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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견장일기] ‘해군의 아버지’께 드리는 선물

기사입력 2020. 11. 19   16:20 입력 2020. 11. 19   16: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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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 희 해군 손원일함장·대령

프랑스의 쥘 베른이 쓴 『해저 2만리』는 공상 과학 소설의 선구작이자 해양 모험 소설의 대표작이다. 프랑스어 ‘류(lieues)’는 약 4㎞를 의미하고 2만 류는 지구 두 바퀴 거리에 해당하는 8만㎞다. 이 소설이 발표된 1869년은 잠수함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로 배가 바닷속으로 항해한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로 취급되던 시절이었다.

인류의 꿈은 현실이 된다. 해저 2만리의 주인공 네모 선장이 지휘하는 잠수함 노틸러스호는 채 100년이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다. 1959년 미 해군은 최초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개발했고, 쥘 베른의 소설 속 가상 잠수함의 이름을 따 노틸러스(SSN-571)라고 명명했다. 지구 두 바퀴 거리에 해당하는 해저 2만리가 꿈이 아닌 현실이 된 것이다.

2006년 6월 해군 창설자의 이름으로 명명된 잠수함 손원일함이 14년간의 안전한 작전 운용 끝에 2020년 11월 11일 안전항해 10만 마일을 달성했다. 10만 마일은 지구를 네 바퀴 반 이상 항해한 거리다. 더욱 뜻깊은 일은 이날이 해군 창설 75주년이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해군은 광복 직후 손원일 제독이 붙인 ‘조국 광복에 즈음하여 앞으로 이 나라 해양과 국토를 지킬 뜻있는 동지들을 구함’이라는 한 장의 벽보에서 시작됐다. 광복은 됐지만 변변한 군함 한 척 없는 상태에서 해군을 창설한다는 것은 쥘 베른의 공상과학 소설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 벽보를 보고 200여 명의 뜻있는 젊은이가 모여들었고 최종 80명이 선발돼 3군 중 가장 먼저 해군이 창설된 것이다.

손원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의 장남이다. 손 목사는 일제 치하 그 누구도 돕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유족들을 돌보고 이화학당에 다니던 유관순 열사에게 애국심을 불어 넣은 분으로 유명하다. 손원일 제독은 “없어도 그만인 비단옷보다는 걸레와 같은 삶을 택해 불쌍한 우리 동포들을 도우며 살라”는 부친의 가르침에 따라 군인이자 공직자로서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해군은 손원일 제독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장보고급에 이은 최신예 잠수함 1번함에 ‘손원일’이라는 함명을 부여했다. 이렇게 명명된 손원일함의 안전항해 10만 마일 달성은 그를 본받고자 하는 잠수함 승조원들이 수중에서 도전과 인내로 이룩한 축적된 시간의 산물이자 해군의 생일에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께 드리는 선물이었다.

잠수함 승조원들은 햇빛조차 닿을 수 없는 심해에 갇힌 이들이 아니라 임무를 위해 세상을 가둔 사람들이며, 위험한 환경을 보지 않고 위험을 이겨내는 위대한 정신을 바라보는 이들이다. 나는 이런 자랑스러운 승조원들과 함께 근무하는 손원일함의 함장이자 승조원으로서 오늘도 심해를 누비며 조국의 바다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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