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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읍성, 1906년 일제와 치열한 전투

기사입력 2021. 04. 30   13:42 입력 2021. 04. 30   14: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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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 홍주읍성(洪州邑城)


처음 축조된 시기 기록 없으나 토성 형태서 석성으로

조선 시대 홍주목사 한응필 보수…동·서·북에 문 제작
1894년 동학군 처형·1906년 항일의병 전투 역사
홍주목사·홍성군수 사무실이었던 ‘안회당’ 보존
뒤뜰 연못의 정자와 200년 왕버드나무 인기

잘 보존된 조양문의 야경. 일제 때 서문과 북문은 파괴돼 없어졌지만 동문은 부분적으로 보존되었고, 복원공사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충남 홍성의 홍주읍성은 현재 홍성군청을 둘러싸고 있어 다른 읍성에 비해 일반인들의 접근성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또 발굴과 조사를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깨끗하게 복원됐을 뿐만 아니라 성 내부에 있는 여러 유적들도 제 모습을 찾은 상태다.

안타까운 것은 읍성의 성벽 반쪽이 소실된 것. 이미 소실된 쪽에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들어차 있어 성벽을 옛 모습으로 복원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다행히 소실된 쪽의 동문은 잘 보존된 상태로 한양도성의 숭례문과 흥인지문(동대문)처럼 홍성의 상징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 편집 = 이경하 기자
홍화문의 야경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한 가지 색상이 아닌 형형색색의 조명이 비춰져 신비롭다.


■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지


홍주읍성이 처음으로 축조된 시기는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기 힘들다.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지였던 주류성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것과 고려 시대 백월산 중턱에 있던 해풍현이 지금 장소로 옮겨왔다는 기록 등으로 보아 당시에 성을 축조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오래된 성이 그렇듯 홍주읍성도 처음에는 토성(土城)이었던 것을 여러 차례 확장과 보수공사를 하고 조선 시대인 1870년(고종7) 홍주목사 한응필이 1,830척에서 560척을 증보해 석축(石築)했다고 전해진다.

그때 3개의 문을 만들었는데 동문은 조양문(朝陽門), 서문은 경의문(景義門), 북문은 망화문(望華門)이라 했고 관영(官營)도 지었다.

홍주읍성은 남쪽이 뾰족하고 북쪽이 평평한 형태로 전체 길이는 1,772m에 달했으나 많은 부분이 소실되고 지금은 810m만 복원된 상태다.

현재의 남문은 언제인가 없어졌던 것을 발굴 조사를 통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루가 있는 성문이었음을 확인, 2013년 복원한 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홍성의 앞날을 상징하는 ‘홍화문’으로 이름을 지었다.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현판을 하사했다고 전해지는 조양문은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문 밖 왼쪽에 위치한 치성 모습. 홍주읍성에서 유일하게 보존된 치성이다. 치성과 성곽에 홍주읍성에서 열리는 행사에 관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일본군과 항일의병의 치열했던 곳


1906년 일본군과 항일의병이 홍주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그때의 탄흔을 조양문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가 서문과 북문을 파괴할 때 조양문도 같이 없애려 했지만, 읍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보존됐고, 이후 1975년 문루의 해체와 복원 작업을 거쳐 옛 모습을 되찾게 됐다.

현재 한창 발굴과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북문은 사형수를 처형할 때 목사(牧使)나 영장(營將)들이 문루에서 감시하던 곳이기도 했으며, 동학운동 때인 1894년 동학군이 여기서 처형되는 등 아픔을 간직한 장소이기도 하다.

성내에는 원래 관아 건물이 35동이나 있었지만, 지금은 4개의 건물만 남아있고, 그중 하나인 ‘안회당’은 동헌으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안회당은 처음 지어질 당시(1678) 8칸의 건물이었지만 비좁아지자 22칸으로 늘렸고(1870) 이후 홍주목사와 홍성군수들이 행정을 집행하는 사무실로 사용됐다.

‘여하정’은 안회당 뒤뜰에 있는 연못에 세워진 정자다. 주변에 수령 200년이 넘는 왕버드나무가 어우러져 있어 홍주읍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서 홍성군민들이 자주 찾는다. 또한 홍주관아의 외삼문인 ‘홍주아문’도 잘 보존돼 있으며, 홍성군청 앞마당에서는 역대 목민관들이 홍주에 부임할 때 제일 먼저 제물을 차려놓고 군민의 무고와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 ‘오관리 느티나무’를 만날 수 있다.

홍주읍성 내에는 홍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홍주성 역사관’이 있는데 이 역사관 남쪽 언덕에서 둘레가 500m로 추정되는 토성이 발견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선은 초기 억불숭유 정책을 시행할 때 사찰 건물과 탑을 부수고 여기서 나온 부재를 관아 건물과 유교시설을 짓는 데 사용했다. 홍성읍성에는 성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이 ‘사찰부재’가 전시돼 있다. 또한 성벽 및 건물 수리를 기록한 홍주성 수성비도 볼 수 있으며, 병오항일의병기념비를 비롯한 비석군, 우물, 홍주옥(감옥) 등 홍주읍성과 관련된 여러 건물과 유물이 남아 있다.

홍성군은 “지난 1978년 지진이 발생, 성곽 일부가 붕괴된 것을 계기로 성곽 주변 가옥 64동을 철거하고 토지를 매입, 주변 정비와 성곽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며 “앞으로도 홍주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홍주읍성의 복원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홍화문.
홍주읍성 남쪽 부분의 둥그런 성곽.
■ 편집 =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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