취, 유전자분석에 쉼 없이 박차를 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유단은 올해 220구 이상의 전사자 유해발굴을 목표로 전국 36개 지역을 중심으로 유해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또 유가족 유전자 시료 확보는 1만2500개 이상, 신원확인은 25명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박정현 국유단 유전자분석과장이 자동화장비를 활용해 DNA 추출작업을 하고 있다.
박정현 국유단 유전자분석과장이 자동화장비를 활용해 DNA 추출작업을 하고 있다.


박정현 신원확인처 유전자분석과장

유해 신원확인은…

DNA 분석 기술·장비·인력 韓美만 갖춰
노하우 바탕…가족 확인 정확도 높여
채취 어려운 유전자… 
시료 발굴·채취 십수 년 걸려
유가족 적극적 신원확인 참여 절실

“6·25전쟁 전사자 유해와 같이 오래된 유골의 유전자분석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고농도 DNA를 추출하고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유전자를 분석해 가족관계 확인의 범위와 정확도를 높이는 데 있습니다.”

19일 국유단에서 만난 박정현 신원확인처 유전자분석과장은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한 유전자 분석 과정을 설명하면서 DNA 추출과 유전자증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사자는 유골만 남는데 오랫동안 땅속에 묻힌 뼈는 오염 가능성이 있고, 추출되는 DNA 양도 굉장히 적기 때문이다.

발굴현장에서 수습된 유해는 임시 감식소에서 기초 감식을 하고 국유단으로 봉송된다. 봉송된 유해는 인류학적 감식으로 인종·성별·연령·신장 등 생물학적 특징을 추정한다. 이어 유전자분석과로 옮겨지는데, 김 과장과 유전자분석관들은 △유전자 전처리 △DNA 추출 △유전자 증폭(PCR) △유전자형 분석 단계를 거쳐 가족관계 일치를 확인한다.

박 과장은 “전사자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한 DNA 분석 기술 역량과 시설·장비·인력을 갖춘 나라는 우리나라와 미국뿐”이라며 “국유단은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DNA 추출 방법을 연구해 왔고, 차세대 염기서열분석법 도입 등 여러 기술적 시도를 통해 발전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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