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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발굴과 책임감

기사입력 2020. 11. 27   16:19 입력 2020. 11. 29   09: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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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수 중사 육군37사단 화랑연대

우리 부대가 유해발굴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난해 레바논평화유지군 동명부대 22진으로 파병을 다녀오며 유엔군의 중요성을 느꼈고, 6·25전쟁 당시 참전한 유엔군에게 마음속으로 간직해 온 감사함을 직접 행동으로 표현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발굴에 필요한 장비를 준비하고 안전사고 예방 교육을 받는 과정조차도 나에게는 가슴 벅찬 일이었다.

발굴이 이뤄진 충북 영동군 영동읍 산이리 일대는 6·25전쟁 당시 미 1기병사단과 미 25사단 27연대가 북한군 2·3사단, 203전차연대를 상대로 격전을 벌인 곳이라고 했다. 발굴 현장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니 마냥 설레던 마음도 숙연해졌다.

지난 10월 22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4주간 120여 명이 참여한 이번 유해발굴에서 우리 부대가 탐색을 맡은 곳은 무명 350고지였다. 빨리 유해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겠다는 결의 속에 발굴에 나섰고, 군화 밑창, 박격포 탄피, 탄약 등 15점의 유품을 발견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유품은 미처 사용하지 못한 채 그대로 녹슬어 버린 탄약이었다. 다급한 상황에서 개인 탄약을 다 쓰지도 못하고 전사했을 선배 전우를 떠올리니 마음이 먹먹했다. 만약 이 땅에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면 나도 그들처럼 기꺼이 내 목숨을 희생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8년 전 아프가니스탄에 오쉬노부대 4진으로 파병됐을 때 포탄이 빗발치는 상황을 맞닥뜨린 적이 있다. 경계근무를 서던 중 박격포와 로켓포 공격을 받았고, 솔직히 털어놓자면 당시 나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이후 군인으로서 다시는 어리숙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교육 훈련에 매진했고, 지금은 기동중대원으로서 전우들과 함께 언제 어디서라도 싸울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선배 전우들이 전장에 처음 나갈 때도 과거의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았을 것이고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군복을 입은 군인이기에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을 향해 뛰어나갔을 것이다.

철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유해발굴은 묵직한 책임감으로 끝났다. 선배 전우들의 용기와 숭고한 희생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나 역시 군인으로서 대비태세를 늘 유지하고 국가 수호의 소임을 완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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