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이글스, 팀워크’ 세계를 날다] 환상의 비행 뒷받침한 ‘또 하나의 편대’

입력 2024. 02. 26   17:38
업데이트 2024. 02. 27   08:56
0 댓글

‘블랙이글스, 팀워크’ 세계를 날다 ⑤ 싱가포르 에어쇼 2024 - 우리가 블랙이글스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 놔요. 그럼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2005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수상자 배우 황정민의 이른바 ‘밥상 소감’이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애쓰는지 대중에게 알린 계기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Black Eagles)’에도 화려한 에어쇼라는 ‘밥상’을 차리기 위해 많은 장병의 수고가 깃든다. 뒤에서 땀 흘리는 이들의 노력이 재조명되길 바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싱가포르에서 글=배지열/사진=김병문 기자


훈련 조종사 김준수(왼쪽)·김진건 대위
훈련 조종사 김준수(왼쪽)·김진건 대위


팀, 하나이기에 훈련 조종사 김준수·김진건 대위
“선배들의 실력부터 정신까지 이어 가겠습니다”


총 8대로 구성되는 블랙이글스. 그런데 싱가포르와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이번 일정에는 9번과 10번 조종사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의 정체는 훈련 조종사 김준수·김진건 대위. 해외 일정 이후 국내로 복귀해 일정 비행 횟수를 추가하면 정식 조종사로 블랙이글스의 일원이 될 이들이다.

김준수 대위는 “저희에게는 선배 조종사의 비행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관숙(慣熟) 기회”라며 “한국과 다른 기후를 경험하고, 외국군의 에어쇼 공중기동을 보면서 교류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2022년 훈련 조종사로 이름을 올린 두 사람은 지금까지 선배 조종사가 기동할 때 후방석에 타거나, 지상과 통제탑에서 공중기동하는 블랙이글스를 지켜봐 왔다. 매일 브리핑에 참석해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면서 경험과 정보를 쌓으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선배 조종사들도 노하우를 전수하는 데 진심이다. 김진건 대위는 “이번 일정을 마지막으로 제가 자리를 대신하게 될 박상준 소령(국방일보 23일 자 5면)님이 ‘네가 다음 후배 조종사에게 물려줄 때까지가 네 임무’라고 하셨다”며 “상대적으로 위험한 기동이 많기 때문에 더욱더 안전한 비행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정식 조종사가 된 이후의 각오를 묻는 말에 돌아오는 답변을 통해 예비 조종사에게까지 뿌리 깊게 각인된 ‘블랙이글스 팀워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이 돋보이는 게 아니라 한 팀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김진건 대위)” 

“조종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그 과정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의 노력과 그것을 향한 감사를 잊지 않겠습니다.(김준수 대위)”


주기검사반장 최희식 원사. 
주기검사반장 최희식 원사. 

 

꿈, 함께하기에 주기검사반장 최희식 원사 
“안전 비행 책임진다”…비행 없는 날에도 꼼꼼하게 검사

블랙이글스에서 운용하는 T-50B 항공기는 200시간 비행 이후 ‘주기검사’를 받아야 한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1년에 한 번씩 받는 자동차검사로, 기체 전반에 문제가 될 부분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담당하는 최희식(원사) 주기검사반장은 블랙이글스 팀에서만 10년 넘게 자리를 지키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그는 이제는 구형 전력이 된 F5 전투기를 정비한 경험도 있다. 외국 장비에 의존하던 대한민국 공군 전력이 국산 항공기로 채워져 해외로 수출되는 모습까지 확인하는 역사의 산증인인 셈.

“사실 같은 세대의 전투기가 아니라 비교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여러 가지 제원이 확실히 나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자체적으로 시동을 걸 수 있고, 운용할 때 필요했던 부수적인 장비가 줄어든 것만으로도 기술이 우수해졌다는 걸 체감합니다.”
조종사만큼이나 정비사도 블랙이글스에 책임감과 자부심, 애정을 가지고 있다. 각 항공기 캐노피에 조종사와 정비기장의 이름이 같이 새겨진 모습에서부터 이를 알 수 있다. 최 원사는 “국내외 출장이 잦다 보니, 어떻게 보면 가족보다 더 자주 보는 사람들”이라며 “조종사가 멋진 공중기동을 보여주고 ‘항공기 현황이 좋다’고 말하면, 우리도 같이 쇼를 만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비행이 없는 날에도 각 항공기는 ‘통합 비행 전후 검사’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이륙 전과 착륙 직후, 기체 내외부 전반에 걸쳐 1시간30분 가까이 꼼꼼하게 점검해야 안전한 비행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

“이번 일정을 포함해 늘 안전하게 비행을 마무리하는 게 우선입니다. 싱가포르에서 문제없이 100%를 달성한 만큼, 이어질 필리핀 일정과 남은 올해 행사도 큰 결함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레이터 김영광 중위
내레이터 김영광 중위


쇼, 더 실감나게  내레이터 김영광 중위
좌중 압도하는 목소리…“발성·억양 늘 연구하죠”


“Ladies and Gentleman, We are Blackeagles of Republic of Korea!”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는 대한민국의 블랙이글스입니다!)

그의 목소리로 블랙이글스의 기동이 시작되고 마무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어쇼 관람객들을 위해 블랙이글스가 기동하는 모습을 중계하는 ‘블랙이글스의 목소리’ 김영광(중위) 내레이터가 그 주인공.

중앙대 성악과 출신인 그는 이번이 세 번째 해외 에어쇼 경험이다. 내레이터는 매일 행사 1시간 전에 도착해 마이크와 음향 상태를 점검하고, 기상에 따라 시작 시간과 기동 순서 등이 바뀌지는 않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심지어 쇼가 진행되는 중에도 통제탑과 조종사의 교신을 같이 들으면서 모든 변수에 대처해야 한다.

중계하는 입장에서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기동이 있을 터. 질문을 던지자 김 중위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항공기 8대가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레인 폴’ 기동이 있습니다. 배경음악으로 오페라 투란도트의 유명 아리아 ‘네순 도르마(Nessun Dorma)’ 중 하이라이트인 ‘빈 체로(승리하리라·Vin Cero)’라는 가사가 나올 때 하강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악과 블랙이글스가 만나는 순간이라 다른 때보다 더 황홀함을 느낍니다.”

‘영어 실력이 대단하다’는 칭찬에 손사래 치는 김 중위. 블랙이글스를 위해 더욱 발전할 여지가 많다면서 각오를 단단히 했다.

“발성이나 억양 등 연구하고 배워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국내외 유명 아나운서와 캐스터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영광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 공군 블랙이글스를 알리는 데 일조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겠습니다.”



항공촬영사 이신실  중사
항공촬영사 이신실  중사


샷, 찰나를 위해  항공촬영사 이신실 중사
후방석·예비 촬영기서 중력 견디며 ‘찰칵’


멋진 풍경이나 그림을 봤을 때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어 기록으로 남기는 건 본능적인 행동이다. 아무리 멋진 모습이라도 기록에 남지 않으면 기억에서 사라지고 다른 사람과도 공유하기 힘들기 때문. 화려하게 기동하는 블랙이글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날아오르는 이신실(중사) 항공촬영사의 존재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중사는 지상에서 보는 일반인들의 시야 대신, 조종사 후방석에 앉거나 예비 촬영기에서 색다른 구도로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는 역할을 맡는다.

현재 공군에서도 항공촬영사는 5명에 불과하다. 촬영 실력뿐만 아니라 조종사처럼 비행환경적응훈련과 비상탈출·생환 훈련을 소화해야 하고, 공중근무자 신체검사와 실제 비행하면서 촬영하는 테스트까지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중사도 “특히 블랙이글스는 선회하는 공중기동이 많아서 최대 중력 7.8G까지 받는다”며 “저도 처음에는 굉장히 긴장하고 머리가 아팠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공중기동이 성공하는 순간은 짜릿하지만, 그 찰나를 촬영해야 하는 항공촬영사에게는 부담이 크다. 그래도 가족의 무한한 응원과 자신감으로 이를 견뎌낸다. 이 중사는 “가족들이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블랙이글스 에어쇼를 직접 보고는 실력을 인정하고 응원해준다”며 “스스로도 많은 경험을 하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레이시아 리마 에어쇼 당시 블랙이글스와 말레이시아 공군의 우정비행에서 두 나라 항공기를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베스트샷이라고 꼽은 이 중사.

“제 손을 거친 사진과 영상으로 블랙이글스가 한 명에게라도 더 알려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항공기로 우리나라 군이 운용하는 특수비행팀이 있다는 데 많은 국민이 자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